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피운사이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만년필로 필사도 해야하고 일기도 써야하는데 쉽게 책상에 앉아지지 않는다. 그냥저냥 소파에 기대앉아 핸드폰 보는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을뿐다. 그렇게 축 쳐진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속에 한가득 부담은 가지고 있었다.
올해도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엇그제가 연초 어쩌고 하면서 훌러덩 가버렸는데 벌써 또 한해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니 믿을수 없다. 또 한편으로 나이먹는다는게 그냥 하루하루 노쇠해 지는게 아니라 단순 숫자놀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보다 나의 내일이 더 늙고 그런게 아니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나의 세포에 큰 차이가 없을텐데 숫자놀음하면서 멀쩡한 나에게 노화를 심어주는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생겼다. 이런 정신무장을 하면 ‘방부제‘같은 삶을 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수 있지 않을까하는 허무맹랑한 상상도 해본다.
그러면서 밀린 숙제를 하듯 마음에 한가득 짐으로 남아 있는 일을 이제부터 조금씩 해야겠다. 그것은 만년필을 이용해 책 글귀를 필사하는 것과 일기쓰기이다. 한 5년전에는 하루하루 직장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를 수첩에 적어 내려갔더니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고 스트레스 받은 날에 수첩에 그날의 사건을 기록하면 그게 전체적으로 분석이 되고 내가 받은 스트레스의 깊이가 재어지면서 감정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스트레스 덩어리들을 밀봉된 상자에 가두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스트레스를 받았으면서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은 내가 받았던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수 없어서 계속 그 사건에 집중하느라 저녁시간을 온전히 즐길수가 없다. 저녁 내내 그 안좋은 일이머릿속에 떠다니는 안개나 연기와 같았다. 그날의 사건과 스트레스를 만년필을 이용해 노트에 기록함으로써 밀봉된 상자에 그 감정을 가두는 그 루틴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좋은 기억도 적어두면 그 감정의 기쁨은 배가 되지만 좀 자만스런 부분이 있어서 좋은 날은 그냥 흥청망청 시간을 낭비하고 소파에 축 퍼지게 된다. 뭔가를 이룬날 책상에 앉아서 꼼꼼하게 정리하는것보다 뭔가를 먹고 마시며 그 시간을 탕진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즐거움의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 각인효과도 없이 과거를 생각하면 즐거운 날보다 안좋은 기억들이 더 들어버리는것 같다.
이제 다시 감정을 정리하고 감정의 깊이를 가늠하고 분석하고 내일을 위한 새로운 각오의 윤활제가 되기 위해 일기를 써야한다. 만년필 케이스에서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의 만년필을 깨워 색색의 아름다운 잉크로 일기를 채워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