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의 성공회 소속 데스먼드 음필로 투투 주교(Desmond Mpilo Tuto, 1931년~)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1984년에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먹을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구호단체들이 너무 조금 너무 늦게 내놓는것을 양철그릇에 받으려고 끝도 없이 길게 줄서서 지나가는 바싹 야윈 인간들의 모습을 매일 본다.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이 지구상의 인간들은 언제쯤이나 일어나 외치게 될까, 이제 충분하다고....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한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그리고 인간을 그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며, 이런 모독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언제나 배우게 될로까?

다른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억압은 억압받는 사람보다 더 많지는 않더라도 그와 똑같이, 억압하는 사람의 인간성도 없애고 만다. 양쪽이 다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 P158

/ 약 500년 전의 아프리카


1500년 무렵 아프리카 대륙에는 **5,000만 명 이하의 사람들이 살았다(오늘날에는 8억 5,000만 명 이상)

아프리카 문명에서 *노예는 각 가족의 일부였고 다시 해방될 가능성이 여럿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노예 매매가 아랍과 아프리카 상인들 그리고 자국민을 팔아 부자가 된 정치 지도자들의 협조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쓰라린 진실을 바라봐야만 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사람들끼리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5)는 *1884년 유럽 열강 지도자들을 베를린으로 소집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분할이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아프리카 민족들의 대표자들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베를린에서 이루어진 협약과 국경선은 그 다음 시기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종족적인 연관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경선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남은 셈이다.

**20세기 중반 무렵에야 확신에 찬 식민지 지배자들도 자기들이 식민지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사이 아프리카의 다양한 **저항 세력의 반대가 너무나 강해져서 식민지 정부를 유지하는 데 경비가 너무 비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마지막에 보인 태도는 대부분 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보인 태도만큼이나 나빴다.

**유럽 사람들은 자주 가장 부패한 아프리카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었다. 겉으로는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유럽 열강이나 그사이 끼어든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할‘ 능력이 얼마나 적은지 실컷 조롱하였다. (신제국주의 놀음)

- P103

*노예 제도의 종말은 아프리카에서 쟁취된 것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노예 제도 폐지론자와 도망친 노예를 종교적인 입장에서 도와준 *퀘이커 교도, 그리고 *해외에서 궐기한 노예들에 의해 쟁취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와 산업 혁명‘을 통해 먼저 유럽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의미를 잃었다. 노예 매매 사업이 그다지 *큰 이익을 남기지 않게 된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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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본문에서 ‘계시 revelation‘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보통 우리는 탐구와 관찰, 연구, 분석이라는 통제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교적, 역사적, 과학적,
개인적 지식을 얻는다. 

이에 반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외부의 힘이 새로운 지식을 우리에게 떠안길 때, 우리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계시로 얻은 지식은 그 어떤 ‘통제된‘ 방법으로는얻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계시를 주는 외부의 힘은 ‘신‘일 수도 있고, ‘자연 현상‘일 수도 있으며, ‘전쟁‘처럼 인위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계시의 내용 또한 종교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이거나예술적, 심리적 내용일 수도 있다."
- P6

/ 책머리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논지는 174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전쟁이 계시 경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전투원들이 결코 전쟁을 계시 경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명심해야 할 것이있다. ‘계시‘가 단지 지식을 얻는 방법을 의미하며, 종교와 근본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1740년 이전에도 전투원들은 종종 종교 교리를 적용해 군사 사건을 이해함으로써 전쟁을 종교적 측면에서 해석했다.

‘전투의 패배‘는 ‘신의 노여움‘을 증명하는 ‘증거‘였고,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한 것은 ‘신의 은총‘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하지만 전투원들은 결코 전쟁을 ‘새로운 지식‘을 깨닫는 계시로 보지 않았다. 가령 십자군의 회고록을 보면 십자군이 계시를 받아 출정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장드 주엥빌Jehan de Joinville처럼 회고록을 쓴 십자군은 동방의 경험이 집에 머무른 사람들(말하자면 교황)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을 안겨주었다는 네티바 벤예후다 투의 주장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 P8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수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군인들이 전쟁을 계시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의 ‘숭고the sublime‘ 개념이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낭만주의는 ‘숭고한 경험을 지식과 권위의 특별한 원천으로 강조했고, 낭만주의의 숭고라는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바로 전쟁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계시적 전쟁 해석의 부각을 인과론적으로 철저하게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계시적 전쟁 해석이 부각하며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겠지만, 변화한 이유에 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 P10


3.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세계관에서 벗어나, 깊은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관이 수많은 세계관 중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세상을 우리와 철저히 다르게 보았다면, 그 세상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말 철저하게 달랐을 것이다. - P12

/ 옮긴이의 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전선의 병사들에게 배송된 유대교 학교 예시바Yeshiva 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전투를 벌이는 동안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겉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인간이 때로는 자기 영혼의 심연과 자기 내면, 일상의 삶에 가려진 오래되고 굳건한 진실과 직접 맞닥뜨린다. 이때 인간은 사물을 더 철저하게, 더폭넓게, 더 깊게, 더 진실하게 관찰한다."


앤서니 로이드의 이야기나 예시바의 신문은 모두 전쟁이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인간 영혼의 심연과 내면을직접 만날 기회, 일상에 가려진 내밀한 진실을 깨달을 기회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도대체 인간은 언제부터 전쟁을 장막 뒤에 가려진 진리를 발견하는 계시 경험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이 책은 유발 하라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라리는 중세부터 근대 후기까지 전투원들의 전쟁 경험담을 살펴보고 비교함으로써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계시적 전쟁 해석이 등장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을 문화적, 정신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중세 후기 이후 계시적 전쟁 해석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훨씬 더 넓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20세기 계시적 해석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중세부터 18세기 이전까지 전투원들은 전쟁을 계시 체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내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전투원들이 전쟁을 계씨의ㅇㅛ 인으로보기시작했다. - P16

**중세 시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미와 추를 판단하는 주체는 신(초자연적 존재)이었다. 

**신이 모든 권위와 의미의 원천이었고, 유한한 인간의 의견과 판단은 바람처럼 속절없는 것이었다. 

인문주의 혁명 이전에는 거대한 우주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문주의가 이를 뒤집어, 거대한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Homo Deus>에서 ‘무의미한 우주의 의미를 창조하라‘가 인문주의가 인간에게 요구한 제1 명령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며 *인간이 절대적인 *의미의 원천이 되었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루소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 자신의 의견만 물으면 충분하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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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머리글

실패의 박물관

발트해에 인접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바사호 박물관‘이 있다.

(...)

관계자들이 차례로 불려갔지만, 어떤 이도 자신의 책무를 소홀함 없이 수행했음을 증명했고, 결국 장기간 조사 결과 어느 한 사람도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바사호 참사는 일부 치명적인 미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계획이 지나치게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지나치게 큰 규모의 배에 과다한 중장비, 너무 높은 마스트 등 모두 최대이길 바라는 왕의 주문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대국 국왕의 명령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면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기술자는 스스로의 지식을 구사해 부여된 직무 범위 내에서 왕의 의향을 좇아 일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 부여된 직무에서 결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분의 최적화는 전체의 최적화와 다르다. 부분적으로는 아무리 똑바로 쌓아올려도, 전체가 똑바르게 되지는 않는다. 계획 전체로 볼 때 뭔가 오류가 있음을 냉정히 판단해 왕에게 충고하는 이는 없었다.

실패로부터, 성공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
이 나라는 ‘실패에서 배운다‘는 사고방식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성숙사회다운 넉넉함일까.



- P8

/ ‘헤이세이‘라는 실패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헤이세이‘ 30년간은 한마디로 ‘실패의 시대‘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실패‘들을 열거하기는 쉬워도 **그들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들은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수 없었는가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헤이세이의 ‘실패‘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었던가. 바사호의 건조가 그랬듯이 *헤이세이 시대에 누군가가 커다란 미스를 범해 사회를 실패로 이끌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각각의 조직과 직장에서 사람들은 *최대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랫동안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사히신문사가 2018년 3~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헤이세이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8개의 항목에서 2개를 골라답하는 방식이었다. 답변 중 가장 많은 것은 **동요하던 시대(42%), 그 다음이 **침체하던 시대 (29%)였다. 반면 밝은 시대는 최하위였다. 

이 경향은 아사히가 2009년에 20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동요하던 시대‘라는 답변이 42%로 최다였으며 침체하던 시대‘도 40%에 달한 반면 최하위는 밝은 시대‘였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헤이세이는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대응에 실패하면서 *침체하던 시대로 인식돼왔던 것이다.  - P11

헤이세이의 실패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실패다.

산업계 전체로 본다면 헤이세이 시기 일본 전기산업의 쇠퇴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다. 1990년대 이후 소니는 급격히 탄력을 상실했다. 사일로 효과 sailo effect.

부서 간 *협력이 사라졌고, *실험적인 브레인스토밍이나, 단기간에 이익을 창출할 수 없는 *장기투자도 미루게 됐다. 어느 누구도 **리스트를 감당하는 것에 **소극적이 되어버렸다.

소니의 사일로화는 같은 시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추진하던 경영방침과 정반대였다. 개발도 손익도 일원관리하고, 철저히 횡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유지하는 애플 방식은 1990년대에 진행되던 디지털화 흐름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 물론 직접적으로는 **엔화강세와 경제거품 붕괴, 그 후의 심각한 불황의 영향향이다. 그러나 한국의 삼성은 지금 일본 기업을 월등히 앞선 글로벌 기업이다. 이 패배의 원인을 반드시 버블붕괴와 대불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가전 **카테고리가 붕괴한 정보 사회의 미래상을 일본 기업들이 진지하게 내다보지 못한 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 P16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


경제 실패와 병행해 정치도 헤이세이 시기에 실패를 거듭했다.

(...) 선거제도 개혁은 일본에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체제를 정착시키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우노 쓰네히로宇野常寬는 ‘헤이세이‘를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가 지향한 것은 "*글로벌화와 *정보화라는 *세계사의 큰 파도를 제대로 *수용해, 전후 사회를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데이트‘를 겨냥한 **개혁은 모조리 실패했다. 

개혁세력이 목표한 것은 **"양대정당 체제에 기반한 성숙한 민주주의"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구조개혁 노선" 이었지만 **개혁노선을 지향하는 *리더들이 **옛 자민당식 연고주의에 **포퓰리즘으로 대항하면서 개혁은 시간이 갈수록 농락당했다. 

그러다 정신차려 보니 **"자민당의 내부개혁을 기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55년 체제(1955년 이후 여당인 자유미주당과 야당인 일본사회당의 양대정당 구조하에 성립된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에 가까운 상황‘으로 퇴행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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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고유한 매우 욕망들이 있으며 이러한 욕망들은 생존 욕망과 종족 번식 욕망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인간에게만 고유한 욕망으로 우리는 프롬이 말한 것처럼 결합에의 욕망, 초월과 창조에의 열망, 의미 체계에 대한 욕망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욕망들은 인간이 동물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욕망들이다.

동물이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살아가는 반면에,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고뇌하는 존재다. 이렇게 고뇌하는 능력은 전통적으로 ‘이성‘이라고 불렸는데 인간에게는 이렇게 이성이 생기면서 본능의 힘은 약화되었다.

인간의 욕망과 행위를 통제하는 본능의 힘이 약화되면서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 구조에 의해서 제약된 환경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열린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인간은 공간적으로 무한한 우주를 생각할 수 있고 시간적으로 무한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열린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독자적인 개체로 의식하게 된다. 이른바 ‘자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식과 함께 인간은 자신이 세계 내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느끼게 되면서 동물에게서 보기 어려운 ‘감정‘들과 ‘욕망‘들을 갖게 된다. - P77

인간의 삶은 동물의 삶처럼 본능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기 때문에 ‘열린 세계‘ 속에서 많은 ‘선택 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많은 선택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러한 선택에 대해서 많은 경우 결국은 홀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인간은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인간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우리 인간은 ‘죽음‘에 직면하지 않으면서도 죽음을 미리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덧없이 생성소멸하며 삶은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무‘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 P78


동물도 가족을 잃을 경우에는 고독감 같은 것을 느끼겠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가족이 있어도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동물에서는 보기 힘든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이란 부정적인 기분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규정된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은 이러한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수 있다. 이와 함께 인간은 동물 세계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욕망들을 갖게 된다. 

프롬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는 ‘결합과 합일에의 욕망‘,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초월과 창조에의 욕망‘,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의미 체계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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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은 감정을 가진 존재,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고통이다.

악은 절대로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악은 항상 개인의 경험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P13

악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는가?

악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악을 정의할 수 없다. 제한적이나마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은 애매모호한 개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적인 일관성을 갖지도 않는다. - P16

수만 킬로미터 밖에서 오천 년 전에 일어난 고통일지라도 *시공간적인 간격은 문제 되지 않는다. 울부짖는 목소리는 들리게 마련이다.

**고통받는 사람은 악을 이해하고 악의 문제와 맞서려는 의무감을 반드시 갖게 된다.

악은 보편적인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 어디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17

적어도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의 일부분은 내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대개 악을 외부로부터 다가온다고 이해한다.

**스스로가 악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악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위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의 악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다.

한 인간이 때로 악마가 되기도 하고 때로 성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변하지 않으며, 우리는 **선과 악이라고 하는 모든 운명을 인간의 이름으로 돌린다.

- P21

악이란 무의미하고 분별없는 파괴 행위다. 악은 *파괴하지만 *건설하지 않는다. 악은 허물지만 재건하지 않는다. 악은 잘라낼 뿐 *서로를 이어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악은 모든 것을 절멸시키고 무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모든 존재를 취해 **무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악의 본질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처럼, 악이란 "생 그 자체를 적대시하는 생"이고 "죽고 썩어가며, 생명력이 없고 순전히 기계적인 것을 끌어들인다."

악은 때로는 의도적으로 악의를 품는다. 악은 때로는 합리화와 나약함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위험에 노출되거나 약점이 있다고 느끼면 거만해지고 모질어지고 적의를 갖게 된다.

고문 기술자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잘못된 합리화
때문에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따. 그러나 고문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악으로 남는다.

전통적으로 **‘자연발생적 악‘과 **‘도덕적 악‘을 구분하기도 한다. **자연발생적 악이란 토네이도나 암과 같은 ‘신 또는 자연의 파괴적인 행위‘를 말하고, 도덕적 악은 인간의 의지나 여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신이라는 개념을 숙고해보면,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기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신이 가진 동기를 분별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연발생적 악과 도덕적 악은 동일한 문제에서 연유하는 두 가지 양상이다. - P23

**유대교의 윤리는 인간과 신을 자연으로부터 갈라놓았고, **근대 유물론은 신을 제거하고 전적으로 인간만을 남겨놓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 P26

**악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가? 

최근에 악의 원인이 **유전적이라는답이 유행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의 폭력성은 인간이 가지고있는 동물적인 본성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원시인은 무심하고 잔인한 환경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했고, 그러면서 *무자비한 습성이 장구한 시간 동안 체득되었는데, *문명에 의해 덮여 있다가 쉽게 숨어 있던 *얇은 덮개로부터 *파괴적인 본성이 빈번하게 *분출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이고 ‘유전적인 호전성은 무절제한 기술과 결합되면 인류를 완전히 파멸시킬 만큼 광범위하고 강력해진다. 

가장 최근의 이러한 경향은 사회학적인 관점보다는 *유전학적인 관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육체에 뿌리박힌 본능이 인간에 내재해있는 무의식적이고 파괴적인 공격성의 원인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증거는 없다. 

**설령 그러한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이나 *자기영역을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인간의 폭력성과 악을 설명하지는 못하며, 각기 다른 상황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악의 형태를 설명할 수도 없다. 

유전학은 생명과학의 체제 안에서 제기되는 제한적인 문제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유전학은 이 분야의 범위를 넘어 악의 다양한 측면을 다룰 수 없다. 더군다나 유전학자는 자신의 설명방식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 P27

*유전학적인 주장(*‘본성‘ 을 주장)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행동주의적 관점 혹은 행동주의적 사회적 관점에서 **‘훈육‘을 옹호하는사람들이다(물론 모든 사회학자가 행동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간단하게설명하면, 골자는 **환경 가족, 동료, 제도적·문화적 환경 등 이 행위를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이 명제를 쉽게 일반화하면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악을 낳는다는 말이 된다. 

물론 사회학적인 접근법도 개인적인 악뿐만 아니라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악을 설명해준다. *어떤 조건들은 다른 조건들에 비해서 **더 많은 악을 전파하기도 한다. 

**급격한 변화, 가치의 혼란, 정신적 불확실성에 사로잡힌 사회의 질서는 불가피하게 악을 낳는 일종의 소외를 야기한다. 

행동주의 이외에도 ‘훈육‘ 이라는 개념을 통해 악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도 자체적인 원리가가지고 있는 개념적인 틀의 한계 내에서 우리에게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그러나 정통 스키너주의적 행동주의자들은 유전학적인 주장을 정통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처럼 **교조적인 환원주의로 문제를 모호하게할 뿐만 아니라, 사회공학을 통해 인간 사회에 엄청나게 실질적인 해를 끼칠 징후를 보인다.

생물학적 주장과 행동주의적 주장은 모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특히 인간적인 요인으로 **책임감, 자유, 양심(그리고 존엄성) 등의 요일-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누가 인간이 행위를 결정되도록 가치를 결정하는가?

스키너는 문제를 교묘히 빠져나가, 윤리 의식이 부족하더라도 인간은 어느 정도 도덕적 또는 윤리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왔다고 주장한다.

행동주의에 따르게 되면, 사람들은 자유와 존엄성, 선과 악, 고통과 기쁨, 사랑과 동정심, 독창성과 창의력, 박애 등을 무시하게 된다. 나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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