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본문에서 ‘계시 revelation‘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보통 우리는 탐구와 관찰, 연구, 분석이라는 통제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교적, 역사적, 과학적,
개인적 지식을 얻는다. 

이에 반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외부의 힘이 새로운 지식을 우리에게 떠안길 때, 우리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계시로 얻은 지식은 그 어떤 ‘통제된‘ 방법으로는얻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계시를 주는 외부의 힘은 ‘신‘일 수도 있고, ‘자연 현상‘일 수도 있으며, ‘전쟁‘처럼 인위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계시의 내용 또한 종교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이거나예술적, 심리적 내용일 수도 있다."
- P6

/ 책머리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논지는 174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전쟁이 계시 경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전투원들이 결코 전쟁을 계시 경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명심해야 할 것이있다. ‘계시‘가 단지 지식을 얻는 방법을 의미하며, 종교와 근본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1740년 이전에도 전투원들은 종종 종교 교리를 적용해 군사 사건을 이해함으로써 전쟁을 종교적 측면에서 해석했다.

‘전투의 패배‘는 ‘신의 노여움‘을 증명하는 ‘증거‘였고,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한 것은 ‘신의 은총‘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하지만 전투원들은 결코 전쟁을 ‘새로운 지식‘을 깨닫는 계시로 보지 않았다. 가령 십자군의 회고록을 보면 십자군이 계시를 받아 출정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장드 주엥빌Jehan de Joinville처럼 회고록을 쓴 십자군은 동방의 경험이 집에 머무른 사람들(말하자면 교황)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을 안겨주었다는 네티바 벤예후다 투의 주장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 P8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수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군인들이 전쟁을 계시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의 ‘숭고the sublime‘ 개념이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낭만주의는 ‘숭고한 경험을 지식과 권위의 특별한 원천으로 강조했고, 낭만주의의 숭고라는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바로 전쟁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계시적 전쟁 해석의 부각을 인과론적으로 철저하게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계시적 전쟁 해석이 부각하며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겠지만, 변화한 이유에 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 P10


3.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세계관에서 벗어나, 깊은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관이 수많은 세계관 중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세상을 우리와 철저히 다르게 보았다면, 그 세상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말 철저하게 달랐을 것이다. - P12

/ 옮긴이의 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전선의 병사들에게 배송된 유대교 학교 예시바Yeshiva 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전투를 벌이는 동안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겉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인간이 때로는 자기 영혼의 심연과 자기 내면, 일상의 삶에 가려진 오래되고 굳건한 진실과 직접 맞닥뜨린다. 이때 인간은 사물을 더 철저하게, 더폭넓게, 더 깊게, 더 진실하게 관찰한다."


앤서니 로이드의 이야기나 예시바의 신문은 모두 전쟁이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인간 영혼의 심연과 내면을직접 만날 기회, 일상에 가려진 내밀한 진실을 깨달을 기회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도대체 인간은 언제부터 전쟁을 장막 뒤에 가려진 진리를 발견하는 계시 경험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이 책은 유발 하라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라리는 중세부터 근대 후기까지 전투원들의 전쟁 경험담을 살펴보고 비교함으로써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계시적 전쟁 해석이 등장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을 문화적, 정신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중세 후기 이후 계시적 전쟁 해석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훨씬 더 넓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20세기 계시적 해석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중세부터 18세기 이전까지 전투원들은 전쟁을 계시 체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내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전투원들이 전쟁을 계씨의ㅇㅛ 인으로보기시작했다. - P16

**중세 시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미와 추를 판단하는 주체는 신(초자연적 존재)이었다. 

**신이 모든 권위와 의미의 원천이었고, 유한한 인간의 의견과 판단은 바람처럼 속절없는 것이었다. 

인문주의 혁명 이전에는 거대한 우주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문주의가 이를 뒤집어, 거대한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Homo Deus>에서 ‘무의미한 우주의 의미를 창조하라‘가 인문주의가 인간에게 요구한 제1 명령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며 *인간이 절대적인 *의미의 원천이 되었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루소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 자신의 의견만 물으면 충분하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