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머리글

실패의 박물관

발트해에 인접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바사호 박물관‘이 있다.

(...)

관계자들이 차례로 불려갔지만, 어떤 이도 자신의 책무를 소홀함 없이 수행했음을 증명했고, 결국 장기간 조사 결과 어느 한 사람도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바사호 참사는 일부 치명적인 미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계획이 지나치게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지나치게 큰 규모의 배에 과다한 중장비, 너무 높은 마스트 등 모두 최대이길 바라는 왕의 주문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대국 국왕의 명령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면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기술자는 스스로의 지식을 구사해 부여된 직무 범위 내에서 왕의 의향을 좇아 일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 부여된 직무에서 결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분의 최적화는 전체의 최적화와 다르다. 부분적으로는 아무리 똑바로 쌓아올려도, 전체가 똑바르게 되지는 않는다. 계획 전체로 볼 때 뭔가 오류가 있음을 냉정히 판단해 왕에게 충고하는 이는 없었다.

실패로부터, 성공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
이 나라는 ‘실패에서 배운다‘는 사고방식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성숙사회다운 넉넉함일까.



- P8

/ ‘헤이세이‘라는 실패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헤이세이‘ 30년간은 한마디로 ‘실패의 시대‘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실패‘들을 열거하기는 쉬워도 **그들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들은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수 없었는가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헤이세이의 ‘실패‘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었던가. 바사호의 건조가 그랬듯이 *헤이세이 시대에 누군가가 커다란 미스를 범해 사회를 실패로 이끌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각각의 조직과 직장에서 사람들은 *최대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랫동안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사히신문사가 2018년 3~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헤이세이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8개의 항목에서 2개를 골라답하는 방식이었다. 답변 중 가장 많은 것은 **동요하던 시대(42%), 그 다음이 **침체하던 시대 (29%)였다. 반면 밝은 시대는 최하위였다. 

이 경향은 아사히가 2009년에 20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동요하던 시대‘라는 답변이 42%로 최다였으며 침체하던 시대‘도 40%에 달한 반면 최하위는 밝은 시대‘였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헤이세이는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대응에 실패하면서 *침체하던 시대로 인식돼왔던 것이다.  - P11

헤이세이의 실패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실패다.

산업계 전체로 본다면 헤이세이 시기 일본 전기산업의 쇠퇴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다. 1990년대 이후 소니는 급격히 탄력을 상실했다. 사일로 효과 sailo effect.

부서 간 *협력이 사라졌고, *실험적인 브레인스토밍이나, 단기간에 이익을 창출할 수 없는 *장기투자도 미루게 됐다. 어느 누구도 **리스트를 감당하는 것에 **소극적이 되어버렸다.

소니의 사일로화는 같은 시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추진하던 경영방침과 정반대였다. 개발도 손익도 일원관리하고, 철저히 횡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유지하는 애플 방식은 1990년대에 진행되던 디지털화 흐름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 물론 직접적으로는 **엔화강세와 경제거품 붕괴, 그 후의 심각한 불황의 영향향이다. 그러나 한국의 삼성은 지금 일본 기업을 월등히 앞선 글로벌 기업이다. 이 패배의 원인을 반드시 버블붕괴와 대불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가전 **카테고리가 붕괴한 정보 사회의 미래상을 일본 기업들이 진지하게 내다보지 못한 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 P16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


경제 실패와 병행해 정치도 헤이세이 시기에 실패를 거듭했다.

(...) 선거제도 개혁은 일본에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체제를 정착시키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우노 쓰네히로宇野常寬는 ‘헤이세이‘를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가 지향한 것은 "*글로벌화와 *정보화라는 *세계사의 큰 파도를 제대로 *수용해, 전후 사회를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데이트‘를 겨냥한 **개혁은 모조리 실패했다. 

개혁세력이 목표한 것은 **"양대정당 체제에 기반한 성숙한 민주주의"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구조개혁 노선" 이었지만 **개혁노선을 지향하는 *리더들이 **옛 자민당식 연고주의에 **포퓰리즘으로 대항하면서 개혁은 시간이 갈수록 농락당했다. 

그러다 정신차려 보니 **"자민당의 내부개혁을 기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55년 체제(1955년 이후 여당인 자유미주당과 야당인 일본사회당의 양대정당 구조하에 성립된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에 가까운 상황‘으로 퇴행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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