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의 big five 차원들

오늘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성격이 2개, 3개, 16개 또는 18,000개보다는 5개의 요인으로 가장 잘 파악이 된다고 보는 데 동의한다. 이 big five는, 애칭으로서도 사용되는데, 성경의 5요인 모델의 다섯 가지 특성들이다.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성실성 conscientiousness, 외향성 extraversion, 동의성 agreeableness, 신경성 neuroticism.

497쪽

- 아동기에는 변동이 큰 것이 통상적이고, 청소년기가 되면 변동이 적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성격이 변화된다.

- 많은 특성 이론가들은 뇌이 구조와 생물학적 매커니즘의 불변성이 성격 특성의 일생에 걸친 놀라운 만큼의 안정성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 뇌 손상은 확실히 성격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성격상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 경우, 검사를 해 보면 이들에게서 알츠하이머 병, 뇌졸중, 뇌종양 등과 같은 문제가 있따는 것이 많이 밝혀졌다.

- 뇌에 있는 화학 물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항우울증 약의 복용이나 약물 치료가, 예컨대 외향성을 증가시키고 신경증을 완화시키는 것과 같은 식으로, 성격상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유전인자, 특성, 그리고 성격>

- 성격에서 생물학적 요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행동유전학 영역에서 나온다.

- 한 연구들을 종합해 본 결과 일란성 쌍생아들이 이란성 쌍생아들에 비해 성격의 유사성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당신의 유전인자가 어떤 사람의 유전인자와 비슷하면 할수록 둘 간의 성격이 서로 비슷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 ***유전인자는 대부분의 성격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며,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성격에서 유전적 성분의 영향은 그 추정치가 평균 .40~.60의 범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유전성 계수는 개인차에서의 약 50%는 유전적 요인이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물론 유전적 요인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성격 차이에서의 나머지 반은 생활 경험에서의 차이 및 여타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 서로 떨어져서 성장한 일란성 쌍생아들도 함게 성장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성격이 서로 유사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이다. 정말로, 아주 도발적이면서도 관련성 있는 한 가지 연구 결과는 ***부모의 이혼이나 양육 방식과 같은 공통적 환경 요소는 성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일군의 유전인자들이(또는 여러 세트의 유전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보수주의적 또는 진보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특성이나 경향성을 만들 수 있다.

- 유적적 요인은 종교나 정치와 같은 일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경직되게 또는 유연하게 생각할 것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499~501쪽

< 남성적 성격과 여성적 성격이 따로 있는가?>

***전반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 간에 성격상에서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 성격에서의 성별 차이의 기원에 관한 논쟁
: 진화 생물학적 관점 vs (사회적 역할 이론으로 알려진) 사회-인지적 접근

- 진화생물학적 관점은 남성과 여성이 번식에서 성공적이기 위한 행동이 일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성격에서 차이가 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남성의 공격성 - 성적인 경쟁자 위협, 여성의 동의성 & 보살펴 주는 성향 - 자식 생존 보호, 신뢰성 있는 배우자와 부양자를 확보하기 위해 진화)

- 사회적 역할 이론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간의 성격 특성과 행동 방식에서의 차이는 각각의 성별에게 부과된 문화적 기준과 기대(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일, 활동, 가족 내에서의 위치)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본다.

5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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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경우> 서문

**한 철학자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에도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기가 사는 시대를 자기 안에서 극복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격력한 싸움을 벌이는 대상은 무엇인가? ** 그를 그 시대의 아들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자! 나는 바그너만큼이나 이 시대의 아들이다. 내가 한 사람의 데카당이라는 말이다.

11쪽.

바그너의 경우 (2)

내가 가장 깊이 몰두하고 있는 것은 사실 데카당스라는 문제이며,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선과 악‘은 이 문제의 한 가지 변형일 뿐이다.

 몰락의 표지를 응시하는 자는 도덕을 이해하며 - 도덕이라는 가장 신성한 이름과 가치 정식들 밑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는지를 이해한다 : 황폐해진 삶과 종말에의 의지와 큰 권태가 거기에 숨 겨져 있다는 것을, 도덕은 삶을 부정한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나는 나를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 -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현대적 ‘인간성‘ 전체를 포함해서 내게 들어와 있는 온갖 병증에대항하는 것이 필요했다. - 시대적인 모든 것과 시대에 맞는 모든것에 대한 깊은 소원(陳遠), 철저한 냉각, 깊은 각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눈을, 인간의 모든 사실을 엄청난 거리를 두고 개관하는 그의 눈을 인간의 모든 사실을 자기 아래에 있는 것으로 굽어보는 눈을 최고의 소망 사항으로 하는 일이 필요했다.
.…… 이러한 목표 - 이 목표를 위해 과연 어떤 희생이 불필요하다.
고 할 것인가? 어떤 자기 극복‘ 이! 어떤 자기 - 부정 이!

 나의 가장 큰 체험은 병의 치유였다. 바그너는 내가 가졌던 병증 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 철학자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를 마음에 걸려 하지 않으면 안 되며 - 그러기 위해 그는 그 시대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성은 바그너를 통해서 자신 안에 있는 가장 내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성은 자신의 선한 면도 숨기지 않고, 악한 면도 숨기지 않는다. 현대성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12 - 13쪽.

본능이 자신을 합리적으로 만들면 본능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본능이 자신을 합리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의해 본능을 스스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지요.

55쪽.


바그너의 경우 후기

모든 시대는 자신이 갖고 있는 힘에 의거해 그 시대에 허용할 수 있는 덕과 금지해야 하는 덕 또한 결정한다. 한 시대는 ‘상승하는‘ 삶의 덕을 갖거나 아니면 그 시대 자체가 ‘하강하는‘ 삶이다.

: 그래서 데카당스 미학이 있고, 고전적인 미학이 잇으며 - ‘미 그 자체‘라는 것은 관념론 전체가 그렇듯이 하나의 망상이다.

소위 말하는 도덕적 가치라는 좀더 작은 영역에서는 주인도덕과 그리스도교적 가치 개념을 가진 도덕과의 대립보다 더 큰 대립을 찾아낼 수 없다.

: 후자는 철두철미하게 병든 토양에서 자란다(-복음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그려내는 생리적 유형들과 똑같은 유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반대로 주인도덕(‘로마적‘ 이고, ‘이교적‘ 이고, ‘고전적‘이며, ‘르네상스‘적인)은 제대로 잘되어 있다.
Wohlgerathenheit는 것에 대한 표현, 상승하는 삶에 대한 표현, **삶의 원리로서의 힘에의 의지를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그리스도교 도덕이 본능적으로 부정하듯이 ( ‘신‘, ‘피안‘, ‘탈아‘ Entselbstung‘ 한갓 부정일 뿐), 주인도덕은 본능적으로 긍정한다. 

**주인도덕은 자기의 충만함을 사물들에 떼어 나누어준다. 그것은 세상을 신성화하고 아름답게 만들며 합리적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교 도덕은 사물의 가치를 빈곤하게 하고 창백하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어버리며 세상을 부정한다.

 주인도덕을, 고귀한 도덕을 곁눈으로 바라보면서( 아이슬랜드의 전설은 거의 그 도덕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 ), "비천한 자의 복음" 이나, 구원의 필요성이라는정반대되는 가르침을 입에 올리다니!

67쪽.

바그너의 경우 후기 (2)


바그너가 그리스도교인이었다면, 리스트는 아마도 교부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자기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자아는 항상 가증스러운 것이나 - ***고귀한 도덕, 주인도덕의 뿌리는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의 함성을 올리는 긍정이다. 그것은 삶의 자기 긍정이고, 삶의 자기 찬미이며, 마찬가지로 숭고한 상징과 실행 방법을 필요로 한다.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있는 이러한 순진무구, 거짓 속의 이러한 ‘선한 양심‘은 오히려 현대적인 것의 전형일 것이며, 거의 현대성에 대한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모순되는 가치들을 제시하며, 두 의자 사이에 걸치고 앉아, 그렇다와 아니다를 한 번에 같이 말해버린다.

69쪽.


우상의 황혼


***8.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
나를 죽게 하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77쪽)

7. 어떤 것인가? 인간이 신의 실책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신이 인간의 실책에 불과한 것인가?

8. 너 자신을 도와라. 그러면 모두가 너를 도울 것이다. 이웃 사랑의 원리.

31. 밟힌 지렁이는 굼틀거린다. 똑똑한 일이다. 지렁이는 그렇게 해서 또 다른 것에게 밟힐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도덕언어로 말하면: 순종한다 -

해설 by 백승영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디오니소스 송가>를 1889년 1월 3일에 완성시킨 직후 니체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쓰려져 버리니, 그가 흡사 자신의 운명을 예감해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1888년 한 해에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9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게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제 현대 세게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566쪽

해설 (2) by 백승영


***결국 철학자 니체의 최후의 폭발적인 분노는 데카당스로 향해있었고, 데카당스라는 문제에 대한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였던 것이다. 데카당스 시대인 현대에 대한 분노를 그는 그리스도교라는 현대성의 공통의 뿌리를 드러내고 공격하면서 표출시킨다.

이러한 격정 안에서 니체는 오랫동안 기획했던 《힘에의 의지 또는(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제목을 갖게 될 책을 저술하는 것을 포기하게된다.1) 이 결단이 니체가 엄청난 체계적인 작업을 위한 그 자신의 힘이부족함을 인식해서든, 아니면 자신의 기획이 원칙적으로 수행 불가능했 음을 인식해서는 그는 이제 그 기획 대신 다른 작품들을 통해 현대 세계에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 좌절된 저술 기획의 일환으로 이미 작성되어 있던 소묘들의 일부가 우상의 황혼》과 이것의 쌍둥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티크리스트>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특히 그리스도교는 예술을 부패시키는 주범이자 현대의 도덕과 세계관과 형이상학의 공통된 뿌리로, 노예 근성을 지닌 인간들의 큰 반란을 불러일으키고 민주적인 평준화의 길을 닦는 주범으로 공격당한다. 결국 그리스도 교는 삶을 부정하고, 긍정하는 충동을 억압하는 데카당스 현대성의 전형으로 니체의 분노를 산다. 

이보다 먼저 《힘에의 의지가 완전히 포기되기 전인 1888년 초에 《바그너의 경우가 완성되고, 니체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 데카당스의 문제를 바그너 예술을 그 전형으로 삼아 공격하면서 풀어보려고 한다. 바그너는 데카당스 예술가이고, 현대 예술이 바그너적인 분위기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니체는 현대 예술을 생리적으로 참이낼 수 없었다. 그는 바그너를 음악을 병들게 한 존재로 등장시키고,
파르지팔>을 비제의 카르멘>에 대비시키며 논박한다. 
567쪽

<바그너의 경우> 해설


<바그너의 경우>에서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를 공개적으로 논박하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서 바그너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가이자, 데카당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성에 대한 총괄 개념으로 등장한다.

 ***니체는 자기의 시대, 즉 데카당스 시대를 자기 스스로 경험한 후 자기 안에서 극복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철학자이고 싶어 한다. 

그런 철학자 니체의 눈에 바그너는 음악을 병들게 한 자이자, 음악이 데카당스 예술로 변질되어가는 운동을 가속시킨 주범이며, 데카당스 미학의 설교자로 미친다. 

바그너의 배우 기질이나 음악의 연극화나 극장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바그너의 예술이 이상주의를 무기로 해서 지쳐 있는 것, 죽어버린 것, 삶에 위협적인 것, 세계 비방적인 것을 보호하면서 이상이라는 허울하에 반계몽주의를 설파하고 있기때문이다. 

***더 나아가 데카당스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장려하는 것, 즉 황폐해진 삶의 토양에서 자라는 것, 초월과 피안이라는 날조된 것을 바그너의 예술이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바그너는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인 현대 예술가로 지목된다. 

***이런 데카당스 예술과 미학은 현대의 도덕을 표현한다. 즉 하강하는 삶의 도덕이자, 삶과 세상을 부정하고상승하는 삶의 도덕을 증오하는 도덕을, 니체는 이런 데카당스 미학과 이런 데카당스 예술에 이별을 고한다. 삶의 자기 긍정과 자기 지배를 장려하는 주인도덕을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예술과 위대한 예술로의 회귀를 위해, 고전 미학으로의 회귀를 위해, 자연과 건강함과 명랑성과 젊음과 덕으로의 회귀를 위해

5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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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종교의 전망 (1)

현대 세계에서 종교는 여전히 중요하며 영미권 무신론자들의 (그 중요성을 증언해주고 있는) 새로운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하기 까지 하다. 

** 어떤 측면에서는 1960년대 이후 종교가 극적으로 부활했다는사실에 전혀 의심을 품을 수가 없다. 

** 종교가 비록 지식 세력은 아니지만뚜렷하게 주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러하다. 

거대한 ‘이란혁명‘은 18세기의 미국 혁명 이래 종교적 측면에서 행해진 최초의 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에 이르는 거대한 혁명들뿐만 아니라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들에 영감을 주었던 계몽주의의 담론을 내던져버렸다. 

유대인들 사이에서건 이슬람인들 사이에서건 똑같이, 중동의 정치는 신성한 경전의 정치가 되었으며 놀라운 정도로미국 정치도 그렇게 되었다. 

예전의 전통과는 전혀 별개로, 이런 경향이 20세기의 새로운 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는 쉽다. 전통적으로 시오니즘에 적대적이던 정통 유대교는 1967년의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가 기적으로 인식되자 시오니즘에 동조했으며,
일부 랍비들이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일은 구세주가 도래한 후에야 해야 할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는 행위를 정당화해주었다.

250쪽

공적 종교의 전망 (2)

이집트의 이슬람 형제단에서 떨어져 나온 한 극단주의 분리파가 아주 편협한 형태의 정통주의 바깥에 있는 사람을 누구든지 "배교자" 로 죽이는 행위에 대해서 신학적 정당화를 재개한 것은 **1970년대 초가 되어서이다. 무고한 자들을 죽이는 일을 정당하게 인징한 것은 **1992년에나 내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전통적 이슬람 정치체제가 아니라 신정적 형태의 근대 영토국가를 도입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정형화된 정치가 마우레타니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강한 인상을 주면서 복귀했다. 터키는 이슬람 대중정당이 후원하던 군사적 세속체제에서 눈에 띌 정도로 멀어져갔다. 1980년 강력한 힌두 정당의 창설(1998-2004년에 집권)로 힌두교의 다원성을 하나의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정통주의로 환원시키는 움직임이 부각되었다. 현재의 세계 정치에서 어느 누구도 이런 조류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교적 신앙과 관행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흥기하는 일이 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보다 덜 분명하다.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이동은 특히 기독교 내에서 있어왔다. 

빠르게 팽창하는 복음주의적 그리고 성령강림주의적/카리스마적 프로테스탄티즘 공동체 내에서 종교적 열정의 증가는 아메리카와 그밖의 지역에서 뚜렷하다. 1970년대 이래 인도네시아처럼 예전에는 매우 평온한 지역들에서 이슬람교가 뒤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잠시 언급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지난 세기에 특히 인상적으로 약진했던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주요 세계 종교들이 1900년 이래 지반을 많이 넓혔다고 말할 수는 없다.

251쪽.

공적 종교의 전망 (3)

물론 소련과 제도적으로 무신론이었던 그밖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탄압받았던 종교가 재등장하게 되었으며, 러시아에서는 다시 공식적으로 국교가 되었다. 비록 폴란드를 예외로 한다면 공산주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유일신 신앙이 세속주의가 아니라 전통적인 애니미즘 신앙을 대신하면서 지반을 확장해갔다. 비록 이런 애니미즘 신앙이 때로는 새로운 유일신교와 과거의 제의를 뒤섞어 결합하는 형태로 빚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직 아프리카의 세 나라에서만 토착적인 혼합 신앙이 연전히 다수를 대표하고 있다.

세속화된 세구에서는 이전 신앙의 위축을 대체할 목적으로 새로운 제의를 만들거나 기이하고 전반적으로 모호한 영성적 제의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종교가 공적인 장에서 이렇게 이론의 여지없이 흥기한 사실은 근대성과 세속주의가 협력하면서 진격할 것임이 틀림없다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견해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사실, 사상가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실제로는 많은 역사가들이 종교가 공적 담론의 유일한 언어를 제공하던 그 시절 이래 가장 많이 세속화된 사람들의 사상이 등장해온 정도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들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세속화가 끼친 양적인 충격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거나 아니면 오히려 거기에 성공적으로 대항했떤 광범한 부류의 사람들 - 주로 여성과 농민 -을 무시했다.

기본적으로 19세기의 세속화는 그것의 정치적 이면인 반교권주의와 마찬가지로 교육받은 중간 및 상층 계급 남성들과 평민 정치활동가들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역사가들이 젠더에, 혹은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운동이 농촌에서 미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였는가? 그들은 또한 19세기 기업가 계급 및 자본주의 관게망의 형성에서 종교가 수행한 엄청난 역할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경건파 직물 수공업자들, 특히 위그노, 유대인 혹은 퀘이커 은행이 그것이다.

253쪽

공적 종교의 전망 (4)

사회적 격변의 시기에는 종교가 마르크스가 말한 "무정한 세게의 심정"이 되는 그런 사람들에게 역사가들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요컨대, 19세기 서구의 역사를 일련의 종교적 진격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럴 수 있기는 하지만, ‘근대화와 세속화‘가 분명히 지난 두 세기 반 동안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함게 진행되었으며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과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오히려 더 빨라졌을 수도 있다.

하나의 신앙에서 또다른 신앙으로의 개종이 서구에서 진행되는 종교의 의무와 관행의 지속적인 쇠퇴를 감출 수는 없으며 신분 간의 결혼 허용이 하나의 지표라면 인도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사실 이런 경향은 1960년대 이래 가속화되었다. 이는 기독교 종교 중 최대 종파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뚜렷한데, 그런 점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

16세기와는 달리, 이 교회에 대한 위협은 종교적 이견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래 이탈리아 여성들이 산아제한으로 대거 전환했던 경우에서처럼 무관심이나 무언의 불복종에서 찾을 수 있다. 가톨릭 사제 지원이 1960년대 중반에 급갑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더불어 종교기관의 종사자 수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그 수가 1965년 215,000명에서 2010년 75,000명으로 떨어졌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더블린 교구는 2005년에 성직을 수행할 단 한 명의 신부도 구할 수가 없었다. 현 교황(베네딕트 16세) 자신의 고향으로, 전통적으로 신앙심이 깊은 레겐스부르크에서는 그가 방문했을 때 고작 75명만이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동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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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형제단에서 떨어져 나온 한 극단주의 분리파가 아주이집트의 이슬람 형제단에편협한 형태의 정통주의 바최대의 정통주의 바깥에 있는 사람을 누구든지 "배교자" 로 조이이에 대해서 신학적 정당화를 재개한 것은 1970년대 초가 되어서,
5이다. 무고한 자들을 죽이는 일을 정당하게 인정한 것은 1990년에이 내부에서부터 시작되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전통적 이슬람 정 제가 아니라 신정적 형태의 근대 영토국가를 도입한 것처럼 보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정형화된 정치가 마우레타니이 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강한 인상을 주면서 복귀했다. 터키는 이슬람 대중정당이 후원하던 군사적 세속체제에서 눈에 띌 정도로 멀어져갔 다. 1980년 강력한 힌두 정당의 창설(1998-2004년에 집권)로 힌두교의다원성을 하나의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정통주의로 환원시키는 움직다 임이 부각되었다. 현재의 세계 정치에서 어느 누구도 이런 조류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교적 신앙과 관행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흥기하는 일이 있었는지그렇지 않은지는 그보다 덜 분명하다.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눈이휘둥그레질 정도의 이동은 특히 기독교 내에서 있어왔다. 빠르게 팽창하는 복음주의적 그리고 성령강림주의적 카리스마적 프로테스탄티즘이동제 내에서 종교적 열정의 증가는 아메리카와 그밖의 지역에서 뚜렷이다. 1970년대 이래 인도네시이처럼 예전에는 매우 평온한 지역들에서교가 눈에 띌 만한 정도로 다시 흥기하는 일도 그러하다. 나는뒤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잠시 언급할 것이다. 그렇시‘
르담교가 지난 세기에 특히 인상적으로 약진했던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주요 세계 종교들이 1900년 이래 지반을 많이 넓였다.
없다. 물론 소련과 제도적 1900년 이래 지반을 많이 넓혔다고 말할 수는는 소련과 제도적으로 무신론이었던 그밖의 국가들이 붕괴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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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정치학

 최초의 유대인 아브라함의 도주를 생각해보자. 그는 도시 생활의 화려함에서 멀리 떨어져 유목 생활을 하기 위해 문명 세계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르를 떠난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도시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도시, 국가, 정치권력에 대한 의심은 성서를 통틀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테마이다.

  이는 모세 이야기에서도 되풀이되는데, 
모세는 국가를 초월한 더 높은 권위를 빌려 통치자, 여기서는 파라오에게 책임을 묻는 예언자의 전형이다. 예언자 개념은 성서가 정치사상에 가장 중요하게 이바지한 부분이다.

성서의 정치적 가르침을 살펴보면, 대체로 정부(유대인 정부이든 비유대인 정부이든 가릴것 없이)가 내세우는 법은 불공정하며 통치자들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는 식의,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고발이다. 

<<내가 알기로 성서처럼 분명하게 개인의 양심을 정치 통치자들의 권위보다 위에 두는 고대의 문학작품은 결코 없다.>>

 그리스 사상에서 예언자의 역할에 가장 가까이 그나마 근사치로 접근한 것이 소크라테스가 차지한 위치다. 소크라테스는 해서는것을 알려주는 자신의 디이몬 dainon [신령]에게 불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한다.

176쪽.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데스가 말했던다음 대목을 떠올려보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소크라테스, 당신이 우리를 떠난다면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야말로 여러분 중 일부를 설득해내기가 무엇보다 까다로운 대목입니다. 

*** 이건 ‘신에게 불복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조용히 지내기 불가능하다고 내가 말하면, 여러분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비꼬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또 반면에 내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일은 날마다 덕목에 대해 토론하고, 지금 여러분이 듣고 계신 것처럼 대화를 통해 내가 나 자신과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검토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 ‘검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는 나를 훨씬 못미더워할 겁니다." (37e~381)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우리 식으로말하면 시민 불복종이라 할 만한데, 그의 호소는 역대 그리스인들이 한주장 가운데 지도자들을 꾸짖는 성서 예언자의 주장에 가장 근접하다.

국가와 지배 권력 같은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야말로 성서가남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유산이다.

 성서는 정치의 어떤 면이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보고 있을까? 

*** 국가와 정치적 지배가 위험한 이유는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상숭배 금지 계명은 성서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일 것이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금이나 흙으로 된 사물을 향한 숭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우상은 여러 형태를 띨 수 있다. 우상은 사회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무엇배하는지 말해주는 바로미터와 같다. 

177쪽

우상은 돈일 수도 있고 명성, 건강, 지위일 수도 있으며,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성서가 가르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신은 오직 하나라는 것, 오직 이 신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제도 속에서 신의 대리물을 찾는 일이나, 우리를 통치하면서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성서가 확실하게 경고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통치자를 신으로 만드는 이런 경향(아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경향)이다.

우상숭배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오랜 미신만은 아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영원한 기질로 남아 있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 또는 제의에 어떤 초인적 힘을 투사投射하는 일종의 물신화이다.

 우상숭배는 이런 힘이 투사된 사물에도 적용되지만 그것이 생겨나게 된 독특한 열정에도 적용된다. 우상숭배의 심리학적 근거는 20세기 위대한 신학자의하나로 꼽히는 에밀 파켄하임이 탁월하게 검토한 바 있다. 

*** "고대의 우상숭배자들은 어떤 감정(두려움, 희망, 기쁨, 고통)을 외부의 한 사물에 투사하고, 그런 다음에 그 사물을 숭배한다. 이제 그 사물은 더는 한낱 사물이 아니다. 투사된 감정이 그 사물에 나름의 생명을 주는데, 그것에 이 생명을 불어넣는 특수한 봉헌의식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심지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사물은 숭배자와 다르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숭배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에서 숭배가 생겨나지만, 이 사물은 유한하므로(왜냐하면 그것은 사실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에) 그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178쪽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임명한 뒤 예언자들의 통치는 막을 내렸는지 몰라도, 예언자들이 국가의 양심이라는 역할까지 잃은 건 아니었다. 바로 이 점에 성서의 정치이론을 다른 모든 저서의 정치이론과 구분해준다.

***예언자들에게 지워진 역할은 예언자가 통치자를 질책하는 사람이자 양심의 목소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도덕률(양심의 소리)을 따라야 한다는 관념은 어쩌면 성서가 선서하는 가장 독특한 정치적 가르침일 것이다. 물론 도덕률에는 다윗, 왕인 다윗조차 귀를 기울여야 한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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