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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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두께지만 마치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처럼 술술 읽히면서도, 마음 한 켠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인 저자가 한국전쟁 이후 기지촌에서 일하다 상선선장인 미국인 남자를 만나 이민 온 자신의 어머니 '군자' 에 대한 저자의 회고록이다.

 

군자의 삶을 통해, 말로만 듣던 힘들고 외로웠을 이민 1세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정책적으로 이용했던 이승만 대통령 집권시절, 한국 사회에서 공립학교도 다닐 수 없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할 수도 없었던 혼혈아동에 대한 정책, 외화획득의 일환으로 이용했던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멸시의 눈초리 등 그 당시 한국의 흑역사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대단한 생활력을 지녔던 군자의 삶 가운데 특히나 정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야생에서 먹거리를 채집했던 당시의 이야기이다.

집 근처 숲에서 지척에 깔린 고사리를 채집하고, 우연히 블랙베리를 발견한 이후 베이킹과 병조림을 이용해 블랙베리 판매 사업을 성공시키고, 익숙치 않은 영어로 버섯 전문학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통달해 버섯 사냥에도 전문가가 되었다.

 

1년의 반은 바다에 나가있고, 생활비도 넉넉하게 주지 않았던 남편을 대신해 낯선 이국땅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군자는 소년원에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고, 위에 언급했듯이 야생 먹거리 채집에 중독될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마을에 한국 이민자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한국의 음식들을 만들어 고향의 향수를 달래줬을 정도로 정말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울 정도로 강한 여성이었다.

 

저자가 중학교 시절부터 군자는 조현병을 앓게 되고 그 후에는 집에서 은둔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차 피폐해진 삶을 살다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엄마를 잃은 후 사무치도록 엄마 군자를 그리워하는 저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살아 생전 그토록 딸에게 주입시켰던 '김치' 에 대한 애환은 엄마의 죽음 이후 엄마와의 추억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한국전쟁에서 가족의 반을 잃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거의 홀로 자녀를 키워야 했고 조현병을 앓다 굴곡진 생을 마감했던 강인한 여성 '군자' 의 삶과 한국의 역사를 이 책으로 꼭 만나봤으면 좋겠다.

 

p.s 1 : 이 책을 읽으면서 '군자'라는 여성이 너무 궁금해 구글에서 찾아보니 과연, 저자가 말한대로 정말 미인이시다.

 

 

p.s .2 : 원서의 표지는 군자가 살면서 가장 애착을 느꼈던 음식에 대한 애환에 중점을 두었다면, 한국번역판은 한국인만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전쟁 당시의 분위기를 표지에 실었는데 이 두 차이가 흥미롭다.

 

 

 

 

 

 

[ 책블로거 인디캣님  서평이벤트에서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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