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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평점 :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나 각기 다른 색깔과 모습을 지니고 있다. 드문드문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다보면 비록 나와 똑같은 모양과 색깔은 아닐지라도 같은 시대와 공간을 함께 했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공감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서로가 너무도 다른 기억으로 과거를 기억하지만 둘이는 <노라와 모라>라는 비슷한 라임의 이름만큼이나 닮아있었다.
이 책 <노라와 모라>는 35년 인생 중 가족으로 7년을 함께 살았던 재혼가정의 동갑내기 모라가 자신의 친부의 죽음을 노라에게 알리면서 20년만에 다시 만나 재회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너무도 다른 환경과 사고를 지녔으나 잠깐이나마 식구로 함께 살았던 그 시간 동안을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이야기이다.
노라의 친부는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라고 지어준 이름이었으나. 정작 노라는 쉽게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한다거나,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명확하게 서로를 구분짓고, 자신의 일 외에는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는 점들은 노라가 얼마나 분명하고 개성있는 성격인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 많은 엄마의 기도 속에는 어떤 말이 있을까. 엄마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한번도 그건 걸 물어본 적은 없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삶이 있으니까. (p.49)
- 엄마에게는 엄마의 삶이 있듯, 나에게도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이 있다는 걸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 같았다. (p.53)
그에 반해 모라는 자신의 친엄마가 사라지고 직장을 가진 아버지가 나이 든 작은 아버지네 집으로 자신을 맡긴 후 점점 더 어렵고 힘든 세상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했다.
-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듣지 못해 말도 할 수 없게 된 노인은 떨리는 손을 들어 내 어깨를 토닥였다. 차라리 개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p.149)
돈을 들고 잠적해 버린 친구를 찾아나선 아버지는 어느 순간, 늘 술에 취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만을 모라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 모라야.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건 뭔가 불길한 일이나 말이 이어질 징조였다. (p.118)
- 괜찮지?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괜찮냐고. 괜찮지 않냐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다. 괜찮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건 질문이면서 동시에 다짐 같은 말이어서 우리는 늘 괜찮아야 했다.(p.123)
제목에서처럼 책에서도 여러번 등장하는 노라와 모라의 이름이 지닌 의미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가지런한 그물'이란 뜻을 지닌 모라와 곤륜산에서만 자라는 돌배나무 '라'자를 쓰는 노라는 웃긴 뜻을 지닌 이름만큼이나 서로가 닮아있어서, 노라의 엄마조차도 친자매로 여길 정도였다니 어린 두 소녀의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머리 속으로 상상하게 했다.
또한 함께 산 7년의 시간을 누군가와 살았다고 느꼈던 유일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을 만큼 그 시간의 기억과 추억은 둘에게서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말은 가슴이 뜨거웠다 . 결국 인쇄소 운영란으로 집안 곳곳에 압류딱지가 붙던 그 날, 둘은 헤어짐을 직감하게 되지만, 서로가 혼자라고 느꼈을 때 둘은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고 함께 였댜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부분 역시도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다.
결국 둘은 아버지를 통해 다시 만나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며 각자에게 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전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서로가 하나되는 법을 배워갔다. 서로에게 있거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다시 살아나는 마음을 품게 되는 장면에서는 진한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 말은 요즘 여러가지로 마음이 심란한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작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 모라가 모라일 수 밖에 없듯이, 나는 나일 수 밖에 없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되었다.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p.197)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놓은 소설'이라는 소개글만큼이나 두 여성의 감정선이 너무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책 <노라와 모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