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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밤잠을 설치며 읽은 책이다. 중반 이후까지 다소 드라마적인 분위기도 띄면서,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없지만 웬지 내용의 요소요소에 복선이 깔린 듯 하고, 폭풍전야처럼 이 모든 잔잔함이 어느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칠 것만 같다. 그래서 초반부터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적중했다. 드디어 범인의 계획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마무리단계? 라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반전이 이어지면서 다시금 이전 내용을 되새기고 머리속으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나'가 두명이다. 그리고 시제까지 감안하면 세 명의 '나'가 등장하게 된다.
삼류학교에 다니면서 근처의 일류명문학교 세인트오즈월드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주인공 '나'. 어른이 되어서 이 세인트오즈월드의 교사로 근무하게 되는 같은 주인공 '나'.
그리고 세인트오즈월드에 33년간 근무하고 있는 라틴어 교사인 '나'.
초반에는 이들의 '나'가 서술하는 내용과 존재가 다소 헷갈렸는데 어느 순간에는 각자의 존재가 정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심취하게 된다.
한 아이가 어릴 때 품었던 동경과 질투가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그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몇 십년을 계획하는 주인공.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릇된 가치관으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주인공의 그 집착이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도 난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과 동경.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친구에 대한 무한한 사랑 등 불안전한 시기의 단순함과 집창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명문학교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라 그런가. 이 소설 자체도 굉장히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체스게임을 기본바탕으로 전개되는 내용답게 주인공 이릅도 비숍, 킨, 나이트 등이고 각 장의 제목도 체스의 말을 따고 있다.
한 사람이 공을 들여 만든 거대하고 정교한 계획에 서서히 그리고 어느 순간에 급속도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세인트오즈월드의 모습은, 돈의 힘에 의해 운영되어지고 부패의 기운이 만연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모험을 감행할 줄 모르는 속물세상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소름끼치는 심리스릴러이자 범인의 예측을 기대하기 힘든 매력적인 추리소설이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