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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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꿈처럼 시작되고 끝났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토록 심오한 이야기를 이처럼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다니 놀라워하며 10, 2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읽어서 더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백년의 고독(민음사/조구호 옮김)”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23년 동안 생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해 19676월 출간했으며, 각종 문학상을 거쳐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322p). 마르케스가 시도하고 완성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역자는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324p)’라고 설명한다. 마술적 사실주의 형상화에 천일야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국적인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6대에 걸친 이야기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펼쳐진다. 원시와 이상이 결합된 마꼰도라는 공간적 배경은 가문의 선조격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 의해 세워지고 질곡의 세월, 영원과 맞닿아 보이는 백 년을 견디어 내고 문을 닫듯이 마지막을 맞는다. 시간과 공간, 인물이 하나의 거대한 운명으로 완벽하게 녹아드는 중 각 인물의 서사는 개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상징을 드러낸다. 옳은 선택을 하고 운명을 벗어나려는 시도와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기력과 체념이 동일한 무게로 맞서고 있다.

 

사랑보다 더 끈끈한 연대의식, 즉 공통의 양심의 가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39p)’ 무서운 전례를 반복할 가능성에 두려워하면서도 가족을 이루고, 조상의 이름을 대를 이어 물려주는 부엔디아 가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살아간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슐라 이구아란의 세 자녀 호세 아르까디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아마란따 그리고 양녀로 들인 레베까가 이루는 두 번째 세대가 가족사의 중심을 잡고 있다. 레베까에게서 인상깊었던 사건은 그녀가 가져온 전염성 불면증이다. 시간 부족을 해결한 수 있으니 오히려 반갑다는 불면증의 장점 부각은 곧 인간 조건의 황폐화라는 치명적인 본모습에 자리를 내준다. 불면 상태에 익숙해지고 추억에 대한 기억, 사물의 이름과 관념,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잊고 백치 상태에 이르는 병의 과정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 두렵기 그지없는 것이다.(76p) 그들이 잠을 자고 싶어 시도하는 피곤해지기 수법을 표현한 길고 긴 한 문장(79p)은 무척 설득력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작가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한 번 더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일이!’ 줄을 쳐 표를 하면서 읽어 나가고, 그 빈도가 점점 높아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읽기를 멈추고 감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게 한다. 그 정점에 호세 아르까디오의 미스테리한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210p) 침실에서 들린 총소리 이후 한 줄기 피의 흐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서 되 짚어 피의 근원으로 따라 올라오던 어머니 우르슐라의 한 문장 행적이 있다. 이와 버금가는 장면은 의사가 표시해준 심장위치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스스로 총으로 쐈음에도 대령이 위험에서 벗어났음을 알리던 때다. 이건 내 걸작품이죠. 몸의 치명적인 곳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총알이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부위였어요.(278p)“ 의사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어려서부터 미래를 내다보던 영민한 소년이었고 아내를 사랑해 시를 짓던 아르까디오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부터 다른 사람이 된다. 죽기 위해 심장에 원을 그렸던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이제 땅바닥에 분필로 원을 그리고 아무도 들이지 않고자 한다. 고통을 감내하던 그는 황금물고기를 만들던 은신처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고 후에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콜롬비아 역사상 최대 비극인 바나나 대학살을 모티브 삼은 사건의 트라우마로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다.

 

아마란따는 문제적 인물이었을까? 도대체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녀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남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던(308p)’ 우르슐라는 아마란따를 꿰뚫어 봄으로 독자에게까지 그녀를 이해시킨다. 시력을 잃어가는 우르슐라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로 삼은 채 특별한 통찰력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시력을 잃었을 때 비로소 남편에 대해서, 자녀들에 대해서 명확히 보게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우르슐라는 아마란따에 대해 복수의 의지 때문도, 고통에서 비롯된 심술 때문도 아니고 늘 지니고 있던 비이성적 두려움이 그런 행동을 불렀음을 밝힌다.(276p) 아마란따는 죽는 순간까지 내적인 성장을 지속한다. 사랑과 증오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때늦은 성찰에 안타까와하기도 하고, 메메의 태도에서 젊을 때의 자신을 발견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가슴 아픈 인물 중 호세 아르까디오가 삘라르 떼르네라에게서 낳은 아르까디오가 있다. ‘처음부터 잃어버린 아이였으며, ‘외롭고 겁에 질려있던 아이였고(179p), 비밀을 간직한 채 간절하게 애쓰던 아이로 제복과 폭력만이 그에게 위안으로 남았을 뿐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된 어린시절이 그에게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일생의 불행이자 방아쇠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깨달음이 아쉬울 뿐이다.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을 사실은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감정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집안 식구들을 생각했고, 자기 삶을 냉정하게 결산해 보고 있었다.(191p)”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 흐르는 듯 이어지는 문장 때문일 것이다. 인물에서 인물로 이야기 축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데,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서술함으로 한껏 빠져들게 된다. 시간변조와 묘사가 유려하기에 쉬어갈 틈 없이 몇 번이고 가계도를 펼치며 읽어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꽤나 긴 호흡의 문장들이 눈에 띄는데 남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향한 페르난다의 끝없는 진심, 그 속내를 보이는 부분에서는 2182쪽부터 186쪽까지 중단없는 한 문장으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인간 심리를 투명하게 들여다 보는 듯 하다. 마꼰도라는 격리된 유토피아에서 가족을 번성시키던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작품의 종반을 향할수록 한 사람씩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마지막을 맞는다.

 

시간은 그렇게 원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고,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과거가 됨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겠다는,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반복해서 이름을 물려주는 행동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제로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해로운 습관이 새로운 혼란의 원인을 제공했다(2217p)”는 것처럼 페르난다의 명명법은 문제해결을 애초에 가로막는다. 시간 역시 장애와 사고를 겪으며, 그래서 시간이 파편화될 수 있고, 방 하나에 영원화된 파편 하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사실(2220p)”을 말하며 편협하고 단정적인 시선이 시간을 얼마나 왜곡하거나 한정시키는지 묻는다.

 

자신이 너무 늙고, 너무 쇠진되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낀 그녀는 가장 나빴던 시절로 기억되는 것까지 그리워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복도에 있는 오레가노의 진한 향기와, 해질 무렵 장미나무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짐승 같은 성질까지도 얼마나 필요했던 것인가를 깨달았다.(2241p)” 아름다운 문장으로 깨달음을 노래한다. 가문의 백년이 두 번 반복할 수 없다고 분명히 하는 대미에 이르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길고도 찰나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향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너무도 마술적이고 극적임에도 날카로운 진실을 아프게 내어 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다시 적어보고 싶다.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323p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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