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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곽재우
조민 지음 / 문학지성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의 난 위인전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던 아이였다.
다행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는 2절까지 외우고 있었기에 그 노래에 등장하는 위인들은 낯설지가 않았다.
'잘싸운다 곽재우, 나라구한 이순신, 행주치마 권율" 이 세 사람은 책에도 함께 등장하는데 권율장군에 대해서는 그닥 호의적인 마음이 들지 않는다.
원래부터 무인은 아니었던 곽재우는 벼슬길에 나갔다가 2등으로 급제하지만 자격지심이 있었던 선조의 비위를 거슬러 파방당한다.
그 후 관직에 나갈 마음을 접고 의령에 기거하며 농사에 힘써 살림이 점차 넉넉해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도도 왜적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쳐 의병을 일으킨다. 부인의 반대가 심했으나 완강한 재우의 뜻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의를 세우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백성의 당연한 본분이다.
내 붉은 심장을 터뜨려 산천을 물들이고 내 피 끓는 영혼을 천지에 뿌려 하늘을 움직이리라."
이는 창의를 하면서 곽재우가 했던 말이다.
의병을 모집할 때 깃발에 써 있던 말이 "천강홍의장군"이었다. 전장에 나설 때마 붉은 옷을 입어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싸움에서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병사를 여러 명 뽑아 자신과 같은 옷을 입혀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병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던 재우는 지형을 이용하여 의령지방과 이웃 고을인 현풍·창녕·영산·진주를 유사시에 잘 지켜냈다.
수십인으로 출발한 의병은 2천인에 이르는 큰 병력이 되었으며 곽재우는 그 병력으로 많은 전공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시기심이 많은 소인배들이 존재하는 법. 공을 세워 관직을 제수받지만 물러나기를 수차례. 현풍 비슬산에 들어가 곡식을 금하고 솔잎으로 끼니를 이어가다가 망우정을 지어 그곳에서 기거한다. 그 후 계속해서 조정으로부터 관직에 임명되지만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고 광해 9년 66세로 숨을 거두었다.
"의로운 사람은 세상을 구하나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세상을 구하지도 피하지도 못했으니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학문도 뛰어났고 더불어 무예까지 훌륭했던 곽재우. 그의 사람됨이 매우 반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줄 노래 가사로만 알고 있기에는 매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근거지였던 정암진. 꼭 한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