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네 무덤에 침을 벹어라 I Spit On Your Grave]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로, 원작도 영화만큼 막장일까 궁금한 마음에 집어 든 책이다. 영화는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 Last House On The Left]과 상당히 흡사한 느낌인데, 이 영화나 저 영화나 웬만한 막장 공포영화 매니아가 아니라면 좀 충격적일 수도 있는 영화여서, 개인적으로는 꽤 좋아하지만 별로 추천은 못하겠다.

 

암튼 소설을 읽고 나니 이게 정말 동명 영화의 원작이 맞나 싶다. 뒤늦게 영화와 소설이 제목만 같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립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는 이유는, 기본적인 뼈대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가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 두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완벽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성이 처참하게 당하고 이를 참혹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졸라 리얼한 강간 장면과 폭력이 난무하는 초중반만 잘 견디면, 후반에는 화끈하기 그지없는 복수 장면들로 인해 후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영화는 장르적인 쾌감이 매우 큰 작품이었다.

 

반면 소설은 흑인혈통이지만 금발에 하얀 피부, 건장한 체격을 지닌 주인공이 백인 여성를 가지고 놀다가 살해한다는 내용의 1인칭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백인여성 피해자를 고르고 그들을 어떤 식으로 죽일지만 고민하는 주인공의 삐뚤어진 내면과 공감 안가는 미국 젊은이들의 방탕한 성생활 묘사로만 채워진 소설은, 영화와 같은 후련함은 오간데 없고 찝찝함, 거북함 그리고 혼란스러움으로 점철돼 있다.

 

영화는 끔찍하지만 한편으론 통쾌했다. 반면 소설은 복수의 쾌감이 거세된 사이코 스릴러다. 그것도 되게 하드보일드한 스릴러다. 선호도가 갈릴 수 있는 문제인데,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훨 낫다고 본다. 영화는 비록 B급이었지만, 원시적인 에너지로 충만했고, 지금은 전설이 되었다.

 

 

사족 1. 본 소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다.

 

사족 2. 책 소개에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되었다는 설명이 있고, 두 작품이 같은 제목에 비슷한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을 영화의 원작으로 간주하였으나, 100 퍼센트 확신은 없다.

 

사족 3. 영화는 1979년에 개봉하여 2010년에 한 차례 리메이크 되었이며, 본 감상문은 1979년 작품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이치 2024-05-06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 영화는 1959년 Michel Gast 감독의 영화입니다.
1978년 동명의 영화는 Meir Zarchi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것으로 Boris Vian의 소설이나 Michel Gast의 영화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로 줄줄이 나오는 리메이크와 시퀄은 78년 영화와 관계된 영화들입니다.
 
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버트랜드 러셀의 드라마틱한 삶,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사상적 교류를 만화라는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라는 설명에 나름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평이한 내용에 살짝 김이 빠진 케이스다. 책을 뒤덥고 있는 수많은 추천사와 역자의 말을 보면 이 책 자체가 왠만한 철학서 못지 않은 깊이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그딴 건 잘 모르겠고 [행복의 정복], [게으름에 대한 찬양],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등 러셀이 직접 쓴 저서들에서 느꼈던 만큼의 재미와 공감을 느끼지는 못한 건 확실하다.

 

러셀에 대한 책만 아니었으면 분명 읽지 않았을 류의 책인데, 낚였다는 생각도 좀 든다. 만화다 보니 서너시간이면 금세 읽을 수 있어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다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때문에 돌아 댕기면서 읽기 조금 쪽팔린 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롤리타]가 그랬고, 이번 [은교]도 살짝몇 년 전 지하철에서 [롤리타]를 탐독하다 맞은 편 아주머니하고 눈이 맞았을 때 잠재적 아동성추행범을 보는 듯한 그 아줌니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 그런 사람 아님 둥… --::) 작가가 책 말미에 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에만 읽어 달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러한 쪽팔림에 대한 고려 때문은 아닐런지

 

- 이하 스포일러 만땅

 

영화는 전체적으로 낭만적인 톤을 유지하는 반면 원작소설은 좀 더 추잡하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까놓고 말해 나이살 먹은 남자(서지우)와 나이 겁나게 먹은 남자(이적요)가 한 여고생을 두고 벌이는 치정극에, 로멘틱할게 무어란 말인가?

 

그러나 소설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많은 각색이 있었고, 특히 은교라는 캐릭터는 김고은이라는배우를 만나 크게 미화되면서 전체적인 톤도 바뀌었다. 소설에서 은교는 (영화만큼) 매력적이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평범하면서도 알건 다 아는(?) 여고생으로 그려진다. 단적인 예로, 영화에서는 서지우가 죽기 전날 은교와의 섹스신이 딱 한 번 나오지만, 소설에서 은교는 이적요를 만나기 전부터 서지우와 원조교제 비스무레하게 섹스를 나누는 관계로 묘사되며, 애초에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 무단 침입해 의자에서 자고 있었던 것도 다 서지우를 만나기 위함일 정도로 서지우에 대한 마음이 큰 것으로 그려진다. 이와 같이 소설에서는 비록 부적절하나 서지우와 은교는 이미 연인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 후 이적요가 난입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설정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에서 은교를 빼앗으려 하는 이는 서지우가 아니라 이적요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지우와 은교의 과거는 영화의 낭만적인 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두 사람이 관계하는 것을 목격한 이적요가 격노하여 자식과도 같은 서지우를 살해하려는 결심이 설특력을 얻으려면, 이적요에 대한 열등감+질투에 눈이 먼 서지우가 순진한 은교를 꼬드겨 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둘의 과거를 삭제하고 은교라는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외로운 여고생으로 그릴 뿐만 아니라, 서지우를 무시하고 대립하던 그녀가 그에 대한 마음이 변하는 터닝 포인트로 단편소설 은교(소설에서는 은교라는 작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를 서지우가 썼다고 오해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이 후 벌어지는 섹스신에 어느 정도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설정의 변화로 인한 감상의 차이는 결정적인데, 젊은 놈이나 늙은 놈이나 추잡하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하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상대적으로 서지우를 비열한 놈으로, 이적요를 로멘티스트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가 전체적인 톤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만약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면 말년의 사랑을 로멘틱하게만 포장한 영화에 실망할런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치한님처럼 영화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다면 더욱 센 파격과 세상에 대한 독설에 살짝 충격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뭐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면 다 마찬가지 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작년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개봉에 맞춰서 혹성탈출의 원작소설이 국내 출간됐다. 물론 본 소설은 작년 영화가 아니라 1968년도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의 원작이지만, 세계관이나 스토리의 연관성에서 이후 쏟아진 모든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류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68년도 [혹성탈출]과 다른 점.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은 우주 여행을 떠나 실제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했다. 물론 350 광년이나 떨어진 두 행성에서 똑같은 생물군들이 진화하고 역사의 흐름과 과학 발전 수준까지 거의 같다는 설정에는 심한 비약이 있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인류의 문명이 파괴되고 유인원들이 인류의 뒤를 이어 농경시대(맞나?) 정도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영화의 설정이 과학적으로는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와 배경 설정이 다르다 보니 엔딩도 차이가 있는데, 놀랍게도 엔딩은 1968년도 [혹성탈출]이 아니라 2001년도 팀 버튼의 [혹성탈출] 리메이크 버전과 비슷하다. 오리지널 버전의 엔딩이 너무 강렬해서 리메이크 버전의 엔딩은 영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그 생뚱맞은 엔딩은 바로 원작소설에서 따온 것이었다. 엔딩을 따오는 김에 배경도 원작처럼 195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설정해 리메이크 했으면 이도저도 아닌 리메이크라는 혹평은 좀 줄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부분이다.

 

인류의 문명이 퇴화하고 유인원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 이유도 본 작품에서는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처럼 임상실험 대상이었던 유인원들이 뇌세포 재생 약품에 노출되는 사건으로 인해 지능이 높아진다는 식의 과학적 인과관계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핵전쟁이 일어나 방사선 노출로 인한 돌연변이 현상으로 인류는 멍청해지고 유인원은 똑똑해 졌다라는 되도않는 설정도 아쉽지만 찾아 볼 수 없다. 소설은 단순히 인류는 점차 생각하기를 멈췄고, 무기력해진 반면 유인원들은 점차 생각하기 시작했고, 적극적이 되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핵전쟁이 발발하든 아니든, 천재지변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는 꼬락서니로 봐서 인류는 곧 몰락할 것으로 내다 본 염세주의자는 아니었을 런지

 

영화만 생각하고 재밌는 SF 정도로만 여기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에 백퍼 몰입해 읽은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영화와 비슷하지만 문명에 대한 비판, 과학에 대한 불신, 인간성에 대한 고찰 등 훨씬 다양한 주제를 깊게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이건 SF 팬들이 아니라도 일독을 권할 만한 고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 장 지글러의 ‘대량 살상, 기아의 지정학’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아의 실태, 식량분배의 불공정함, 그 이면에 도사린 추악한 진실을 저자의 전작들에 이어서 리얼하게 폭로하는 책이다. 농가공식품업계 다국적기업들이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매국을 일삼는 제 3세계의 정치인, 공무원, 농장주들과 한통속이 되어 그 나라 국민들에게 가하고 있는 인권유린 및 온갖 파렴치한 짓거리들은 전작들에서 이미 충분히 까발려졌기에 어느 정도 동어반복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선진 금융으로 알고 있던 선물, 옵션 매매가 식량 투기로 이어져 식량가격을 올리고 그로 인해 기아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본인의 상식을 넘어서는 얘기여서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대체연료인줄만 알고 있던 바이오연료가 식량 부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도 가속시키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그 동안 잘못된 상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 살짝 혼란스러웠다.

 

책의 논조에 관해 한 마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저자의 경험이 리얼하게 녹아있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처참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담아내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간혹 그러한 낭만성이 지나쳐 몇몇 부분에서는 리얼 다큐라는 걸 잊고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같은 논픽션 소설을 읽고 있는 건 아닌 가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 일례를 들자면 브라질 세아라의 이름없는 아이들의 묘지를 설명하는 다름과 같은 구절이다.

 

태양은 벌써 하늘 높이 솟았다. 아내 에리카와 나는 작은 십자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밭 가장자리에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먹먹해진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린 시세로가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여기는 세아라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떠나 보낼 때 눈을 감기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야 천국으로 가는 길을 좀 더 쉽게 찾을 테니까요.”

 

그림 같은 흰 구름들이 동동 떠다니는 세아라의 하늘은 아름답기만 했다.” – P 76

 

이와 같이 전체적인 논조와 어울리지 않는 시적인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피어나는 감동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처럼 장 지글러의 책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기만 한 건 또 아니어서 완독이 버겁지만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