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왕조 쿠테타의 주역인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면서 고려사실록을 없애 버렸을것이라는 추측이다. 고려왕조는 조선왕조보다 더 독자적 연호인 "준풍"을 사용했던 제후의 나라가 아니라 천자의 나라였다.
60p ,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 듯한 인식을 갖게 되는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과도하게 조선왕조를 비하하고 제후국으로 행사했던 프로토콜, 명에 대한 굴종의 아이덴티티에서 비롯된다.
61p 이성계도당의 "구차투생'의 윤리관이 이씨조선의 지배계급의 생리가 되었고 이것이 양녕대군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이승만에게 계승되었다. 이성계의 조선창업에 반대한 고려유신들의 정조가 "정선아리랑"에 녹아있다.
" 눈이 올라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6.25라는것이 단순히 남북간의 협애한 군력투쟁의 결과로 동족상잔의 비극일뿐아니라, 보편사적인 관심에서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도올은 말한다.
"6.25는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한 국면이다."
미국은 한국통치를 위해서는 일제 강점의 모든 체제를 다시 부활시켜 유지 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140p
우리가 해방이 된것은 1945. 8.15일부터 딱 3개월이고 그 이후 미국의 한국통치 및 그 이승만이라는 작자의 농간에 놀아난 기간이고 거북선을 만드는데 기여했던 전라도민, 게다가 아이들까지 다 사살하라는 이승만의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동아시아에 맥아더가 저지른 실수는 일본 천황제를 그데로 존속시킨것이다. 이승만은 105인 사건으로 105명의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가두고 검거열풍을 피해 미국으로 1912년 망명한지 33년만에 귀국해서 지 맘데로 독립운동가 행세를 했다.
이제라도 우리는 세밀하게 알아야 하고 동시에 전체를 볼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105p , 여순반란이라고만 우리가 알고있었던게, 1948. 10. 19 부터 8일만에 여수시가 불타면서 여수 14연대 군인들을 비롯한 다수 사람들이 지리산 등지로 피신하여 저항활동을 계속했던 한마디로 "여순 민중항쟁" 이다.
158p, 무기를 포기하지 않은채 산으로 갈수밖에 없엇던 사람들, 이들을 우리는 막연하게 '빨치산'우리나라의 최초의 빨치산은 산으로 피신할수 밖에 없었던 '보통사람위원회'였다.
남한의 인민위원회중 가장 조직력이 좋은데가 '제주도 인민위원회'였다
제주4.3사건도 제주 민중항쟁으로 바꿔야 한다. 1948. 4. 3 새벽2시 350명의 무장대가 잔혹한 경찰대와 우익단체를 공격했는데 그러는 과정에 민중들이 받은 핍박은 말로 다 할수 없다. 제주항쟁은 무장봉기가 아니었다.
250p 제주에서 서경과 경찰이 양민을 학살하는데 힘이 모자라 여수에 있는 14군대까지 동원하여 제주도로 가라고 국가에서 명령하자 양심있는 군인들이 그 명령에 불복하여 시가전 벌이다가 지리산으로 쫒겨간 사건이 여순항쟁이다. 우리 역사에서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 사건으로 둘을 따로 볼수 없다.
도올은 이 사건의 연관성을 말하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 파고든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남자들이 살기 힘든 곳이라 이들이 조선대륙 해안 남부에 정착하여 이들을 '두무악'이라고 부르는데 남해안 어부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조선술을 가진 이들이 이순신의 거북선 축조에도 많은 일조를 했는데, 같은 동족인데 여순항쟁때 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승만 정권이다.
271p 임진왜란 7년, 이순신과 합심해서 판옥선, 거북선을 만든 여수,광양,순천,구례 일대의 전라도 인들이 처참하게 당하게 되는 비총(코무덤)도 정유재란때의 일이다 잘려진 코가 10,040개에 이르고 이것과 여순의 민중이 이승만 토벌꾼에게 당하는 모습사이에 묘한 아날로지가 성립된다.
302p, 이승만은 11.4 담화를 내려 어린아이들까지 죽이라고 한다.
278p 전라도인의 항쟁을 남로당과 연결 짓는것도 이승만의 모략에 악용당하는 불행한 인식이다.
우리는 개념의 오염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공산당이라고 알고 있는것은 무조건 나쁜것이라는 초등학교때부터 세뇌받았던 것들이 모두 잘못된 교육이었고, 어느 교사도 우리에게 진실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공, 인민 이 공산당의 언어가 아니라 모든것이 조선때부터 사용하던 우리들의 언어이고 공산당은 남한에도 있었고 북한에도 있었던 한마디로 좋은 뜻이고 독립운동을 위한 효율적이고도 체계적인 투쟁이론이고 혁명사상이다. 인민위원회도 존선의 민중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일종의 소비에트(노동자,농민, 인민들의 자치기구). 인공은 김일성이 나중에 만든 사회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가르키는게 아니라 여운형이 조직한 '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여운형이 해방후 결성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독립운동가 석방을 가져왔다. 여운형은 김구보다 10살아래로 신한청년당을 결성했고 3.1 민족독립만세에 기여했다. 3.1운동이라는 말도 꼭 새마을 운동처럼 들리기에 좋은 용어가 아니다. 3.1민족독립만세운동이라고 해야한다.
우리는 신탁이라는 것도 우리나라 지배권을 넘긴다는것으로 잘못알고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임시조선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미,소양국의 합리적 후견으로 3년을 넘지 않는다는것으로 만약 신탁통치가 되었다면 이승만같은 독재자가 두번이나 대통령을 해먹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