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중세시대 사람들이 스스로의 시대를 ‘중세‘라 명명하지 않고 *로마제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예전과 다름이 없다고 믿고 있다, 혹은 믿고 싶어한다.

<소비주체의 변화>

가전제품의 의사결정자는 더 이상 ‘엄마‘로 대표되는 여성 가구주가 아니다.

지금껏 가전의 소비주체가 **가족이었다면, 이제는 **1인가구의 소비 경험이 다인가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보 제공자. 돈을 내지도 않고, 주로 사용할 사람도 아니지만 이들은 **‘정보력‘이 뛰어나서 소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 쉽게 전문성을 획득하여 전문가 집단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또 다른 그들에게는 전문가 전성시대다. ‘쉽게 획득되는 전문성‘은 ‘내가 전문가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 에어프라이어의 함의는 한마디로 ‘엄마의 아웃소싱‘이다.

-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초년생으로, 유권자로, 소비주체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

5-9쪽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


밀레니얼 millennials

효율 - 시간과 돈에 대한 규칙 명시
보상 - 호구는 될 수 없다
놀이 (anti 진지) - 개인의 공간과 시간
자아 (자존감, 자기만족감 중시) - 조직이 아닌 본인의 일, 개인 단위 업무 분배

21쪽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하는 이유>


기존의 가치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이들이 세상에 등장했다.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넓게는 1980~2000년생으로 구 정(Time, 2013) 하는데, 이 기준으로 보면 밀레니얼 세대는 전체 인 구의 29.1%를 차지한다. 그중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2534세 대는 전체 대한민국 인구 중 약 13%다(도표 참조).

 이들을 연구하는 까닭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세대가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 순응하기를거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새로운 세대가 **소비주체로 부상하고, **유권자로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기업의 인사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기에, 다시 말해 이들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수준에 이르렀기에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7년 올해의 단어로 **‘youthquake‘ 를 선정했다. 청년들의 행동이나 영향에서 비롯된 중요한 문화·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컫는 말인데("A significant cultural, political, or social change arising from the actions or influence of young people") **젊은층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2014년 싱글, 2015년 시니어 연구에 이어, 2018년에는 밀레니얼 세대 연구 프로젠트

22-25쪽

<자존감을 높여라>


밀레니얼 새대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배워서라도 높여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자존감이 사전적 정의(타인의 외적 인정과 칭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내부의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자기존중감)와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자존감 저하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 자존감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기보다 타인의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외부의 현실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자존감을 낮추는 외부 요인을 부르는 말이 ‘자존감 도둑‘이다. 자존감 도둑은 주로 가족과 회사다.


- 자신감은 도전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고, 자존감은 현실에서 눈치보다는 상처받는 것이다.

- 자신감: 도전의 결과(성공)로서 갖게 되는 자기확신, 다이어트, 토익, 결과와 연관
- 자존감: 일의 결과와 무관하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현실, 상처, 눈치와 연관

- 자기를 스스로 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교육받은 본인 세대를 가리켜 자아실현의 저주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현실적으로 자아실현은 멀기만 한데, 자아실현이 꼭 필요한 것인 양 교육받아서 현실을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자아실현은 중요하지만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라.


25-29쪽

<인강 세대의 효율>


공부법에 관한 한 밀레니얼 세대는 ‘인강 세대‘다. 인터넷 강의를 듣다보면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시**행착오 trial and error를 하며 돌아가지 않고, 이것을 배우다가 저것을 같이 알게 되는 경우도 드물다. 생활에서 생존까지 다양한 사용지침 how to tutorial이 영상으로 존재한다.

그 결과, **밀레니얼 세대는 영상을 통해 학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응용력이 떨어진다.

**목표에 이르는 효율적인 방법이란 밀레니얼 세대에 매우 익숙하고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영리함이 목표에 도달하는 융통성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아는 것은 많은데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택한다.

사회의 전반적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안정적인 것이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모든 것이 불안정하므로 **나의 이익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나라를 살리자, 회사를 살리자는 구호 속에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개인의 권익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세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

사회 초년생들을 분석한 결과 적성보다 *시간, 시간보다 *돈을 더 많이 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말하기-듣기-쓰기 순서로 국어 교육의 목표를 삼았던 세대다. 말듣쓰. 참고로 현재 초등학생은 ‘듣말쓰‘로 국어 과정 중요도를 바꾸었다.

35-9쪽


<자유보다 규칙>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불확실성‘과 ‘자기 중심성‘이다.

이들이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측면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였다. 대한민국 최대 호황기에 태어났지만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사회의 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적법성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요한 가치다. 이들은 오피셜(공식적 발표)을 중시하고, 적법하지 않은 사안에 분노한다.

45-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머리에>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ㄴ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잠재적 유에서 현실적 유를, 감각적 유에서 논리적 유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단언을 즐기는 사람들도 당사자의 면전에서는 잘 그러지 못합니다. 어쩌면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늘 작품을 앞에 세워두는 글쓰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6쪽

<더 헌트>


*중세의 마녀사냥이 광기의 산물이면
이 영화의 그것은 **‘이성‘의 결과라는 것.

자신이 거짓말을 했음을 뒤늦게 실토하는 클라라에게 그녀의 엄마는 말한다. "끔찍했던 기억을 네 무의식이 차단한 거야" 이런 믿음에는 어떠한 악의도 포함돼 있지 않다. 모두가 차분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한다.

그런데, 누구도 잘못하고 있지 않는데, 모든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성의 역설이다. 이 역설을 **합리적 부조리라고 불러야 할까.

이것은 광기의 지옥이 아니라 **이성의 지옥이다. 마녀사냥을 개탄하며 비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며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현대판 마녀사냥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할 줄 모르는 이들의 무지와 몽매를 답답해하며 조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우리가 마음껏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복장이 터지는‘ 종류의 답답함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인간들의 집합적 이성이 최악으로 몰고가는 ‘합리적 부조리‘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바닥없는 벼랑을 바라보는 막막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성은 때로 방황할지언정 끝내 빛의 출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이성의 오작동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막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 들어선다.

**광기의 창궐로 열린 지옥의 문은 이성으로 닫을 수 있지만, 이성의 집단적 사용이 자체의 한계 때문에 열어버린 지옥의 문은 무엇으로 닫을 수 있을 것인가.

12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리말>

 본 해설자가 이미 저서와 강연을 통해 누누이 강조했던 점을 여기 되풀이하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요컨대 ‘불쾌하다‘라는 말은 ‘독특하다‘라는 말의 동의어인 경우가 종종 있으며, *위대한 예술작품은 모두 *독창적이고, 바로 그러한 본질 때문에 크든 작든 *충격적인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H. H.‘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가 잔혹하고 비열한 인물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도덕적 문둥병자의 전형으로서 그가 겸비한 잔인성과 익살스러움은 극도로 **비참한 내면세계를 드러낼 뿐 결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변덕스럽다. 

이 나라 사람들이나 풍경에 대해무심코 내뱉는 말 중에는 우스꽝스러운 것도 많다. 그의 고백은 시종일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지만 그렇다고 악마처럼 교활하게 저지른 온갖 죄악이 사면되지는 않는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점잖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이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므로 우리는 *저자를 혐오하면서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12쪽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성과 근대의 합리성>


서구 철학사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이래 **‘로고스(logos)‘의 역사, 이성에 근거한 사유체계의 역사였다. 이 로고스 중심의 사조는 근대에 이르러 인간중심주의에 따라 이성의 근거와 내적 원리를 새롭게 규정하였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신적 본성 또는 ‘자연의 빛(lumen naturale)‘으로 이해되던 이성이 *인간의 이성(ratio humana)으로 이해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 이성은 **선험 이성(합리주의)이든 **경험 이성(경험주의)이든 **존재론적 이성에서 인식론적 이성으로, 계몽주의 혁명 이래 **실천적 이성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도덕성 역시 이성의 원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때의 규준을 의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R. Descartes)의 『방법서설』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규칙으로 이루어진다. 이때의 이성은 주체의 **본성으로서의 이성이며, 존재론적 특성을 제거해버린 **도구적 이성으로 이해된다.

이에 따라 **합리성은 결국 이성의 원리에 따르는 합리성, 도구적 합리성, 실천적 합리성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서 나아가 *계몽주의 근대에 이르러 이성은 *계몽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인간 **사유와 행위의 규범을 정당화하는 이성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성에 대한 이해 변화는 근대 초기의 지식 형태 변화에 이어 마침내 17세기 이래 현재의 학문체계까지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수학적 방법론과 ‘명석 판명한 지각‘을 지식의 기준으로 생각하던 근대적 진리 이해는 모든 것을 분류하고 검증하며 실증하는 체계로 완성된다.

이러한 명석 판명한 인식을 요구하는 **학문의 방법론은 *분석과 *종합이란 이중의 체계를 지닌다. 이 근대의 학문은 학문 일반의 내적 방법론에 치중하면서 그 진리 검증의 시금석을 엄격하고 실증적인 학적 결과와 지식의 체계에서 찾는다.

이 같은 학문 이해는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그 방법론의 관점에 따라 *학문(scientia)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사고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학문 패러다임은 근대정신에 근거한 체계이다.

근대 철학은 *확실성이란 관점에서 인식의 타당성 문제에 치중하는 새로운 철학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이란 근대 철학의 커다란 두 조류는 이성의 근거, 나아가 인식방법론과 타당성의 근거율에서 차이를 지닐 뿐,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따른 확실성과 보편적 규준에 치중한다는 특성을 지닌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자연과학을 비판하면서, 학문체계의 변화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선천적 인식에 근거한 사고의 전개는 사물의 존재론적 근거 문제가 아닌 **주체로서의 인간 인식에 대한 문제로 환원된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식 주체에 의한 의식의 철학이며 주체성(subjectivity)의 철학이다.

절대적 진리와 필연적 사유, 선험적 세계를 벗어나는 인식과 판단의 문제는 개별성과 주관성, 개인의 자의성과 경험의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타당성과 확실성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인식 이성에 따른 비판과 판단의 기준 문제, 주체가 지닌 이중성, 자신의 기준과 그를 넘어서는 타당성 담보라는 문제에서 그들은 보편 이성의 원리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이에 따라 실재를 보편 이성의 원리에 상응하게 만드는 일원성과 동일성의 원리가 확립되었다. 그것이 근대의 합리성이 지니는 의미이다. 인식론의 철학은 자연을 포함한 존재자와의 관계를 인식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의해 이해한다.

인식 주체로서 인간과 인식 대상으로서의 객체로 상정하는 근대의 독특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존재론적으로는 이러한 동일성과 일원론의 원리에 상응하게 된다. 결국 근대의 합리성이란 원리는 인식론적 이원론과 존재론적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그 특성이 결정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경의 근원>


-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지식은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지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지식인은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삶과 지식의 유리를 조장하는 현대의 경향(아도르노의 개념으로 ‘관리되는 사회‘)에 거슬러 빗질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대학교수는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강의실에서 지식을 올바른 삶과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하는 사람이었으며, **저자는 독자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웅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독자와 공감을 꾀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지적 능력은 우월성이 검증되는 범주가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범주였다.

도덕적인 범주인 지적 능력은 **"아주 은밀히 개인적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객관적인 권력"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로부터 생긴다.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은 예민한 촉수를 논리의 체계와 순서, 그리고 배합을 분류하고 배열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지식은 공감으로부터 출발하며 공감에 도달해야 한다. 지적 능력을 도덕적 범주로 파악하는 사람은 ‘상처받은 삶‘과 공명하기 위해 지적 능력을 사용한다.

지식인도 ‘관리되는 사회‘의 지배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이상 ‘상처받은 삶‘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식인의 ‘상처받은 삶‘은 물질적인 궁핍으로 인한 ‘상처받은 삶‘과는 다르다.

그는 **"독립적인 지성"을 추구하고, "자율성"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지식인들에게 "자율성"과 "독립적인 지성"을 삶의 관계로부터 해방시켜 **‘제3의 특권적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15-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