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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10년만에 재출간한 천재 작가의 인장 같은 소설 < 미궁 > 을 나는 이제서야 만나보았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 악과 가면의 룰 > 만 읽어봤었는데 분위기가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이번 작품도 일단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우울하고 어둡고 미스터리하기만 한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미스터리물이 흔히 보여주는 그러한 어두움과는 다소 결이 다른 어두움이 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22년 전 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12살 딸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건이 있었다.
집에 침입한 흔적도 없었고, 지문도 없고, 화장실 창문만 유일하게 열려 있었지만 어린아이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작은 틈새. 흔히 말하는 밀실살인사건인 셈인데 죽은 엄마의 사체는 수백 마리의 종이학이 나체상태의 온 몸을 덮고 있어 더 큰 충격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고 미궁에 빠진 채 22년이 흐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신견은 우연히 알게 된 사나에라는 여성과 하룻밤을 지낸 후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사이가 되는데,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탐정을 통해 22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자신이 최근 알고 지내는 사나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탐정의 요청과 자신 스스로의 열망에 의해 이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이 신견이라는 남성은 자신의 내면에 'R' 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품고 수시로 그와 대화하곤 하는데, 이 'R' 의 존재는 실제로 저자가 경험했던 내면의 인물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가공의 친구를 만들 정도로 힘들었던 저자의 삶이 투영되면서, 소설 속 신견이라는 인물의 분위기에 저자의 모습이 살짝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나에라는 여성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또한 다소 어두운 분위기이다. 그 당시의 그녀의 오빠 또한 어두운 자아와 표출하지 못하는 성이 맞물리면서 굉장히 암울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이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앞서 얘기했듯이 우울 그 자체 !!
어릴 때 끔찍한 사건 속에서 살아남은 사나에가 신견에게 들려주는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는 또다른 사건의 실체가 조금은 충격적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해서 그닥이지만,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나 마무리까지 한 방을 먹이는 방식 덕분에 꽤나 흥미롭게 읽혔고, 독특한 소설로 기억될 듯 하다.
[ 놀 출판사 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