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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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꿈처럼 시작되고 끝났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토록 심오한 이야기를 이처럼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다니 놀라워하며 10, 2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읽어서 더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백년의 고독(민음사/조구호 옮김)”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23년 동안 생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해 19676월 출간했으며, 각종 문학상을 거쳐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322p). 마르케스가 시도하고 완성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역자는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324p)’라고 설명한다. 마술적 사실주의 형상화에 천일야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국적인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6대에 걸친 이야기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펼쳐진다. 원시와 이상이 결합된 마꼰도라는 공간적 배경은 가문의 선조격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 의해 세워지고 질곡의 세월, 영원과 맞닿아 보이는 백 년을 견디어 내고 문을 닫듯이 마지막을 맞는다. 시간과 공간, 인물이 하나의 거대한 운명으로 완벽하게 녹아드는 중 각 인물의 서사는 개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상징을 드러낸다. 옳은 선택을 하고 운명을 벗어나려는 시도와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기력과 체념이 동일한 무게로 맞서고 있다.

 

사랑보다 더 끈끈한 연대의식, 즉 공통의 양심의 가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39p)’ 무서운 전례를 반복할 가능성에 두려워하면서도 가족을 이루고, 조상의 이름을 대를 이어 물려주는 부엔디아 가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살아간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슐라 이구아란의 세 자녀 호세 아르까디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아마란따 그리고 양녀로 들인 레베까가 이루는 두 번째 세대가 가족사의 중심을 잡고 있다. 레베까에게서 인상깊었던 사건은 그녀가 가져온 전염성 불면증이다. 시간 부족을 해결한 수 있으니 오히려 반갑다는 불면증의 장점 부각은 곧 인간 조건의 황폐화라는 치명적인 본모습에 자리를 내준다. 불면 상태에 익숙해지고 추억에 대한 기억, 사물의 이름과 관념,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잊고 백치 상태에 이르는 병의 과정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 두렵기 그지없는 것이다.(76p) 그들이 잠을 자고 싶어 시도하는 피곤해지기 수법을 표현한 길고 긴 한 문장(79p)은 무척 설득력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작가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한 번 더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일이!’ 줄을 쳐 표를 하면서 읽어 나가고, 그 빈도가 점점 높아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읽기를 멈추고 감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게 한다. 그 정점에 호세 아르까디오의 미스테리한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210p) 침실에서 들린 총소리 이후 한 줄기 피의 흐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서 되 짚어 피의 근원으로 따라 올라오던 어머니 우르슐라의 한 문장 행적이 있다. 이와 버금가는 장면은 의사가 표시해준 심장위치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스스로 총으로 쐈음에도 대령이 위험에서 벗어났음을 알리던 때다. 이건 내 걸작품이죠. 몸의 치명적인 곳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총알이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부위였어요.(278p)“ 의사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어려서부터 미래를 내다보던 영민한 소년이었고 아내를 사랑해 시를 짓던 아르까디오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부터 다른 사람이 된다. 죽기 위해 심장에 원을 그렸던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이제 땅바닥에 분필로 원을 그리고 아무도 들이지 않고자 한다. 고통을 감내하던 그는 황금물고기를 만들던 은신처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고 후에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콜롬비아 역사상 최대 비극인 바나나 대학살을 모티브 삼은 사건의 트라우마로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다.

 

아마란따는 문제적 인물이었을까? 도대체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녀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남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던(308p)’ 우르슐라는 아마란따를 꿰뚫어 봄으로 독자에게까지 그녀를 이해시킨다. 시력을 잃어가는 우르슐라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로 삼은 채 특별한 통찰력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시력을 잃었을 때 비로소 남편에 대해서, 자녀들에 대해서 명확히 보게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우르슐라는 아마란따에 대해 복수의 의지 때문도, 고통에서 비롯된 심술 때문도 아니고 늘 지니고 있던 비이성적 두려움이 그런 행동을 불렀음을 밝힌다.(276p) 아마란따는 죽는 순간까지 내적인 성장을 지속한다. 사랑과 증오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때늦은 성찰에 안타까와하기도 하고, 메메의 태도에서 젊을 때의 자신을 발견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가슴 아픈 인물 중 호세 아르까디오가 삘라르 떼르네라에게서 낳은 아르까디오가 있다. ‘처음부터 잃어버린 아이였으며, ‘외롭고 겁에 질려있던 아이였고(179p), 비밀을 간직한 채 간절하게 애쓰던 아이로 제복과 폭력만이 그에게 위안으로 남았을 뿐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된 어린시절이 그에게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일생의 불행이자 방아쇠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깨달음이 아쉬울 뿐이다.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을 사실은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감정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집안 식구들을 생각했고, 자기 삶을 냉정하게 결산해 보고 있었다.(191p)”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 흐르는 듯 이어지는 문장 때문일 것이다. 인물에서 인물로 이야기 축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데,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서술함으로 한껏 빠져들게 된다. 시간변조와 묘사가 유려하기에 쉬어갈 틈 없이 몇 번이고 가계도를 펼치며 읽어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꽤나 긴 호흡의 문장들이 눈에 띄는데 남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향한 페르난다의 끝없는 진심, 그 속내를 보이는 부분에서는 2182쪽부터 186쪽까지 중단없는 한 문장으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인간 심리를 투명하게 들여다 보는 듯 하다. 마꼰도라는 격리된 유토피아에서 가족을 번성시키던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작품의 종반을 향할수록 한 사람씩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마지막을 맞는다.

 

시간은 그렇게 원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고,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과거가 됨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겠다는,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반복해서 이름을 물려주는 행동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제로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해로운 습관이 새로운 혼란의 원인을 제공했다(2217p)”는 것처럼 페르난다의 명명법은 문제해결을 애초에 가로막는다. 시간 역시 장애와 사고를 겪으며, 그래서 시간이 파편화될 수 있고, 방 하나에 영원화된 파편 하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사실(2220p)”을 말하며 편협하고 단정적인 시선이 시간을 얼마나 왜곡하거나 한정시키는지 묻는다.

 

자신이 너무 늙고, 너무 쇠진되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낀 그녀는 가장 나빴던 시절로 기억되는 것까지 그리워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복도에 있는 오레가노의 진한 향기와, 해질 무렵 장미나무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짐승 같은 성질까지도 얼마나 필요했던 것인가를 깨달았다.(2241p)” 아름다운 문장으로 깨달음을 노래한다. 가문의 백년이 두 번 반복할 수 없다고 분명히 하는 대미에 이르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길고도 찰나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향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너무도 마술적이고 극적임에도 날카로운 진실을 아프게 내어 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다시 적어보고 싶다.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323p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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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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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오라시오 키로가/문학동네)”, 직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이다. 오라시오 키로가는 바스콘셀로스,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 쉽게 떠오르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과는 달리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모파상, , 체호프의 작품과 함께 근대 단편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321p)니 그가 들려줄 이야기에 한껏 기대하게 된다. 1917년 출간되어 한 세기를 지나온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열 다섯 편의 단편과 부록으로 세 작품을 더해 총 열 여덟 편을 현대의 독자에게 선물한다. 단편의 제목들 역시 범상치 않고 과연 이렇게 모골이 송연한 타이틀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책을 읽는 내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남미 깊은 원시의 땅을 문장으로, 또 분위기로 밟아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외알 다이아몬드고독한 남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엘 솔리타리오에는 병약하고 말수 적고 우유부단한 보석세공사인 남편 카심과 고객을 위한 보석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끝없는 불만으로 남편을 지치게 하는 아내 마리아가 나온다. 아내의 무리한 요청은 계속되다 하지 말아야 할 말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50p)"이라는 한계점을 훌쩍 넘어버린다. 스스로가 만든 드라마에 빠지듯이 가속 패달을 밟으며 둘 사이는 아슬아슬 관계가 지속된다. 그러다 맞는 급격한 결말이 더 놀아운 것은 우유부단한을 비롯한 남편을 묘사하던 여러 수식어와는 꽤나 대치되는 행동 때문이다. 때론 일방적이기도 한 부부간의 대화는 작품 속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성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배려나 이해의 여지 없는 관계를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없었는지, 얼마나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작가는 군더더기 없는 실체로 세공해낸다.

 

기이함은 목 잘린 닭에서 정점을 맞는다. 마시니페라스 부부에게는 아이가 넷 있었는데 모두 백치였다.(73p)“로 시작하는 가족의 비극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설마하는 불안한 예감을 품은채 외면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자기 몸으로 낳은 짐승 같은 자식 넷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부부는 그 모든 운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열등한 존재의 고유한 특성이다.(77p)“ 인간이라는 열등한 존재의 행태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려내는 파국. 피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맞닥뜨리고 마는 결말에 이르면 이런 글을 쓰게 한 작가의 삶이 자못 궁금해진다. 희망이 사라질 때 남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이름, 다른 호칭을 사용함으로 적대감을 공고히 하고, 상처주는 의도적 행위로 잔인한 쾌감을 느끼게 되기까지의 일련의 선을 넘는과정, 감정의 변이는 낯설지 않다. 키로가의 작품이 충격을 던지는 이유는 포장하거나 숨겨둔 내면의 적나라한 민낯을 가차없이 드러내는데 있을 것이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서 죽음은 여러 모양으로 그려진다. 열대 밀림 속 미지의 공간에서 독사에 물리고는 작품이 끝나도록 강을 표류하기도, 노동 중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면서 치료는커녕 고용주에 쫒기기도,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홀로 공격을 받기도, 고통을 중독으로 마비시키려다 종말을 맞기도 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포와 두려움도 있지만 무력감과 체념의 색채가 짙어 더 슬픔을 자아낸다. 거기에 어떻게 해볼 도리 없는 햇빛, 뜨거운 날씨, 끝없는 폭우 등과 여러 번 등장했던 파라나강의 물살은 인간의 의지를 무너뜨린다. 자신들의 삶에서 예루살렘이자 골고다와 다름없는 밀림의 수도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150p)“ 인간의 욕심대로 재단하고 취하고 싶다는 이기심, 그런 접근은 반복해서 차단당한다. 무심해서 더 잔혹한 열대의 공간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주인공인 셈이다. 앞으로 닥쳐올 끔찍한 증상의 전조(159p)”, 상황은 오히려 급속하게 악화될 기미(179p)”등의 언급은 그때마다 긴장감을 더한다. 그나마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아름다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해설을 통해 비로소 작가에게 한 발 다가설 수 있었다. 살아가는 내내 죽음과 너무도 가까왔던 그의 일생이 오히려 어떤 작품보다 더 소설같다. 죽음에 스스로를 내주기까지 글쓰기, 기록하기는 작가의 유일한 호흡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단 한 줄에 삶의 강렬한 인상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문학적 모토였다.(333p)" 드러나 있음에도 숨은 의미, 감추어진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색을 보여주는 문장은 후끈한 열기와 물소리를 들려주다가도 돌연 감정이 부대끼고 미묘한 심리에 날서는 현실의 관계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조금 더 지혜롭기를 바라며 작가의 통찰을 얼만큼이나 내 것으로 하느냐가 관건이다. 100년이 지나 키로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친근함과는 여전히 멀지만 상당히 매력적인게 사실이다. 원시에 가까운 혹독한 배경이 인간 관계의 조건, 인간 생존의 조건을 더 선명히 부각시킨다는 점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100미터 높이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파라나강은 거대한 구렁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강변 위쪽으로는 시커먼 숲이었다. 전후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음산한 장벽뿐인데다, 그 한가운데에는 쉴새없이 질퍽한 거품을 일으키는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면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풍경 속에는 죽음과도 같은 정적만이 무겁게 흘렀다. 그러나 해질 무렵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깃들자, 그곳만의 장엄한 모습이 되살아났다.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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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보카 어원편 + 미니 암기장 & 워크북 세트 - 어원으로 줄줄이 쉽게 외워지는 영단어│수능·내신 문제 술술 풀리는 기출 어휘 총정리│단어의 뜻이 단 번에 이해되는 그림설명
해커스어학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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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교재로 유명해 자주 선택하곤 했던 해커스 어학 연구소에서 해커스 보카 어원편을 출간했네요. 수능과 내신을 대비할 수 있는 기출 어휘를 담았다는 문구에 고등학생 아이를 생각하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년 구분이 가장 없는 과목 중 하나로 영어를 꼽는데 수능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어휘를 습득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어법과 문법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유형 분석이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휘력이 필수적이라고 무조건적인 암기에 매달린다면 이 또한 투자 시간 대비 능률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해커스 보카 어원편은 시작하기에 앞서 맞춤 학습플랜을 제공합니다. 자신의 공부 스타일에 따라 네 가지 틀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학습 및 복습 분량을 표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면 세 개의 파트에서 접두사, 어근, 접미사 순으로 어원을 따라가며 공부하게 되네요. 하루 두 장 반에서 세 장 분량은 시각적으로 정렬이 잘 되었기에 매일의 계획을 체크해 나갈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제와 핵심어원, 어원설명 뿐 아니라 수능 기출 예문을 담고 있어서 활용도와 실전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그림 설명입니다. 어원을 이미지로 단순화해 보여주기에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원으로 줄줄이까지 꼼꼼히 공부하다보면 어휘량은 자연스럽게 늘어나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교재 후반에 핵심 다의어와 핵심 혼동어휘까지 살펴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별도의 워크북은 매일의 학습내용을 체크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으며 가림판 기능이 있는 미니북은 이동시 편리하게 학습할 수 있을 것입니다. QR코드로 원어민 음성을 들으며 반복한다면 어느 순간 어휘 실력도 늘어있을 것 같네요. 좋은 교재를 만나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내것으로 하는 반복 학습이 결국 필요할텐데 이런 목적으로는 안성맞춤인 교재라고 생각됩니다.

 

*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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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블랙독 - 내 안의 우울과 이별하기
매튜 존스톤 지음, 채정호 옮김 / 생각속의집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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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존스톤의 굿바이 블랙독(채정호옮김/생각속의집)”내 안의 우울과 이별하기라는 부제의 심리 그림책입니다. 화이트와 블랙의 대비가 깔끔한 책의 표지는 바닥에 웅크려 앉은 사람과 이를 주시하고 있는 커다란 개의 실루엣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모습으로 앉아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면서 동시에 어떤 마음일지 알 것도 같습니다. 내가 저런 마음이었을 때, 그때가 떠오르면서요. 서울성모 정신건강의학과의 채정호 교수님이 번역과 후기를 쓰셨기에 작품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뿐 아니라 어떤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게 됩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9·11 테러사건이 집필 동기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인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짧다는 교훈은 그를 움직이게 했고 어느 날 4시간만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니 18년 넘게 고통받던 블랙독을 스스로 직면하고 풀어놓는 순간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우울증과 블랙독을 처음으로 연관 지은 작가는 새뮤얼 존슨이었고 이 비유를 대중화 시킨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라고 합니다.(8p) 블랙독이라는 상징을 사용함으로 만남, 대면, 화해로 이어지는 세 개의 장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십 여년의 고통이라면 할 말이 흘러 넘칠 것 같은데 저자는 예측 가능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쉽고 일상적인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임에도 블랙독과 함께 사는 날들을 공감하게 합니다. 동시에 삽화는 특별한 빛을 발하는데 짧은 텍스트를 몇 배로 보강하는 효과를 냅니다. 삽화가 글을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서 그림만 한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어지곤 하거든요. 주인공이 겪는 두려움, 슬픔, 괴로움, 무기력함, 소외감, 분노, 자포자기, 결단...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림 한 컷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블랙독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68p)" 이토록 많은 블랙독들이라니! 사람은 누구나 크거나 작거나 여러 생김새, 여러 덩치의 블랙독을 데리고 살고 있구나,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쑤욱 내려가며 편안해지니 이상한 일이지요? 블랙독을 길들이는 방법들로 기분 기록표를 작성해볼 것을 권합니다. 치유글쓰기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이나 기호로 표해도 된다고 하니 시작하고 싶어집니다. 첫 장과 마지막 장 주인공의 표정을 비교할때 안도하며 미소짓게 되네요. 긴 시간의 고통을 견뎌내고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만들어 준 작가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혼의 비타민 한 권입니다.

(*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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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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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민은영옮김/문학동네)”의 작가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의 국민 작가이자 우리 시대의 체호프라 찬사를 받고 있다. 여성으로서 여성의 삶을 그려온 먼로의 작품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임에도 이토록 익숙하게 느껴질까 싶은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단편 소설이고 수많은 수상은 노벨문학상까지 이어진 반면 2012년 출간한 디어 라이프를 마지막 작품이라고 선언한 만큼 먼로 작품 읽기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중년 여성이 되기까지 주인공 로즈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나 변곡점을 열 개의 단편으로 묶었다. 온타리오 주 핸레티에 있는 상점 뒤편, 사회구조의 상층부를 노동자부터 채워나가는 타운의 가난한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첫 이야기 장엄한 매질에서 마을의 불안하고 피폐한 분위기와 유년의 로즈를 만나게 된다. 로즈는 플로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든, 자신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 그 자체이며,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로 멈출 수 없다.(34p)"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면서도 속수무책일 때의 무력감과 부조리는 간파당하기 바라는 의도와 노골적인 응대로 이어지며 상처를 남긴다. 갈등의 절정으로 향하는 단계와 마찬가지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도 일종의 패턴을 갖는다. 구타에서 풀려나 자신이 취할 가능한 태도를 생각하다 위로의 눈길을 받고 예쁘게 차려진 쟁반 앞에서 갈등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연속적인 장면들. 이와 같은 심리 묘사는 숨소리 마저 그려 넣은 것 같은 극사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 정밀하기까지 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의 미세한 움직임을 그대로 활자화함으로 공감케하는 동시에 감정과 상황을 대상화하고 관찰하게끔 만든다.

 

사춘기의 혼란스러움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사람은, 이끌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충격받고 까발려진 그녀의 감정은, 비록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시들면서 가장자리부터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플로는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열풍이었다.(71p)" 돌아오는 것은 비아냥과 악의 정도. 그녀는 우는 소리를 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아-공부라던지, 또 공부라던지-자력 탈출을 시도한다. "조심해라, 너무 똑똑해지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88p)"라는 조언이 일반화되던 시간, 공간에서.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중략)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144p)" 피를 팔아서 스웨터를 사야 하는 로즈에게 이런 간극은 좁히기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가난에 대해서 오만에 대해서 작가는 일말의 치장도 없이 분명하게 서술하는데 그 정확함이 위안을 준다. 노력으로 성취 불가능한 영역을 깨닫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는 정말로 패트릭을 존중했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중하지 않았고, 정말로 그를 사랑했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다. (195p)" 시간이 지나서 여전히 배우고 있다.

 

특권을 누린다는 느낌이 좋아서, 그 순간의 햇살이 너무 환해서, 그녀는 그것이 현명하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297p)"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많고,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된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 ‘더 잘할 수 있었는데의 굴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사이먼의 행운에서 이 문장 이후, ‘기다림, 기대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보고서가 펼쳐진다. 사이먼을 고리로 바꿔 거기에 온 희망을 걸어놓은 그녀(301p)"의 스스로에게조차 내색하지 못하는 절망과 고통, 단념과 슬픔, 인정과 회복, 사랑과 세상의 관계를 깨닫는 부분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사랑은 세상을 지워버린다고, 사랑이 잘되어갈 때만이 아니라 망가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308p)"

 

감정적으로 매몰될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구원의 실마리가 되어 준 것은 그녀가 가진 관찰자적 시선이지 않았을까. 어릴때부터 시작된 사건의 기록자 역할(81p)' 말이다. 그녀는 배우고 있었다. 일 년에 두세 번씩 학교를 분열시켰던 큰 싸움을 감당하는 법을 배웠다. (중략) 아무리 겁을 내고 소심하게 굴더라도, 그 어떤 충격과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해도, 생존법을 배우는 것은 비참하게 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기엔 너무 흥미롭다.(58p)" 아름다운 문장으로 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던 감정, 숙고할 문제들, 숨겨있던 진실, 파장을 감내해야 하는 결과들과 선택하기 어려운 반응 등 로즈의 시간을 잠시나마 함께 통과한 듯 하다. 결국 그녀는 모든 실패와 고단함, 허무해 보이는 귀향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깨달음의 연속인,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낸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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