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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평점 :
책은 “그러니까 나는 핌에 두 번밖에 가지 못할 것이었다.”(p.11)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논리와 이성, 현재 시점 최선책, 계획과 의지와 전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어긋난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회고하는 쓸쓸함과 아픔이 배어있다. 이 문장은 변화를 일으키고 다양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 그때가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어,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등의 읊조리는 문장들은 익숙하게 들어왔다. 말한 적도 있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366쪽 분량)에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서민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어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기록으로 출발하여 모두가 직면할 노화와 죽음이라는 공통의 인간 조건을 묻는다. 전작인『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한 저자가 자신이 속했고 벗어났던 노동 계급과 성 정체성을 분석하였다면 이번 저작에서 어머니는 노년에 이른 취약한 인간 일반으로 확대된다. 즉 피할 수 없기에 누구나 맞닥뜨릴 현재 또는 미래 어느 시점을 구체화한다.
어머니는 “내 집은 랭스야”라고 강조하지만, 방 하나가 예상보다 일찍 나온 덕분에 핌에 있는 에파드로, 즉 요양 병원 입소가 결정되었다. 연로하고 연약해지면서 집안에서도 넘어지거나 다치고, 연락도 끊기는 상황의 반복은 이성적인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다. 입소 이틀 후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잘 돌봐줄 거라고, “두고 봐요. 괜찮을 거예요.”(p.53)라는 ‘상투어들’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회복하지 못하실 거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중의 딜레마에 갇히는 갑갑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머니는 평생 불행했다고 저자는 인정한다. 그녀의 생애를 복기하고 그렇게 도달한 현재를 엘리아스, 흐라발, 솔제니친 등 다양한 작품과 견주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사르트르가 보여주었던 상호성, 시선의 드라마, 대상화,-시선을 받는 것은 대상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거기서 빠져나가지 못한다.(p.82)- 즉,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경구와도 같은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데, 독자를 서늘하게 사로잡는다. 요양원의 기존 거주자는 새 입소자에게 무엇이 기다리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힌트가 된다. 되는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어머니는 호소하고 격분하는 짧은 단계를 거쳐 슬라이딩 증후군으로 살아있음에서 미끄러진다. 저자는 어떻게 그녀 주위의 것들이 닫히고 막혀갔을지, 제도와 관리 방식이 어떻게 그녀를 학대하였는지 고프먼이 ‘총체적 기관’이라고 불렀던 의미를 어떻게 충족하는지, 그 부도덕성을 언급하고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아들이긴 했지만 나쁜 아들이었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더 이상 아들이 아님에, 가족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탈주함으로 아들 역할 또한 축소하고자 의도했음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최소한 사회학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고 쓴다.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흔적을 아쉬워하며 복기하기 위한 여정은 공감을 부른다. 태어났던 그녀, 버림받았던 그녀, 일하고 결혼하고 불행하고, 또 일하고 열기와 분진과 소음 속에서 다시 일하다 요양원이 기다리는 삶이란. 저자는 그런 일생을 산 서민 여성인 어머니와 그녀의 아들인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기록한다.
결말에서 저자는 노년, 취약함, 죽음 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을 심화한다. 신체적 자율성 상실과 ‘우리’라고 말할 가능성의 상실, 공적인 말에 가 닿을 경로의 상실에 대해 지적한다. 그들을 보이게 하고, 그들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과제를 독자와 백세시대인 지금 우리에게 드러낸다.『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은 자전적 글이 갖는 생생함이 감정을 내내 두드린다. 개인으로써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다양한 저서를 인용하여 실제와 연결하며 교차 서술하는 구성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독자 자신에게 대입하게 한다. 한 템포씩 멈추며 숙고하게 만든다. 사항마다 묻고 답하는 동안에 공감하는 지점은 늘어간다. 공감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불안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쇠락과 죽음을, 그 끝에 도달할 공간과 시간을 가늠케 해주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문장은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한지! 어떤 부분은 절절한 사모곡이다. “물론 G를 위하여”라는 헌사를 다시 읽는다. 본문에서 한 번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던 어머니일까. 아마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누군가가, 우리 각자의 G가 새롭게 그 자리를 채울 것 같다.

책 속에서>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
이젠 내가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된 것이 ‘그녀였는데도’인 동시에 ‘그녀 덕분에’라는 점을 잘안다. 내 정신 속에서는 ‘그녀였는데도’ 가 ‘그녀 덕분에’를 오랫동안 능가해 왔다. 물론 오래전부터 내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부끄럽다.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어머니에게 가져다준 고통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지만『내 어머니의 책』의 알베르 코엔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죄책감은 “조금 늦었다”라고.(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