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너 자선 단편집 1 포크너 자선 단편집 1
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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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 자선 단편집 1의 서평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끝에 을 빼기로 타협하고서야 겨우 숨을 고른다. 우선포크너 자선 단편집 이 출간되어서 무엇보다 기쁘다. 읽을 수 있어서 기쁘고, 그럼으로 포크너만의 아우라를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어서 기쁘며, 이에 더해 8개월 동안 진행하고 있는 숭학당의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에 포함할 수 있어서 기쁘다.포크너 자선 단편집100편에 이르는 단편 중에서 작가가 직접 선별한 42편을 묶었으며 1권에는 스무 작품을 담았다. 작품 결정부터 수록 순서와 각 장의 소제목까지 직접 정했던 포크너는 1951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1949)하고 시상식은 다음 해에 가졌는데 수상 연설은 그의 문학적 지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포크너는 글을 쓸 가치가 있는, 비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주제는 오직 인간 내면의 갈등뿐이라고 전했다. 인간 내면의 오래된 진리이자 진실을 남겨야 하는데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부심과 연민과 희생 같은 보편적 진리가 깃들지 않은 이야기란 그저 짧게 스러질 운명일 뿐“(p.8)이라고 강조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은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리와 분노(1929),팔월의 빛 (1932),압살롬, 압살롬!(1936)이 있다. 독특한 서술 기법과 문체로 작가의 개입과 판단을 억제하고 인물이 직접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작품들이다. 로쟈 이현우는 초심자를 위한 포크너가 있느냐는 것. 비유컨대 포크너는 경사가 완만한 바다가 아니라 바로 깊어지는 바다다. 그럼에도 문학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에 끌리지 않기도 어렵다.’고 하였는데 이 책이 적절한 포크너 입문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포크너 작품의 배경인 전후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가상의 공간인 요크나파토파는 단편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전체 6개의 장에서 1권은 <시골>, <마을>, <야생> 세 개의 장, 스무 작품을 담았다. 첫 번째 단편 <불타오르는 헛간>은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사회의 계급 갈등을 다룬다. 화자인 막내 아들 커널 사토리스 스놉스의 시선으로 아버지 애브너 스놉스 위주의 일화와 행동을 보여준다. 폭력적인 아버지 애브너는 자신의 잘못으로 배상 판결을 받자 분노하며 헛간에 불을 지른다. 어린 아들에게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설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소년의 갈등과 고통은 결국 그 걸음을 미지의 곳으로 이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가 포크너의 변주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가 모티프라고 알려져 있어 유명하다.

 

어린 소년이 화자인 작품을 꽤 만날 수 있다. <주님의 지붕널>도 아들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아버지에게 초점을 두고 서술해가는 단편이다. 대공황으로 인한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며 풍자적 요소들이 웃음 짓게 하고 그런 중에도 신앙의 불멸성과 견고함이 재건 계획을 세우게 한다는 견해도 읽힌다. 스피디한 전개와 온점같은 마지막 요약 문장까지 근사하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전쟁, 그 이해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작품 <두 병사>는 동심을 이토록 온전히 이해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에 다시 한번 놀랄 따름이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따온 <스러지지 않으리><두 병사>의 후속편으로 질문이 계속되는 단편이다.


<윌리 삼촌>은 화자인 소년이 주인공의 죽음을 먼저 밝히면서 과거를 회고한다. 마을 사람들은 드럭스토어를 경영하다 약물 중독에 빠진 윌리 삼촌을 치료하려고 애쓰나 그는 도움을 원하지 않고 지옥길일지라도 혼자 갈 수 있기를 원한다. 탈출을 시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엉뚱하게 죽음을 맞는데, 화자인 나는 윌리 삼촌을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사랑하고 죽음을 초월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연민 어린 블랙 코미디적 굴곡을 통해 어떤 도움은 선의로 닿지 않고 모멸일 수 있나 질문을 남긴다. 그 중 포크너의 장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다알 번드런 예화가 잠시 나와서 반갑다. 로드니 외삼촌과의 에피소드를 조카 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그 또한 괜찮으리라>는 온 가족을 눈물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문제아 로드니 외삼촌의 끝없는 일탈과 비극적 결말을 긴밀하게 그린다. 아이는 후에 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감당하려나 염려가 된다.

 

포크너의 인물은 다른 작품에서 종종 재등장한다. <소리와 분노>의 퀜틴 콤슨이 <압살롬, 압살롬!>에서 이미 전사를 쌓으며 침잠해갔던 게 일례다. <키 큰 남자들>에서는 휘둘리지도 타협하지도,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지도 않고 묵묵히 선택하고 살아낸 이들을 본다. 온갖 규칙과 규제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게 우리들의 문제라는 보안관보의 견해는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다. 인물간 구도를 눈여겨 볼 작품이며 <팔월의 빛>에서는 지방 검사로 나왔던 개빈 스티븐슨 변호사를 전언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어느 곰 사냥>에서 중편 <>의 주인공 아이크 매캐슬린(아이작)이 스치고, 주요 인물 드 스페인 소령은 여러 단편에 출현한다. 누군가에게 장난이 다른 사람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아픔으로 남고 잊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발한 에피소드로 능청스런 비유가 계속될 때면 포크너가 이렇게 유쾌한 면도 있었나 싶다.

 

놀랍게도,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읽는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황동 켄타우로스>는 영상을 보는 것 마냥 시각적이고 주인공들의 표정까지 그려진다. 다만 웃음을 위한 웃음은 아니다. 희비가 교차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실소하거나 쓴웃음을 짓는 경우도 상당하다. <죽음의 매달리기>는 어떤가. 서두의 작품 해제(p.22~23)에서 포크너의 공중 곡예에 관한 몇 개 단편들은 작가의 공군과 항공기에 대한 애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하는데 실재했던 곡예 비행이 중심이다. 곡예를 선보이는 과정이 무척 생생하나 톤은 더할 수 없이 진지하다. 타인의 위험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시선, 군중 심리에 대한 비판도 볼 수 있는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실소가 나니 난감하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웃음을 참으며 읽게 하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머리카락>에서는 호크쇼라는 이발사가 등장한다. 평범하지 않은 호크쇼의 행적을 화자가 개빈 스티븐스에게만 털어놓는 구조다. 여자와 남자를 단정하는 시선이 불편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일상이었을 테다. 그는 또 다른 인물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호크쇼를 직접 본 남자라면~’(p.201)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팔월의 빛>에서 바이런 번치를 설명하는 서두의 한때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도~’와 흡사하다. 매우 시적이다. 예상을 넘어서는 반전 결말은 단편의 미덕을 배가시킨다. 충격 결말이라면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를 꼽을 수 있다. 포크너가 출간한 첫 번째 단편소설로 비평가 브룩스에 따르면 포우를 능가하려는 시도이며 포크너가 창조한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는 항구, “포크너적인 충격이다. 에밀리 그리어슨 양의 저택이 눈엣가시 사이의 눈엣가시가 된 것처럼 아버지 세대의 이상은 옛 것이며 불합리한 면도 두드러진. 에밀리의 일생은 포크너의 여러 인물이 강요된 틀에 갇혀 고통을 감내하는 여정이었듯 놓치고 사라져가는 시간의 축적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회복할 여지가 없는 시점에 복기함으로 드러난다. 포크너가 즐겨 사용하는 비순행적 서사 진행을 단편에서도 구사한다. 시간을 추적하면서 독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상쇄하고 회복하기 원하는, 나아가 시간과 겨루고자 도전하는 애처로운 인물을 만난다. <매마른 9>의 미니 쿠퍼 양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첨예한 흑백 갈등을 비판하는 <매마른 9>에서 남부 신화안에서 살아가는 미니 쿠퍼양은 틀 안에 안주하고 방관함으로 어쩌면 불의한 폭력에 가세한다. 작가는 발표 1년 후인 1932년에 조 크리스마스 주인공의 장편 <8월의 빛>을 출간하는데 집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던 시기다. 선동적 극단주의자 매클렌든은 <8월의 빛>의 퍼시 그림 계열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백인 여성 옹호를 위한 매클렌든의 분노가 새장 같다고 표현한 그의 집에서 아내에게 하는 행동을 스케치함으로 이중성을 드러내고 위선의 산물일 뿐임을 지적한다. <엘리>는 첨예한 흑백 갈등을 따라가다 심리 스릴러같은 섬찟한 결말로 이끈다.

 

흑인 여성은 당시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그 저녁의 태양>은 남부 흑인 여자의 고통스런 삶을 세부 설명 없이 분위기와 심리 묘사 만으로도 독자가 충분히 추측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 포크너는 이번에도 어린이를 주요 화자로 등장시켜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다. 아이들 눈에 보여지는 것 넘어, 이해하는 것 이면의 갈등이나 임박한 폭력의 위험성 을 상상하게 한다. 낸시의 슬픈 삶, 그 두려움을 아무도 해소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먹먹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화자가 어린 퀜틴 콤슨이라는 점이다. <소리와 분노>의 콤슨가 남매 넷 중 막내 벤지를 제외한 셋과 아버지 어머니, 하녀 딜지까지 등장하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하다. 아홉 살 퀜틴, 일곱 살 캐디, 다섯 살 제이슨이 낸시를 보고 그녀의 말을 듣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포크너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유년의 콤슨가 아이들과 어머니인 콤슨 부인의 성향까지 완벽하게 그려낸다. 그것만으로도 뜻밖의 보석을 발견한 듯 기쁨을 안긴다. 3야생편은 인디언 소재 작품들인데 <정의 하나>는 열 두 살 퀜틴이 <>의 주요 인물 중 샘 파더스의 과거를 거슬러 전언의 전언을 듣는 식으로 전개된다. <정의 하나>의 전사라 볼 수 있는 <어떤 구애>는 추장 둠의 청년기가 드러나면서 한 인물을 단일하게 해석하는 것을 상쇄한다.

 

단편 소설에서도 여전히 시간순의 친절한 전개와는 거리가 멀다. 꿈 속의 꿈처럼 A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B와의 대화에서 들었던 CC'의 행보라는 구조가 독자도 계속 긴장하며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문자의 표면적 뜻에서 탐색해 들어가 이면의 깊은 의미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며 남겨둔 행간을 힘써 헤아릴 것 또한 동시에 요청한다. 읽은 부분을 앞 뒤로 재점검하면서 혹시 오독은 아닐까 고민하는 일은 포크너 독자에게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철저한 캐릭터 구축, 탁월하고 아름다운 비유와 상징, 정곡을 찌르는 일침, 상황과 심정을 문장으로 적확하게 간추리는 반복을 통해 작가는 희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나은 시간을 희망한다. <두 병사>에서 열 아홉 살 피트 그리어는 어느 날 진주만에 그 일이 일어나서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의 중심도시 제퍼슨에서 떨어져 있는 가난한 농촌 지역 프렌치맨즈 벤드에 사는 피트의 가족은 똑같이 태평양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드 스페인 소령을 위로하기 위해 법원 건물보다 커 보이는 소령의 저택을 방문한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박물관에 들르는데 작가가 만들어낸 상징과 같은 박물관이다. 관람료를 내지 않고 다르게 생긴 집과 헛간과 경작하는 방식이나 경작하는 작물이 다르더라도 결국에는 같은 인간인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그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공간이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사명을 요구 받기도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더라도 스러지지 않는다. 포크너가 창조한 문학적 우주 요크나파토파는 미국 문학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 중 하나’(톰 울프)이며, 마르케스에게 마콘도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이다.

 

포크너는 그가 개척한 상상의 땅에서 스러져서는 안 될 순간을 포착하고 스러져버린 이들을 일으켜 세운다. 글을 쓸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였던 인간 내면의 갈등에 천착함으로 주요 장편 소설에서 뜻 깊은 성취를 해내지만 단편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그리어의 가족이 들렀던 제퍼슨의 박물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하고 먼지를 털어내는 기념관이다. 포크너에게 남부는 온 마음으로 응시하고 관찰하고 나아가 현미경을 대보고 각도를 바꿔보며 전력을 다했던 대상이었고, 결국 영원히 아로새겨놓았다. 지금 우리의 남부는 어디인가, 어떤 이름인가 혹은 누구일까. 전심으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지 생각한다. 기존 출간된 포크너 단편집은 다섯 작품을 담은 <헛간, 불태우다>(쏜살문고, 민음사, 2021)와 열 두 작품을 실은 <윌리엄 포크너>(현대문학, 2013)가 있다. 이번에 두 권으로 포크너 자선 단편집이 완역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작품 해제와 꼼꼼한 각주, 사투리체 번역까지 역자의 정성이 가득하다. 빼어난 작품들을 짧은 호흡으로 읽는 호사를 누릴 일만 남았다. 압축의 정수인 한 편이 마무리 될 때마다 감탄사가 나올 게 분명한포크너 자선 단편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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