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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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페이지의 얇은 분량. 게다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 큰 부담없이 읽힐 줄 알았다.

그런데, 페이지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랑에 대한 소설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핑크빛 색깔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면 뜬금없이,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 라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랑의 종류에는 참 여러가지가 있고, 대상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 또한 제각각이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분명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고, 그 둘은 육체적 관계까지 가진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성인의 사랑을 이어간다.

그런데, 왜 나는 특히 주인공 남자의 사랑에서 플라토닉 사랑을 떠올리게 되는걸까..

 

그리고, 몇 번의 우연 끝에 남자와 그녀는 동거에 들어가지만 몇 번의 우연한 조우에 비하면 동거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끝맺게 된다. 남자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소설 속에서는 거의 드러나질 않아, 그녀의 사랑은 과연 사랑이긴 한 거였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그녀에게는 어떤 종류의 사랑도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녀의 방 한가운데 놓인, 물이 반쯤 채워진 욕조는 그런 그녀의 상실을 유일하게 채워주고 아픔을 씻어내는 도피처일 수도 있다.

 

시종일관 잔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욕조 속에서 출렁이는 물만이 동적인 요소를 느끼게 해준다.

사랑에 관한 철학적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이런 색깔의 소설은 한번쯤 북토크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님의 생각 혹은 다른 독자들의 해석을 들어보고 싶어진다.

 

 

 

 

 

 

[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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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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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단 그 작품의 출간 속도감만으로도 독자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거기에 더해, 그 많고 많은 작품들이 대부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기에 추리 미스터리 매니아들은 게이고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을 수밖에 없다. 그 마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로 재미있게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는 '사형제도' 이다.

나는 평소에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었기에, 이 소설에서 던지는 주제에 대해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읽어내려갔다.

우발적 충동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하는 가해자를 보면서, 그리고 그런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진 사법제도의 모호한 틀을 보면서 내가 다 억울해 미칠 것 같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사건 전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감옥에 수감된 후 진정한 속죄를 하는 가해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가석방을 위해 갱생하는 척 하는 가해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사회로 나와 적당히 사회에 묻혀 살아가던지, 아니면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가다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던지..

그 어느 쪽도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받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스토리는 전혀 별개의 것인듯 싶은데 뒤로 가면서 묘하게 서로의 이야기가 근접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원점에서 만나게 된다. 피해자의 가족이 강력히 주장하는 사형 판결과, 사형만이 최선의 처벌은 아니라는 대립된 두 입장은 이 소설의 마지막을 읽으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고, 작가 또한 이 주제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양쪽의 주장이 다 맞는 것 같다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고, 새사람으로 거듭나 진정한 속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를 보면서 사형제도 폐지론에 힘을 실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고, 또 나처럼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속죄에 대한 예시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고..

 

역시 나는 게이고의 사회파 미스터리물이 제일 맞는 것 같다.

너무 감성적이거나, 간혹 가벼운 분위기의 게이고 소설도 있는데, 이번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묵직함은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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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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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자체만으로도 로.맨.틱. 감성이 뿜어져 나오는 "파리".

그래서 이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은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번에 하빌리스에서 출간된 '파리에서 길을 잃다' 도 첫 이미지가 너무도 사랑스러운데 언뜻 표지와 제목만 보면 여행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지만, 쟝르 불문하고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를 떠나 런던에서 제인 오스틴 여행투어의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해나는, 한 해의 마지막 날 갑자기 들이닥친 엄마의 방문이 무척 불편하고 달갑지 않다.

그러나, 엄마의 방문을 통해 증조할머니가 해나와 엄마에게 파리의 아파트를 공동유산으로 남긴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이 아파트를 방문하고픈 목적을 가지고 나타난 엄마에게 끌려가다시피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

 

이 두 여인이 파리를 방문해서 유산상속을 처리하면서 증조할머니의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과, 증조할머니가 써 내려간 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스함이 묻어나고, 해나와 엄마의 티격태격 감정싸움도 귀엽기만 하다.

조금 제멋대로이고 무책임한 엄마가 살짝 맘에 안들긴 하지만..

 

증조할머니가 살았던 1920년대의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파리의 아파트는 상상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여기에다 헤밍웨이, 피카소 등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마치 '파리에서의 시간여행' 을 하는 느낌도 들고,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 가 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낭만적인 곳에서의 과거로의 여행 !! 정말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460여 페이지의 분량은 전혀 부담감 없이 술술 익히고, 특히나 이런 분위기의 영미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 하빌리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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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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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이 들면서 독서 취향도 바뀌는 것 같다. + 흥미롭게 씌여진 내용 덕분에 관심밖의 이야기가 어느 날 내 맘에 쏘옥 들어오는 경우일 수도..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줄이야 나 자신도 상상을 못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서 신화는 큰 재미를 느끼질 못했었는데, 작년에 신화 관련 책 한 권을 접한 후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갑작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했더랬다. 어떤 책으로 접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마침 이 신화 이야기가 출간이 되었고,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서 드디어 나도 완벽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의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이 책의 내용이 충실한지 좋은지 어떤지 비교는 할 수가 없지만, 객관적인 책의 평가만 보더라도 '아마존 신화분야 누적 판매량 압도적 1위, 초판 발행 80주년 기념' 이라는 완벽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왠만큼 아는 사람은 저자가 이쪽 분야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인 듯 싶다. (나는 해밀턴 이라는 이름만 보고, 작가가 남성분인줄 알았다.)

참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씌여졌고, 각 신의 이야기 옆에는 해당 신화의 명작이 매치되어져서(장작 100편의 작품), 이야기가 매우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신들을 접하면서, 많이 들어왔던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만나보면서, 특히나 예쁘고 특이한 신들의 이름을 보면서 갑자기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닉네임을 바꾸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너무너무 많은 그리스 로마 관련 서적 가운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첫 발을 이렇게 완벽한 책으로 만나게 되고, 그래서 더욱 큰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고마운 책이다. 소장가치 200%의 책 !!

다음 책은 어떤 책으로 도전하면 좋을까..혹시 이 서평을 읽고 초보자가 읽기에 좋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추천해주실 분이 계실까...

 



 

 

[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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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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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 !! 영미 단편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천재작가라고 하는데, 34살의 너무도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솜씨였다고 하니 이 책을 통해 이런 위대한 작가를 알게 되서 기쁘다.

< 차 한 잔 > 은 16편의 단편소설을 집필연도순으로 엮은 책으로, 다양한 여성들의 우울, 외로움, 혼돈, 가식 등의 내면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 낸 점이 특징이다.

 

16편의 이야기 가운데 어떤 이야기는 너무 짧아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야기가 술술 읽히면서도 결말은 굉장히 임팩트가 강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그 중 역시 제목의 작품인 < 차 한 잔 > 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상류 부르주아 여성의 선의와 위선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청 돈이 많은 로즈메리는 거리에서 자신에게 구걸하는 또래의 한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고 선의를 베풀지만 이 행동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고 로즈메리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 피곤한 아이 > 는 맨 처음 실린 내용인데, 처음 이야기부터 굉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남의 집에 얹혀 사는 한 소녀는 그 집의 꼬마서부터 갓난아기까지 줄줄이 이어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매일 잠도 부족하고 피곤에 절어 산다. 글을 읽다보면 소녀의 피곤함이 절로 전염이 될 정도이다.

그 피곤한 아이가 결국에는 피곤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저지르게 되는 행동은 너무 담담하게 표현되어져 더 오싹하게 다가온다.

 

< 어린 가정교사 > 는 가정교사 일자리를 위해 먼 곳을 혼자 떠나는 어린 소녀가,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친절한 노신사로 인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읽다보니 이런 미친..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고 호텔 밸맨의 태도도 화가 나고, 그 순진한 어린소녀의 불안감과 배신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간다.

 

짦은 생을 사는 동안 남동생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유산, 이혼 등 인생의 굴곡이 심했던 탓일까..대부분의 작품의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다.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보통의 평범한 단편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 외에도 주옥같은 단편들이 꽤 있는 듯 한데, 다른 작품들의 분위기와 스토리도 새삼 궁금해진다.

 

[ 코호북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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