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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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러니까 나는 핌에 두 번밖에 가지 못할 것이었다.”(p.11)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논리와 이성, 현재 시점 최선책, 계획과 의지와 전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어긋난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회고하는 쓸쓸함과 아픔이 배어있다. 이 문장은 변화를 일으키고 다양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 그때가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어,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등의 읊조리는 문장들은 익숙하게 들어왔다. 말한 적도 있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366쪽 분량)에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서민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어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기록으로 출발하여 모두가 직면할 노화와 죽음이라는 공통의 인간 조건을 묻는다. 전작인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한 저자가 자신이 속했고 벗어났던 노동 계급과 성 정체성을 분석하였다면 이번 저작에서 어머니는 노년에 이른 취약한 인간 일반으로 확대된다. 즉 피할 수 없기에 누구나 맞닥뜨릴 현재 또는 미래 어느 시점을 구체화한다.

 

어머니는 내 집은 랭스야라고 강조하지만, 방 하나가 예상보다 일찍 나온 덕분에 핌에 있는 에파드로, 즉 요양 병원 입소가 결정되었다. 연로하고 연약해지면서 집안에서도 넘어지거나 다치고, 연락도 끊기는 상황의 반복은 이성적인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다. 입소 이틀 후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잘 돌봐줄 거라고, “두고 봐요. 괜찮을 거예요.”(p.53)라는 상투어들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회복하지 못하실 거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중의 딜레마에 갇히는 갑갑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머니는 평생 불행했다고 저자는 인정한다. 그녀의 생애를 복기하고 그렇게 도달한 현재를 엘리아스, 흐라발, 솔제니친 등 다양한 작품과 견주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사르트르가 보여주었던 상호성, 시선의 드라마, 대상화,-시선을 받는 것은 대상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거기서 빠져나가지 못한다.(p.82)- ,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경구와도 같은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데, 독자를 서늘하게 사로잡는다. 요양원의 기존 거주자는 새 입소자에게 무엇이 기다리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힌트가 된다. 되는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어머니는 호소하고 격분하는 짧은 단계를 거쳐 슬라이딩 증후군으로 살아있음에서 미끄러진다. 저자는 어떻게 그녀 주위의 것들이 닫히고 막혀갔을지, 제도와 관리 방식이 어떻게 그녀를 학대하였는지 고프먼이 총체적 기관이라고 불렀던 의미를 어떻게 충족하는지, 그 부도덕성을 언급하고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아들이긴 했지만 나쁜 아들이었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더 이상 아들이 아님에, 가족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탈주함으로 아들 역할 또한 축소하고자 의도했음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최소한 사회학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고 쓴다.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흔적을 아쉬워하며 복기하기 위한 여정은 공감을 부른다. 태어났던 그녀, 버림받았던 그녀, 일하고 결혼하고 불행하고, 또 일하고 열기와 분진과 소음 속에서 다시 일하다 요양원이 기다리는 삶이란. 저자는 그런 일생을 산 서민 여성인 어머니와 그녀의 아들인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기록한다.

 

결말에서 저자는 노년, 취약함, 죽음 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을 심화한다. 신체적 자율성 상실과 우리라고 말할 가능성의 상실, 공적인 말에 가 닿을 경로의 상실에 대해 지적한다. 그들을 보이게 하고, 그들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과제를 독자와 백세시대인 지금 우리에게 드러낸다.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은 자전적 글이 갖는 생생함이 감정을 내내 두드린다. 개인으로써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다양한 저서를 인용하여 실제와 연결하며 교차 서술하는 구성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독자 자신에게 대입하게 한다. 한 템포씩 멈추며 숙고하게 만든다. 사항마다 묻고 답하는 동안에 공감하는 지점은 늘어간다. 공감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불안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쇠락과 죽음을, 그 끝에 도달할 공간과 시간을 가늠케 해주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문장은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한지! 어떤 부분은 절절한 사모곡이다. “물론 G를 위하여라는 헌사를 다시 읽는다. 본문에서 한 번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던 어머니일까. 아마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누군가가, 우리 각자의 G가 새롭게 그 자리를 채울 것 같다.

 

 



 책 속에서>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

 


이젠 내가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된 것이 그녀였는데도인 동시에 그녀 덕분에라는 점을 잘안다. 내 정신 속에서는 그녀였는데도그녀 덕분에를 오랫동안 능가해 왔다. 물론 오래전부터 내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부끄럽다.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어머니에게 가져다준 고통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지만내 어머니의 책의 알베르 코엔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죄책감은 조금 늦었다라고.(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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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8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진준 옮김 / 민음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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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의 어두운 분위기는 긴장을 고조시킨다. 악 자체처럼 보이는 포파이, 문제를 일으키고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인물 가우언, 폭력의 대상이자 자기 보호와 합리화를 위해 타협하는 여대생 템플 드레이크, 정의 실현을 목표로 행동하고 싸워나가지만 공고한 벽에 막혀 무력하게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변호사 호러스 벤보, 템플과는 다른 계층의 여성 루비 라마, 루비의 실질적 남편이자 토미 살해의 누명을 쓰고 투옥된 구드윈 등 책 속 인물들은 갈등 상황에 반복해서 빠져들고 헤어 나오기 위해 애쓴다.

 

성역(이진준 옮김, 민음사, 2007, 440쪽 분량)1931년 출간 당시 작가 윌리엄 포크너에게 논란과 동시에 인기와 부를 안겨준 작품이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화와 가치관의 혼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성역> 출간 다음 해에는 <팔월의 빛>이 세상에 나오는데, 박계영의 논문에 따르면 단편 <매마른 9>까지, 백인 여성의 강간과 강간범의 린칭 주제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역의 공간적 배경은 특히 소설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알콜 중독인 남자 친구 가우언이 자동차 사고를 내고 템플과 같이 밀주업자 구드윈의 저택에 머물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수풀로 둘러싸인 샘에서 과거 대농가였으나 폐허가 된 집으로 장소가 이동한다. 포크너 단편 <스러지지 않으리> 등에서 나왔던 프렌치맨스 밴드가 작가가 창조한 가상공간 요크나파토파 중에서 가난한 시골 농촌마을을 뜻한다면 <성역>의 올드프렌치맨 지역은 그 중에서도 몰락한 대농장과 폐허가 된 저택으로 영역을 한정한다. 폐허 저택에는 온전치 못한 사람들,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이들이 금주법 시행 중 법망을 피해 은밀하게 밀주를 만들고 판매한다. 제퍼슨의 판사라는 고위층의 자녀 템플은 있어야 할 곳인 대학 또는 아버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아버지에게 이를 거예요!”(p.112)를 외칠 뿐이다.

 

포파이는 템플을 멤피스의 매음굴로 데려가고 그녀는 더욱 피폐해진다. 그녀는 저택에서도 멤피스에서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템플의 탈출은 탈주 대신 되돌아오는 게 목표인 듯 거듭 회귀하는 코스를 반복한다. 포파이 대신 토미 살해 용의자로 몰린 구드윈은 진범 포파이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다. 한마디라도 한다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데, 두려움에서 파생한 신념이 분명하다. 템플은 거짓 증언으로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녀가 찾은 자리가 이미 의미라고는 상실한 공허가 아닐까 묻는다. 구드윈은 벤보의 신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벤보의 여동생 나르시사는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이 일에서 손을 뗄 것을 그에게 계속 요구했다. 구설에 오르내리는 일을 피하고 거리를 두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도와줄 사람이 없는 루비 라마와 아기가 자기 부모님의 집이자 유년의 공간, 성역에 머무는 것을 격렬히 반대한다.

 

소설의 제목인 성역(聖域/Sanctuary)”은 사전적으로 신성한 지역’, 또는 불가침 지역을 뜻한다. 역자는 소설의 첫 문장인 샘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풀 뒤에서 포파이는 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p.7)성역을 상징하며, 그것이 침해되는 것은 성역시 되어왔던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파괴되는 것’(p.427)을 암시한다고 쓴다.  성역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다.  템플이 들어가게 되었던 폐허 저택도 그들만의 성역일 수 있고,  이때 템플은 루비가 강조했듯 침입자 위치에 놓인다.  멤피스의 미스 레바의 집, 구드윈이 포파이를 피해 머물고자 했던 감옥,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법정이 성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역을 그 기능을 변조하고 비웃는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그런 인간은 재판도 하지 않아.”(p.388)라고 말했던 군중은 나름의 성역의 기준대로 사적 정의를 실현시킨다.

 

소설은 마지막 장에 포파이의 탄생과 죽음을 배치한다. 지금까지의 혼란과 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의 삶의 굴곡과 상흔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이끌었는지 에필로그처럼 보탠다. 그럼으로 악은 태어나는 것인가 결핍과 트라우마로 획득되는 것인가 묻는다. 포파이의 반대편에 사람이란 어떤 일을 할 때면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 사물의 조화에 필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p.364)고 했던 벤보가 비록 지금은 실패하였지만 작은 희망처럼 존재한다.  그는 <팔월의 빛>의 바이런 번치,  단편 <머리카락>의 호크쇼 계열의 캐릭터로 미약할지라도 불의를 바로잡고자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에게 호의적인 조력자는 찾기 어렵다.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시점에 가까우나 포크너 소설이 으레 그렇듯 드러내고 전달하기보다 감추고 미완인 채로 둔다. 템플이 벤보에게 들려주는 사건의 전말은 대체할 수 없는 진실 같았다가 순진하고 비개인적인 허영심에 찬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지적에 독자는 멈칫한다. 템플의 회상은 심지어 자아도취적인 면도 합세하여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어쩌면 자기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멤피스 미스 레바의 집에서 그녀는 1030분을 생각했다고 반복 서술하는 템플의 성찰은 인상 깊다. 동일한 시간대이지만 며칠 사이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건 이후 1030분은 더 이상 이전의 1030분이 아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실로 완전하게 갈리는 카이로스의 순간이 되어버린다.  시간과 소음의 비유나 다양한 수사는 사건의 진행 틈새에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들인다.

 

소설은 독자의 몫으로 여러 의문을 남겨둔다.  책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추측하는 일도 독자의 몫이다.  남부의 작가 포크너는 <성역>에서 1920년대 미국 남부 상류 사회의 부도덕과 속물근성을 비판한다.  맹목적인 군중 심리, 익명의 목소리가 진실을 가리고 왜곡시키는 현장도 고발한다.  진 스타인과 진행한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의 소설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평에 대하여 포크너는 답한다.  폭력은 단지 목수의 연장 중 하나와 마찬가지이며, 목수가 한 가지 연장으로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작가도 한 가지 연장으론 글을 지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성역>은 가독성은 좋으나 어둡고 불편한 작품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편하지만 필요한 작품임은 물론이다.  현대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보내고 있는 <성역>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책 속에서>


글쎄, 그들이 날 유죄로 만들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든 말든 난 법정에서 승산이 있어요. 하지만 그자가 그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는 말을 내가 했다는 게 멤피스에 퍼졌다가는 내가 증언을 한 이후 이 감옥으로 다시 돌아올 가망이 있을 것 같아요?”

당신에겐 법, 정의, 문명이라는 게 있어요.”(p.174)

 

 

그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을 말하기 시작했다.

평화는 드물어라. 평화는 드물어라.”(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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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 자선 단편집 2 포크너 자선 단편집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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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포크너 자선 단편집 2(조호근 옮김, 서커스, 2025, 704쪽 분량)1권에 이어 <황무지>, <중간 지대>, <저 너머>에 속하는 스물 네 작품을 담았다. 작품 해제에 실린 제발 누군가에게 바가지를 씌워황금의 땅1천에 팔아줬으면 하네. 그러면 다시 머릿속 냄비를 휘젓지 않고 장편에 매진할 수 있는 두 달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p.11)라는 인용문을 읽으며 포크너가 머릿속 냄비를 휘저어 풍성한 단편 또한 창작해서 독자에게는 얼마나 행운인가 싶었다.

 

<황무지>1차 세계대전 말과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 단편들로 채워진다. 라틴어로 별을 향해라는 의미인 아드 아스트라(Ad Astra)”는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었건 시간이 지날수록 별에 비유되는 이상과는 멀어지는 실상을 그린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묘사는 절망의 골이 깊어지고 번민과 자괴감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승리>는 전쟁이 종교와 전통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던 한 가족의 구성원을 어떻게 비인간화시키고 나락으로 떨어뜨렸는가에 대하여 감정을 배제한 채 르포르타주처럼 서술하는 작품이다. 마치 한 편의 고발문학 같다. 결말의 그레이와 워클리가 만나는 장면은 필름이 돌아가는 듯 시각적이고 잔상이 길다.

 

전쟁을 주제로 하는 포크너의 단편들은 약 백여 년 후인 현재의 정황과도 닿아 있다. <세상을 떠난 모든 파일럿들에게>가 과연 1권에 묶인 <스러지지 않으리>라는 제목에 조응할 수 있을지, 답은 부정적이다. <스러지지 않으리> 또한 이미 스러진 이들을 향한 반어적 의미를 내포할 뿐 아니라 회상하고 이야기함으로 소멸에 저항한다. 시대에 떠밀려 스러지는 생명, 특히 젊음, 부스러지는 꿈을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해낸다. 스냅 사진으로 추억하는 사람들의 사라져버린 시간이 아스라하다. 그들이 빼앗긴 열정과 일상에 대하여 작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물으며 기록한다. 속절없이 사라져갈 기억일지라도 붙든다.

 

포크너가 결정하는 제목은 물론 함축적이지만 때로는 역설적이고 자조 섞인 비판도 담는다. 본의 아니게 또는 기꺼이, 선택의 여지없이 전쟁에 뛰어든 이들을 기록하며 용기를 새롭게 정의 내린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용기를 품은 인간 따위는 없으며, 그저 도로에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지듯이 눈먼 채 용맹 속으로 뛰어들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p.78) “그게 전부다. 그걸로 끝이다. 용기든 무모함이든 원하는 대로 불러도 좋은 그것은 그저 찰나를 밝히는 불꽃일 뿐, ! 소리와 함께 꺼지면서 원래의 어둠이 돌아온다.”(p.192)라고.

 

<중간 지대>에는 결이 다른 작품들이 포진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다루어야 한다고 했던 포크너는 모든 작품에서 이 주제를 놓치지 않지만 특별히 더 인상 깊은 작품을 모아놓는다. 문을 여는 단편 <와시><압살롬, 압살롬!>의 와시(워시) 존스 에피소드 결말부를 통해 단편으로 먼저 구상되었음을 알게 한다. 서트펜 가의 흑인 노예들에게도 멸시 당하던 와시는 위상이랄 게 없다. 백인 빈민(poor white trash)의 소외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의 비극을 집중적으로 숙고하고 2년 후에 3대 장편 소설 중 하나인 <압살롬, 압살롬!>에 적확하게 안착시킨다.

 

<마티노 박사>는 미스테리 같다가 심리 스릴러처럼 전환하는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삼월 토끼 모티프도 인상 깊고, 황동으로 힘이나 진실이 퇴색하는 비유는 1권에 실린 <황동 켄타우로스>를 연상케 한다. 마티노 박사는 중반 이후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강렬한 주인공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며 심리학에서의 조종을 긴밀하게 연결한 모퉁이를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총명했을 젊은이들의 무기력한 자멸은 안타까우면서도 으스스하다. <브로치>에서 장악하기의 또 다른 예, 또 다른 폐해를 볼 수 있다. 관계와 심적 갈등을 예민하게 응시하고 꼭 필요한 장면을 반복, 배치하여 결말까지 치닫는 속도와 힘이 대단하다. 세 인물 중 어떻게 연결한 두 사람도 평안이라고는 없는 투쟁 관계가 마치 그리스 고전 비극을 읽는 것만 같다.

 

언급했듯이 포크너 단편을 읽을 때, 제목을 놓치지 않고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지점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경우도 있다. <황금의 땅>의 결말부는 글렌데일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할애한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계속해서 꿈 꿔 왔지만 불가능함을 깨닫고 낙담한다. ‘영원히 살게 될 거야라는 말이 이미 생명을 잃었다는 말과 동일시되면서 그녀가 물기를 흡수할 수 없는 황금의 땅에 이식된 식물처럼 시들어 가리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종 간 갈등을 주목하고 드러내온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작동하는 힘의 논리, 그로 인한 폭력성과 잔인함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 밀라드 할머니와 베드포드 포레스트 장군과 해리킨 크릭 전투>는 작정하고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라고 작가가 앞서 나가는 글이다. ‘그 일은 대체 무엇인가, 독자는 추측과 추론, 추격을 시작한다. <불타오르는 헛간>의 소년 화자의 아버지 앱 스놉스는 여전히 비열한 행동을 하며 사위 존 사토리스의 농장을 지키고 있는 화자의 할머니 로자 밀라드와 대치국면이다. 길고도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은 후반으로 접어들면 서서히 전말이 드러난다. 전쟁 서사를 너무 낭만적인 에피소드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장편 <소리와 분노>가 남부 명문가였던 콤슨 가의 가세가 기울고 몰락해가는 과정과 사회 분위기를 기록했다면 단편 <여왕이 있었네>는 사토리스 가문의 몰락으로 남북전쟁 후 남부 귀족의 명멸을 전한다. ‘여왕이 있었다는 과거형은 노부인이 가문의 역사로 편입되는 종결과 닿는다.

 

6<저 너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더 자주 침범한다. 소제목과 동일한 <저 너머>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으로 사별을 통해서 그리고 사별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말이나, 지성으로 가능하고 육신이 갈망하는 불멸성이란 결국 죽음이라는 통찰이 작가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 같다. 각주에서는 이 작품이 포크너의 실제 삶과 명확한 연관을 지닌 드문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도입부와 결말부 사이(임종과 입관 사이)에 사후의 여정을 끼워 넣은 형식도 눈여겨보게 되면서 유려한 문장과 상상을 자극하는 전개가 이 또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환상적 요소와 씁쓸한 현실이 뒤섞이는 <검은 음악>, 유쾌와 낙관에서 스산함으로 변해가는 까다로운 작품 <다리>, 지역의 특징적 바람, 자연이 배경이 아닌 전면에 부각하는 듯한 단편 <미스트랄>을 비롯하여 마지막 작품 <카르카손>은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고조시킨다. 여러 고전을 인용해 죽음을 관조하고 응시하는데 문장은 여전히 탁월하게 아름답다.

 

몇 작품만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무엇보다 포크너가 직접 선별한 단편을 읽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때로 작가의 의도에 닿지 못하는 모호함과 답답함을 느끼면서,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스토리텔링에 감탄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작품은 책장이 일방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무던히 거슬러 올라가 다시 읽기를 시작하고 서두와 종결을 나란히 보기도 하였다. 캐릭터를 한 번에 설명하지 않고 세부를 하나씩 추가하는 서술 방식이 독자를 분주하게 만들기에 때론 이렇게까지 힘들게 읽을 이야기인가 소심하게 투덜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포크너식 위트, 호러부터 유머까지 멈추지 않는 질주는 근사하다.

 

숭학당에서 함께 읽기를 진행하면서 1권의 토론 작품은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로 비교적 쉽게 결정하였다. 2권에서 한 작품을 선택하는 일은 꽤 어려웠다. 함께 치열하게 읽어낸 작품을 논제와 토론으로 재정리하고 싶은 단편이 그만큼 많았다. 결국 <브로치>로 정했는데 와시, 펜실베니아 역, 자택의 예술가, 마티노 박사, 황금의 땅, 산골의 승리 등 결정을 미루며 갈등을 계속 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들도 나눠볼 수 있기를 바란다. 독자는 회복이 불가능한 절망,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설마가 사실이 되는 비정함 앞에서 안타까움에 만일 ~했더라면 달라졌을까를 거듭 되뇌며 인간 조건과 생의 비밀을 응시한다.

 

포크너가 벼려내 놓은 잊을 수 없는 문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 때론 의미와 상징으로 꽉 찬 밀도 높은 문장,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리듬감 넘치는 문장, 연극적 문장, 호소하는 문장, 침묵으로 메아리치는 문장, 속이는 듯한 문장, 따돌리는 문장까지 그 모든 포크너의 문장을 비록 번역본으로 읽는 독자이지만 사랑한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서 불멸인 어떤 것을 뒤에 남겨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던 포크너. 그의 말대로 그의 문장은 항상 움직일 테고, 소리낼 것이다. 가독성 좋은 포크너, 포크너 입문서가 필요한 독자에게 우선 <포크너 자선 단편집>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친구란 있으면 좋은 존재다. 밤에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는 말이다. 하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네 결점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너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저지르는 사람을 견뎌내려면 그를 깊이 사랑해야 한다.”(p.79)

 

그래서 이 이야기는 복합적이다. 즉각적이고 깊이나 균형감 따위는 없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무엇을 겪고 변화할지에 대한 전조이자 위협을 슬쩍 내비치는, 어둠과 어둠 사이에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번개처럼 짤막하게 이어지는 일련의 인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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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제가 가득한 제미나이 길라잡이 생성형 AI 길라잡이
이승우 지음 / 정보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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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이 탁월한 도구이자 빼어난 파트너로 일상에 안착해가는 중이다. AI 시장에서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는 강자의 자리를 확보했고 최근에는 클로드의 약진도 주의를 끈다. 최재천 교수님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다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며 도서관을 일주일 뒤져야 하는 작업을 AI15초 만에 해준다면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고 하였다. AI와 내외해왔지만 도태는 시간 문제라는 생각도 들던 차에 재미나이는 유료 챗GPT라 생각된다는 이야기에 알아보자 싶었다. 마침 이승우의예제가 가득한 제미나이 길라잡이(정보문화사, 2026, 264쪽 분량)는 제목처럼 첫걸음을 떼기 위한 안내서로 삼기에 적절하다.

 

저자는 독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부터 익히고 활용할 것을 권한다. 빠른 모드, 사고 모드, Pro의 세 가지 핵심 모드를 살펴보면서 프롬프트에 따라 단편소설 플롯도 만들어주고 요구사항을 포함한 보고서 작성, 나아가 학술 논문 작성까지 능력치가 놀랍다. 계속해서 데이터는 쌓이고 한계는 지워질 것이다. ‘사용자가 대화할 때 입력하는 모든 문장인 프롬프트도 사례를 보면서 이해할 수 있다. 직관적인 질문 뿐 아니라 메타 프롬프트를 사용해 AI와 공동으로 작성하고 초안 확인과 개선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데이터 작업 자동화 파트에서는 다양한 예제를 경험할 수 있는데 자동 생성되는 차트는 확실히 시간과 수고를 아껴줄 것 같다. Pro이상인 경우에 슬라이드 생성과 이미지 삽입 등을 적용해 강의 자료 작성에 활용해보아도 되겠다.

 

지메일, 이메일 자동 작성 및 관리 파트에서는 읽지 않은 메일들의 내용을 요약해 준다는 게 매력적이다. 더 나아가 읽지 않은 메일 중에서 회신이 필요한 메일을 알려달라는 단계에서는 뭐지? 마법사야? 갸웃했다. 인공지능과 아직 멀리 있는 인간의 반응이다. , 놀라워라를 연발하면서 읽어나갔지만, 제공된 예제도 실험해보고 직접 부딪히며 체득하고 알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기본 개념과 작동 방식, 연결 과정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글쓰기 수업 에클에 참여하면서 구글 문서로 실시간 협업과 소통, 전천후 접근 등 다양한 매력을 경험하였다. 다만 문서 스타일 변화 시도는 새롭게 알게 된 기능이었고 활용여부는 선택의 영역이라 본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AI는 여러분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AI는 시간과 생각의 여유를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라고 전한다. 문명의 이기인 셈인데 도구를 잘 사용한다면 여러분여러분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욱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겠다. 이번 주에 진행하였던 도서관의 토론 도서는 마크 트웨인의아담과 이브의 일기였다. 전복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이브는 짐작과 가정과 추측이 아닌 실험을 통한 증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것의 답을 알아내면 더는 가슴 뛰는 일이 남아 있지 않을 테고그런 일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고 덧붙인다. ‘새로운 불이라고 일컫는 AI시대는 잠정적으로든, 자명하게든 모든 것의 답을 알아낸 시대일까. 그 답은 차치하고 우선 시간과 생각의 여유를 누려보기 위하여 진화하는 파트너를 경험하는 안내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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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 자선 단편집 1 포크너 자선 단편집 1
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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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 자선 단편집 1의 서평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끝에 을 빼기로 타협하고서야 겨우 숨을 고른다. 우선포크너 자선 단편집 이 출간되어서 무엇보다 기쁘다. 읽을 수 있어서 기쁘고, 그럼으로 포크너만의 아우라를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어서 기쁘며, 이에 더해 8개월 동안 진행하고 있는 숭학당의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에 포함할 수 있어서 기쁘다.포크너 자선 단편집100편에 이르는 단편 중에서 작가가 직접 선별한 42편을 묶었으며 1권에는 스무 작품을 담았다. 작품 결정부터 수록 순서와 각 장의 소제목까지 직접 정했던 포크너는 1951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1949)하고 시상식은 다음 해에 가졌는데 수상 연설은 그의 문학적 지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포크너는 글을 쓸 가치가 있는, 비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주제는 오직 인간 내면의 갈등뿐이라고 전했다. 인간 내면의 오래된 진리이자 진실을 남겨야 하는데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부심과 연민과 희생 같은 보편적 진리가 깃들지 않은 이야기란 그저 짧게 스러질 운명일 뿐“(p.8)이라고 강조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은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리와 분노(1929),팔월의 빛 (1932),압살롬, 압살롬!(1936)이 있다. 독특한 서술 기법과 문체로 작가의 개입과 판단을 억제하고 인물이 직접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작품들이다. 로쟈 이현우는 초심자를 위한 포크너가 있느냐는 것. 비유컨대 포크너는 경사가 완만한 바다가 아니라 바로 깊어지는 바다다. 그럼에도 문학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에 끌리지 않기도 어렵다.’고 하였는데 이 책이 적절한 포크너 입문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포크너 작품의 배경인 전후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가상의 공간인 요크나파토파는 단편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전체 6개의 장에서 1권은 <시골>, <마을>, <야생> 세 개의 장, 스무 작품을 담았다. 첫 번째 단편 <불타오르는 헛간>은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사회의 계급 갈등을 다룬다. 화자인 막내 아들 커널 사토리스 스놉스의 시선으로 아버지 애브너 스놉스 위주의 일화와 행동을 보여준다. 폭력적인 아버지 애브너는 자신의 잘못으로 배상 판결을 받자 분노하며 헛간에 불을 지른다. 어린 아들에게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설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소년의 갈등과 고통은 결국 그 걸음을 미지의 곳으로 이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가 포크너의 변주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가 모티프라고 알려져 있어 유명하다.

 

어린 소년이 화자인 작품을 꽤 만날 수 있다. <주님의 지붕널>도 아들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아버지에게 초점을 두고 서술해가는 단편이다. 대공황으로 인한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며 풍자적 요소들이 웃음 짓게 하고 그런 중에도 신앙의 불멸성과 견고함이 재건 계획을 세우게 한다는 견해도 읽힌다. 스피디한 전개와 온점같은 마지막 요약 문장까지 근사하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전쟁, 그 이해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작품 <두 병사>는 동심을 이토록 온전히 이해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에 다시 한번 놀랄 따름이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따온 <스러지지 않으리><두 병사>의 후속편으로 질문이 계속되는 단편이다.


<윌리 삼촌>은 화자인 소년이 주인공의 죽음을 먼저 밝히면서 과거를 회고한다. 마을 사람들은 드럭스토어를 경영하다 약물 중독에 빠진 윌리 삼촌을 치료하려고 애쓰나 그는 도움을 원하지 않고 지옥길일지라도 혼자 갈 수 있기를 원한다. 탈출을 시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엉뚱하게 죽음을 맞는데, 화자인 나는 윌리 삼촌을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사랑하고 죽음을 초월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연민 어린 블랙 코미디적 굴곡을 통해 어떤 도움은 선의로 닿지 않고 모멸일 수 있나 질문을 남긴다. 그 중 포크너의 장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다알 번드런 예화가 잠시 나와서 반갑다. 로드니 외삼촌과의 에피소드를 조카 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그 또한 괜찮으리라>는 온 가족을 눈물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문제아 로드니 외삼촌의 끝없는 일탈과 비극적 결말을 긴밀하게 그린다. 아이는 후에 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감당하려나 염려가 된다.

 

포크너의 인물은 다른 작품에서 종종 재등장한다. <소리와 분노>의 퀜틴 콤슨이 <압살롬, 압살롬!>에서 이미 전사를 쌓으며 침잠해갔던 게 일례다. <키 큰 남자들>에서는 휘둘리지도 타협하지도,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지도 않고 묵묵히 선택하고 살아낸 이들을 본다. 온갖 규칙과 규제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게 우리들의 문제라는 보안관보의 견해는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다. 인물간 구도를 눈여겨 볼 작품이며 <팔월의 빛>에서는 지방 검사로 나왔던 개빈 스티븐슨 변호사를 전언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어느 곰 사냥>에서 중편 <>의 주인공 아이크 매캐슬린(아이작)이 스치고, 주요 인물 드 스페인 소령은 여러 단편에 출현한다. 누군가에게 장난이 다른 사람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아픔으로 남고 잊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발한 에피소드로 능청스런 비유가 계속될 때면 포크너가 이렇게 유쾌한 면도 있었나 싶다.

 

놀랍게도,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읽는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황동 켄타우로스>는 영상을 보는 것 마냥 시각적이고 주인공들의 표정까지 그려진다. 다만 웃음을 위한 웃음은 아니다. 희비가 교차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실소하거나 쓴웃음을 짓는 경우도 상당하다. <죽음의 매달리기>는 어떤가. 서두의 작품 해제(p.22~23)에서 포크너의 공중 곡예에 관한 몇 개 단편들은 작가의 공군과 항공기에 대한 애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하는데 실재했던 곡예 비행이 중심이다. 곡예를 선보이는 과정이 무척 생생하나 톤은 더할 수 없이 진지하다. 타인의 위험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시선, 군중 심리에 대한 비판도 볼 수 있는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실소가 나니 난감하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웃음을 참으며 읽게 하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머리카락>에서는 호크쇼라는 이발사가 등장한다. 평범하지 않은 호크쇼의 행적을 화자가 개빈 스티븐스에게만 털어놓는 구조다. 여자와 남자를 단정하는 시선이 불편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일상이었을 테다. 그는 또 다른 인물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호크쇼를 직접 본 남자라면~’(p.201)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팔월의 빛>에서 바이런 번치를 설명하는 서두의 한때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도~’와 흡사하다. 매우 시적이다. 예상을 넘어서는 반전 결말은 단편의 미덕을 배가시킨다. 충격 결말이라면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를 꼽을 수 있다. 포크너가 출간한 첫 번째 단편소설로 비평가 브룩스에 따르면 포우를 능가하려는 시도이며 포크너가 창조한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는 항구, “포크너적인 충격이다. 에밀리 그리어슨 양의 저택이 눈엣가시 사이의 눈엣가시가 된 것처럼 아버지 세대의 이상은 옛 것이며 불합리한 면도 두드러진. 에밀리의 일생은 포크너의 여러 인물이 강요된 틀에 갇혀 고통을 감내하는 여정이었듯 놓치고 사라져가는 시간의 축적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회복할 여지가 없는 시점에 복기함으로 드러난다. 포크너가 즐겨 사용하는 비순행적 서사 진행을 단편에서도 구사한다. 시간을 추적하면서 독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상쇄하고 회복하기 원하는, 나아가 시간과 겨루고자 도전하는 애처로운 인물을 만난다. <매마른 9>의 미니 쿠퍼 양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첨예한 흑백 갈등을 비판하는 <매마른 9>에서 남부 신화안에서 살아가는 미니 쿠퍼양은 틀 안에 안주하고 방관함으로 어쩌면 불의한 폭력에 가세한다. 작가는 발표 1년 후인 1932년에 조 크리스마스 주인공의 장편 <8월의 빛>을 출간하는데 집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던 시기다. 선동적 극단주의자 매클렌든은 <8월의 빛>의 퍼시 그림 계열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백인 여성 옹호를 위한 매클렌든의 분노가 새장 같다고 표현한 그의 집에서 아내에게 하는 행동을 스케치함으로 이중성을 드러내고 위선의 산물일 뿐임을 지적한다. <엘리>는 첨예한 흑백 갈등을 따라가다 심리 스릴러같은 섬찟한 결말로 이끈다.

 

흑인 여성은 당시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그 저녁의 태양>은 남부 흑인 여자의 고통스런 삶을 세부 설명 없이 분위기와 심리 묘사 만으로도 독자가 충분히 추측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 포크너는 이번에도 어린이를 주요 화자로 등장시켜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다. 아이들 눈에 보여지는 것 넘어, 이해하는 것 이면의 갈등이나 임박한 폭력의 위험성 을 상상하게 한다. 낸시의 슬픈 삶, 그 두려움을 아무도 해소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먹먹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화자가 어린 퀜틴 콤슨이라는 점이다. <소리와 분노>의 콤슨가 남매 넷 중 막내 벤지를 제외한 셋과 아버지 어머니, 하녀 딜지까지 등장하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하다. 아홉 살 퀜틴, 일곱 살 캐디, 다섯 살 제이슨이 낸시를 보고 그녀의 말을 듣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포크너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유년의 콤슨가 아이들과 어머니인 콤슨 부인의 성향까지 완벽하게 그려낸다. 그것만으로도 뜻밖의 보석을 발견한 듯 기쁨을 안긴다. 3야생편은 인디언 소재 작품들인데 <정의 하나>는 열 두 살 퀜틴이 <>의 주요 인물 중 샘 파더스의 과거를 거슬러 전언의 전언을 듣는 식으로 전개된다. <정의 하나>의 전사라 볼 수 있는 <어떤 구애>는 추장 둠의 청년기가 드러나면서 한 인물을 단일하게 해석하는 것을 상쇄한다.

 

단편 소설에서도 여전히 시간순의 친절한 전개와는 거리가 멀다. 꿈 속의 꿈처럼 A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B와의 대화에서 들었던 CC'의 행보라는 구조가 독자도 계속 긴장하며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문자의 표면적 뜻에서 탐색해 들어가 이면의 깊은 의미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며 남겨둔 행간을 힘써 헤아릴 것 또한 동시에 요청한다. 읽은 부분을 앞 뒤로 재점검하면서 혹시 오독은 아닐까 고민하는 일은 포크너 독자에게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철저한 캐릭터 구축, 탁월하고 아름다운 비유와 상징, 정곡을 찌르는 일침, 상황과 심정을 문장으로 적확하게 간추리는 반복을 통해 작가는 희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나은 시간을 희망한다. <두 병사>에서 열 아홉 살 피트 그리어는 어느 날 진주만에 그 일이 일어나서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의 중심도시 제퍼슨에서 떨어져 있는 가난한 농촌 지역 프렌치맨즈 벤드에 사는 피트의 가족은 똑같이 태평양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드 스페인 소령을 위로하기 위해 법원 건물보다 커 보이는 소령의 저택을 방문한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박물관에 들르는데 작가가 만들어낸 상징과 같은 박물관이다. 관람료를 내지 않고 다르게 생긴 집과 헛간과 경작하는 방식이나 경작하는 작물이 다르더라도 결국에는 같은 인간인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그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공간이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사명을 요구 받기도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더라도 스러지지 않는다. 포크너가 창조한 문학적 우주 요크나파토파는 미국 문학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 중 하나’(톰 울프)이며, 마르케스에게 마콘도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이다.

 

포크너는 그가 개척한 상상의 땅에서 스러져서는 안 될 순간을 포착하고 스러져버린 이들을 일으켜 세운다. 글을 쓸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였던 인간 내면의 갈등에 천착함으로 주요 장편 소설에서 뜻 깊은 성취를 해내지만 단편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그리어의 가족이 들렀던 제퍼슨의 박물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하고 먼지를 털어내는 기념관이다. 포크너에게 남부는 온 마음으로 응시하고 관찰하고 나아가 현미경을 대보고 각도를 바꿔보며 전력을 다했던 대상이었고, 결국 영원히 아로새겨놓았다. 지금 우리의 남부는 어디인가, 어떤 이름인가 혹은 누구일까. 전심으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지 생각한다. 기존 출간된 포크너 단편집은 다섯 작품을 담은 <헛간, 불태우다>(쏜살문고, 민음사, 2021)와 열 두 작품을 실은 <윌리엄 포크너>(현대문학, 2013)가 있다. 이번에 두 권으로 포크너 자선 단편집이 완역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작품 해제와 꼼꼼한 각주, 사투리체 번역까지 역자의 정성이 가득하다. 빼어난 작품들을 짧은 호흡으로 읽는 호사를 누릴 일만 남았다. 압축의 정수인 한 편이 마무리 될 때마다 감탄사가 나올 게 분명한포크너 자선 단편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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