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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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때문에 돌아 댕기면서 읽기 조금 쪽팔린 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롤리타]가 그랬고, 이번 [은교]도 살짝몇 년 전 지하철에서 [롤리타]를 탐독하다 맞은 편 아주머니하고 눈이 맞았을 때 잠재적 아동성추행범을 보는 듯한 그 아줌니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 그런 사람 아님 둥… --::) 작가가 책 말미에 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에만 읽어 달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러한 쪽팔림에 대한 고려 때문은 아닐런지

 

- 이하 스포일러 만땅

 

영화는 전체적으로 낭만적인 톤을 유지하는 반면 원작소설은 좀 더 추잡하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까놓고 말해 나이살 먹은 남자(서지우)와 나이 겁나게 먹은 남자(이적요)가 한 여고생을 두고 벌이는 치정극에, 로멘틱할게 무어란 말인가?

 

그러나 소설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많은 각색이 있었고, 특히 은교라는 캐릭터는 김고은이라는배우를 만나 크게 미화되면서 전체적인 톤도 바뀌었다. 소설에서 은교는 (영화만큼) 매력적이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평범하면서도 알건 다 아는(?) 여고생으로 그려진다. 단적인 예로, 영화에서는 서지우가 죽기 전날 은교와의 섹스신이 딱 한 번 나오지만, 소설에서 은교는 이적요를 만나기 전부터 서지우와 원조교제 비스무레하게 섹스를 나누는 관계로 묘사되며, 애초에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 무단 침입해 의자에서 자고 있었던 것도 다 서지우를 만나기 위함일 정도로 서지우에 대한 마음이 큰 것으로 그려진다. 이와 같이 소설에서는 비록 부적절하나 서지우와 은교는 이미 연인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 후 이적요가 난입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설정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에서 은교를 빼앗으려 하는 이는 서지우가 아니라 이적요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지우와 은교의 과거는 영화의 낭만적인 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두 사람이 관계하는 것을 목격한 이적요가 격노하여 자식과도 같은 서지우를 살해하려는 결심이 설특력을 얻으려면, 이적요에 대한 열등감+질투에 눈이 먼 서지우가 순진한 은교를 꼬드겨 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둘의 과거를 삭제하고 은교라는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외로운 여고생으로 그릴 뿐만 아니라, 서지우를 무시하고 대립하던 그녀가 그에 대한 마음이 변하는 터닝 포인트로 단편소설 은교(소설에서는 은교라는 작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를 서지우가 썼다고 오해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이 후 벌어지는 섹스신에 어느 정도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설정의 변화로 인한 감상의 차이는 결정적인데, 젊은 놈이나 늙은 놈이나 추잡하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하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상대적으로 서지우를 비열한 놈으로, 이적요를 로멘티스트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가 전체적인 톤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만약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면 말년의 사랑을 로멘틱하게만 포장한 영화에 실망할런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치한님처럼 영화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다면 더욱 센 파격과 세상에 대한 독설에 살짝 충격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뭐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면 다 마찬가지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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