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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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개봉에 맞춰서 혹성탈출의 원작소설이 국내 출간됐다. 물론 본 소설은 작년 영화가 아니라 1968년도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의 원작이지만, 세계관이나 스토리의 연관성에서 이후 쏟아진 모든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류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68년도 [혹성탈출]과 다른 점.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은 우주 여행을 떠나 실제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했다. 물론 350 광년이나 떨어진 두 행성에서 똑같은 생물군들이 진화하고 역사의 흐름과 과학 발전 수준까지 거의 같다는 설정에는 심한 비약이 있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인류의 문명이 파괴되고 유인원들이 인류의 뒤를 이어 농경시대(맞나?) 정도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영화의 설정이 과학적으로는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와 배경 설정이 다르다 보니 엔딩도 차이가 있는데, 놀랍게도 엔딩은 1968년도 [혹성탈출]이 아니라 2001년도 팀 버튼의 [혹성탈출] 리메이크 버전과 비슷하다. 오리지널 버전의 엔딩이 너무 강렬해서 리메이크 버전의 엔딩은 영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그 생뚱맞은 엔딩은 바로 원작소설에서 따온 것이었다. 엔딩을 따오는 김에 배경도 원작처럼 195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설정해 리메이크 했으면 이도저도 아닌 리메이크라는 혹평은 좀 줄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부분이다.

 

인류의 문명이 퇴화하고 유인원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 이유도 본 작품에서는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처럼 임상실험 대상이었던 유인원들이 뇌세포 재생 약품에 노출되는 사건으로 인해 지능이 높아진다는 식의 과학적 인과관계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핵전쟁이 일어나 방사선 노출로 인한 돌연변이 현상으로 인류는 멍청해지고 유인원은 똑똑해 졌다라는 되도않는 설정도 아쉽지만 찾아 볼 수 없다. 소설은 단순히 인류는 점차 생각하기를 멈췄고, 무기력해진 반면 유인원들은 점차 생각하기 시작했고, 적극적이 되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핵전쟁이 발발하든 아니든, 천재지변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는 꼬락서니로 봐서 인류는 곧 몰락할 것으로 내다 본 염세주의자는 아니었을 런지

 

영화만 생각하고 재밌는 SF 정도로만 여기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에 백퍼 몰입해 읽은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영화와 비슷하지만 문명에 대한 비판, 과학에 대한 불신, 인간성에 대한 고찰 등 훨씬 다양한 주제를 깊게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이건 SF 팬들이 아니라도 일독을 권할 만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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