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도전 요리왕 6 : 대한민국 1 - 음식으로 맛보는 세계 역사 문화 체험 백종원의 도전 요리왕 6
백종원.남지은 지음, 이정태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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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도전 요리왕/위즈덤하우스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고유한 요리에 도전하는 동시에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시리즈 책입니다. 벌써 일본, 중국, 이탈리아, 미국, 태국까지 다섯 나라를 거쳤고 드디어 우리 대한민국 편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백종원 선생님과 정우솔 선생님의 인솔 하에 탐방 및 요리 대결을 펼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역사에 대해 한 장으로 정리하는 시간도 갖네요.

 

총 다섯 번의 대결이 펼쳐지는데 우리나라 대표 요리로 김밥, 김치, 국수, 비빔밥, 고기 요리가 주제입니다. 대결에 앞서 친구들은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자신만의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 탐색하고 배우고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이 과정은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그 안에서 열정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자연스레 전달하네요. 자신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선생님의 평가를 들으면서 친구들은 성장하고 독자들도 중요한 요리 비법을 배우게 됩니다.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음식 지도였습니다. 전국 김치 지도, 전국 국수 지도, 비빔밥 지도까지 지역별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생활상도 추측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입니다. 국수 지도와 비빔밥 지도는 그릇에 담아낸 모양새까지 볼 수 있어 맛보지 못했던 요리도 예상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조선시대 궁중부엌이라 할 수 있는 소주방이 외소주방, 내소주방, 생물방으로 나뉘고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점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만화 형식의 음식 문화 시리즈는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대화체가 살아있고 요리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먹음직스럽고 정성 가득한 식탁까지 시각적으로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선생님의 친근한 목소리가 오디오로 재생되는 듯한 착각도 큰 즐거움입니다. 나라면 어떤 음식을 만들어볼까 자꾸 상상하게 되고 과연 대한민국 2편에서 어떤 대표 요리가 등장할지 기대됩니다. 이미 출간된 다른 나라편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어요. 책으로 하는 세계여행에 안성맞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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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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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1831)/문학동네』은 골짜기의 백합이나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등의 작품에 비해 낯선 제목이었다. 국내 초역이다 보니 우연히라도 여러 모양으로 스쳐지날 기회도 없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책의 제목은 독특한 이미지를 품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인간과 세계 이해라는 뚜렷한 목표하에 큰 틀을 기획, 설계함으로 독자적인 유기체로 기능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소설 작품 전체에 「인간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450p)

 

 

「인간극」은 인간사의 여러 특수한 면모를 탐구, 결과의 원인 규명, 원인 분석, 보편적 원칙 정립하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귀납적 프로그램임을 밝히는데(450p), 그래서인지 의도된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조사 연구 보고서, 일종의 논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 개의 하위 연구와 하위 장면들이 포진한다는 점에 이르면 “나귀 가죽”의 중요도나 기여를 작가 의도에 최대한 근접시켜 전체 작품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과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발자크는 그만큼 치열했던 것 같다.

 

 

초판 서문에서는 발자크의 문학론과 작가론을 눈여겨 볼 수 있다. 관찰과 표현, 관찰의 재능과 형태 부여의 재능, 이 두 가지 결이 다른 재능에서 더 나아가 천재를 “손쉽게 정신을 통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람(18p)”이라고 정의내릴 때 이는 작가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 중 하나였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1830년 7월 혁명 직후의 파리가 작품의 중요한 시공간적 배경이다. “16세기가 웃으면서 파괴를 준비했다면, 우리의 세기는 폐허 한가운데서 웃고 있다(95p)”며 깊은 심연의 종잡을 수 없는 현재를 불안과 불신의 눈으로 통과하고 있다. 소설의 구조는 단순 명확하다. ‘부적-무정한 여인-죽음의 고뇌’로 연결되는 총 3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는데 그래서 이 안에 담긴 의미는 더 두드러지고 강조된다.

 

 

모든 것을 잃고 죽기를 각오한 청년 라파엘에게 나귀 가죽은 거절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와 취약한 상대를 부지불식중에 장악한다. “자네가 내게 애원하도록 강요하지 않고도~(66p)”로 시작하는 노인의 제안을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명심할 단서가 붙는다. “원하라, 그러면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소망은 그대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70p)” 이로써 비극의 서막은 올랐다.

 

 

나귀 가죽을 권하는 자그마한 노인, 환영 같고 유령 같은 노인, 키가 크고 깡마른 노인은 늙은 정령으로까지 호칭이 변화한다. 그가 구사하는 현란한 만연체의 문장은 중독성 있고 날카로운 논리를 전개한다. 생명을 소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바람과 행함으로 규정하고 이는 심장이나 감각이 담당하지만 두뇌, 보는 것, 안다는 것, 생각은 ‘모든 보물 상자의 열쇠’, ‘근심 걱정 일절 없는 수전노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73p)’이상적인 대척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후자의 안전을 자랑하며 라파엘에게는 위험한 마법을 권한다.

 

 

이미 작동을 시작한 나귀 가죽은 그를 자연스럽게 연회 모임으로 데려가고 죽음의 목전에서 마법의 약속을 얻은 라파엘은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의 관계, 가난을 벗삼아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공부, 생캉텡의 하숙집에서 만난, 살아있는 양심 자체였던 소녀 폴린-그녀가 라파엘의 종말을 예견하는 아이러니(256p)-, 백작부인 페도라-너무도 많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어서 오히려 설명 불가능한 그런 존재인 페도라(249p)-를 향한 집착과 상실로 자포자기식 방황에 빠져 죽기를 각오한 순간까지 회상한다.

 

 

나귀 가죽은 무엇이었을까? 약속의 광휘가 기쁨이었던 순간은 거의 찰나에 가깝다. “세상은 그의 것이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여행자처럼 그에게는 갈증을 풀어줄 물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목숨은 몇 모금의 물이 남아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욕망이 이루어질 때마다 앞으로 살날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귀 가죽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291p)”

 

 

재산은 무례해도 된다는 면허증, 황금의 권능, 백만장자들에게는 단두대도 사형집행인도 없다(202p)는 말들은 이미 공허할 뿐이다. 라파엘은 드 발랑탱 후작 나으리가 되었지만 죽음은 속도를 낸다. 3부는 본격적인 죽음과의 사투다. 소원 들어주는 보물인 나귀 가죽은 가차없이 대가를 취한다. 바로 라파엘의 생명으로. 가죽이 줄어들어 테두리선 안쪽으로 보이는 빈 공간은 심장을 얼어붙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삶의 유일한 목표는 나귀가죽을 보존하는 일이 된다. 마음의 소원 때문에 생명이 사그라지고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만 소원의 결과물인 부가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너무도 비이성적인 현실 앞에서 요즘 같은 시대에 이 무슨 일인가 라파엘은 한탄하면서 살아있음에도 온전히 살아있지 못한 시간을 보낸다. 인간 최고의 지성, 최고의 방편을 찾아 헤맨다. 라파엘의 여정과 그 안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인간의 속성, 사회의 구조는 비수처럼 그를 찌른다. “돈이나 권력이 없다면 육체나 정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의 불가촉천민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사막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니. 만일 그 경계를 넘어서면 그는 도처에서 혹독한 겨울을, 냉랭한 시선과 태도를, 냉랭한 말과 심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392p)” 그리고 그곳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열망의 대상이었던 페도라를 발견한다. 공감도 동정도 모르던 상류사회의 비정한 도덕 자체였던 그녀의 정체를.

 

 

작가의 신랄한 현실 묘사는 무서울 정도이지만 과장되어 있지 않다. 살아 남기 위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자신 사이에 무시라는 장막을 치는 라파엘과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무감각, 자연 깊은 곳으로의 피신까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비단 라파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는 문득 힘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그 힘이 막대하다 하더라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홀은 어린아이에게는 한갓 장난감일 뿐이지만 리슐리외에게는 도끼요, 나폴레옹에게는 세상을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인 것이다. 힘은 꼭 우리만큼의 크기를 가지며 그래서 큰 사람만을 더 키우는 법이다. 라파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409p)

 

 

“나는 욕망한다. 고로 나는 죽어간다”, 이 거래를 중단시키겠다는 의지, 원상 복귀 또는 약속의 파기를 위한 안간힘, 두려움 앞의 비참한 인간 조건 등이 파멸해가는 라파엘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었던 라파엘(308p)이, 그래서 식물이 되고 자동인형이 되어 삶을 포기한 채라도 살고 싶었던 라파엘의 심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머릿 속에 백과사전을 품고 미세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생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고 남긴 것이 평생 작가를 옥죄었던 고통의 기록이기도 했다는 점이 소설의 허구적 장치마저 현실 그 자체로 여겨지게 만든다.

 

 

소원 들어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요술 지팡이나 램프, 별가루 날리는 영롱한 그 무엇보다는 외형도 감촉도 자유자재로 바꾸며 위협하는 나귀 가죽에 가까울 것같다. 페도라와 폴린의 상징을 비롯해 당신은 어떤가, 무엇을 원하고 선택하고 지불하는가 질문하는 작품이고 여전히 질문이 남는 작품이다. 한시적 인간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나귀 가죽을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까지 시간이라 불러왔지만 실은 모든 영역에 두루 적용되기에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한대에서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 이 찰나 같은 인생은 우리를 가련하게 만든다. 하여 우리는 폐허로 변한 그 숱한 지난 세계 밑에 깔려 자문하나니, 우리의 영광, 우리의 증오, 우리의 사랑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훗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한 개 점이 될 뿐인데 삶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현재에서 존재 근거를 잃은 우리는 하인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백작 부인께서 나리를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고 전할 때까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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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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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은 연주회에서 들었던 바흐의 푸가가 주요 집필 동기로 작용해 1947년 초판 발행 후 음악, 연극,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하게 변신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152p) 대중 뿐 아니라 명사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며 전무후무한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로 저자와 제목이 단순하게 표지를 채우는데 반해 띠지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1928년에 찍은 레몽 크노의 연속사진이라는 설명을 본 후, 그보다는 뒤쪽의 사람은 글을 쓸수록 달필가가 된다.”는 인용문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격려로 다가오면서 용감하게 책장을 넘긴다.

 

문체 연습은 본문과 해제가 거의 동일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해제가 탄탄하게 실려있다. 늘 차례를 주의 깊게 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첫 번째 글 약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세 네 편이 넘어가니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주가 없음에 불안해하며 사전을 찾아 빈 공간에 용어설명을 적어 넣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읽던 도중에 해제를 발견했다. 이제 치밀한 해제가 있으니 안심하고 읽어나가도 된다.

 

기시감은 스토리텔링 연습(매트 매든/클라우드 나인)”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읽고 이렇게 매력적인 책이 있다니 감탄하면서 중학생 친구들 논술에 활용했었다. 친구들아, 마법같지 않니? 제목을 줄테니 내용을 각자 만들어보자. 여덟 컷 만화 형식이라 그림이 많잖아? 하며 함께 탁월한 발상과 표현을 신기해 했었다. 다시 펴보니 이 책은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에서 영감을 받았다.(스토리텔링 연습, 4p)”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아, 레몽 크노라는 훌륭한 분이 계셨었구나 하고는 지나간 것이 기억난다.

 

스토리텔링 연습에서는 조작되지 않은 기준점이 되는 버전을 템플릿이라 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기준글을 찾아야 한다 생각했고 당연히 첫 글 약기라 여겼다. 해제를 보니 반은 맞았다. “약기와 더불어 객관적 이야기가 토대이야기이자 저본이라 밝히고 있다.(183p) 토대 글을 가지고 주어진 각 제목에 최대한 근접하게 써보고 작가의 글과 비교하는 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고 시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속출했다. 일단 주어진 글을 이해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할 수는 있겠다.

 

뒤가 사라졌다’, ‘고유명사’, ‘고문투로’, ‘집합론’, ‘수학적으로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웃음을 참으며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낭독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번역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자의 주관적 해석이 많은 부분 스며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내내 들었는데 해제에서 궁금증은 대부분 풀린다. 원제와 원제의 의미, 번역어 선택 이유 뿐 아니라 번역의 의도와 착안, 진행방식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특별한 주제는 특별한 전문가의 검증도 있었기에 신뢰를 더한다. 어쩔 수 없이 원어로 읽을 독자가 마냥 부러웠다. 그래도 가장 즐겁게 읽은 곳은 역자 후기격인 번역가와 편집자였다. “문체 연습의 어투를 살려 , , 눈물, 으쓱함가득한 번역의 시간’, 몰입의 지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책을 한 번 본 후 과연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계속되는 질문, 해야 할 연습에 내내 적응해 나가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한 번을 살펴보고 나니 띠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음악으로 접한 변주의 힌트를 그는 글은 물론이고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떨지 말고 이렇게 해봐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크노가 펼쳐 낸 저 소박하고 수공업적이며 재미난아흔아홉 개의 놀이가 문체 연습에 바글거린다.(159p)” 유일한 정답은 없고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아마도 뜻밖에 만난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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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기예르모 데쿠르헤즈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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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은 아르헨티나 작가 기예르모 데쿠르헤즈의 국내 소개되는 첫 작품입니다. 커다란 판형에 그림책이라기에는 꽤나 묵직한 부피감이 전해집니다. 초록 풀밭과 차 문을 열어놓은 채 화분을 내리는 듯한 여인, 또 무심코 어딘가를 응시하는 아이의 표지 그림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듦니다. 표지의 특징은 목적을 가진 어떤 활자도 없이 책날개를 온전히 표지에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를 펼쳤을 때 화면 가득한 초록 숲의 어떤 자리로 초대받아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고풍스런 벽지를 연상시키는 면지를 지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엄마, 내 친구들은 이제 휴대전화 속에만 남아 있어요.

-친구들은 네 마음속에 남아 있단다, 로렌조. 저장 용량도 마음이 휴대전화보다 훨씬 크지!“

잠시 머무르게 하는 첫 문장입니다. 이사온 새 집에서 커다란 책상을 본 로렌조는 신기해 합니다. 여기 저기 열어보던 중 발견한 노트를 펼치는 순간 책 속의 책이 시작됩니다. ‘청동 드래곤이라는 제목을 보고 예상 가능한 내용을 열심히 상상한 후 책장을 넘겼는데 상상 너머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아이들의 마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변신놀이일 수도 있지만요. 로렌조는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기로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장화와 모자입니다. 책 속의 노트는 노란 바탕으로, 현실은 초록 배경으로 차이를 주고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가 자연스럽게 왕래합니다.

 

첫 이야기에서 는 토끼였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고양이입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우연히 위험에서 구해주네요. 그런데 노트를 덮고 엄마의 심부름을 위해 가게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 낯익어요. 글로 읽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마법처럼 변주되고 로렌조는 집없는 개 휴고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공장은 조금 더 생경한 광경을 보여줍니다. “겁을 집어먹은 공장장은 달아났지만, 우린 피할 수 없었다. 둥지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일을 계속해야 했다.” 무시무시한 컨베이어 벨트와 더 이상 맞지 않는 내 연장과 어둠. 상징은 깊어집니다. “꿈의 여행자그레고리오?”를 지나면 모든 이야기의 비밀이 감동적으로 풀리고, 성장하고 살고 선물하는 인생의 아름다운 순환을 지켜보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빛나고 과정이 이미 꿈의 실현임을 말합니다.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상징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의미를 간직하기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해주는 멋진 작품입니다.

    

 

나는 누가 구해 주기를 바랐던 게 아니라, 발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다시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그는 내 안에서 다시 솟아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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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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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의 “백치(열린책들/김근식옮김)”는 그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죄와 벌” 다음에 발표한 작품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창조한 인물 중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세 인물로 죄와 벌의 소냐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 그리고 바로 백치의 미쉬낀 공작을 드는데(죄와 벌2/문학동네450p), 미쉬낀 공작이라고 확정하기 전 이름이 ‘그리스도 공작’이었다는 점에서도(946p)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치료를 위해 후원자의 도움으로 스위스에 머물던 미쉬낀 공작이 고국 러시아에 돌아와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이 관계를 맺고 각자의 목적을 향해 움직일 때의 파장과 현상을 사건의 중심인물로서, 때론 관찰자이자 중재자로서 그려보인다. 공작의 정체성이기도 한 육신의 병, 간질은 그의 약한 고리이지만 순수하고 선한 마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본능적 자기방어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를 기꺼이 내어주는 조건 없는 헌신 앞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평안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럴 수 없기에 미워지는 양가감정의 충돌을 경험한다.

 

뻬쩨르부르그 행 기차에서 세 사람은 우연히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레프 니꼴라예비치 미쉬낀 공작은 스위스에서 간질 치료를 하던 중 후원자의 죽음으로 예빤친 장군의 아내이자 유일한 공작의 먼 친척 리자베따 쁘로코피예브나를 찾아보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는 중이고 빠르펜 로고진은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에게 빠져 아버지의 돈을 탕진한 이유로 심기를 건드려 피신해 있다가 아버지 사망 소식에 유산 상속을 받기 위해,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자신의 이익을 쫓아 분주히 웃음 짓거나 등 돌리거나를 반복하는 레베제프까지 여행의 목적을 나누며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

 

유일한 친척인 리자베따 쁘로코피예브나를 만난다는 목적을 위해 예빤친 장군의 집을 찾아간 미쉬낀 공작은 장군 부인과 그의 세 딸을 만나게 되고, 그 중 집안의 우상이라고도 할 만한 막내 아글라야는 매사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관철시킴으로 미진함을 남기지 않고자 하는 성격이 눈에 띈다. 이볼긴 퇴역장군의 아들이자 예빤친 장군의 비서인 가브릴라와도 첫 대면을 한다. 미쉬낀 공작은 지병의 잦은 발작으로 거의 완전히 백치가 되었으며(49p) 사람들 또한 그를 으레히 얕보지만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공작을 다른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아끼게 된다.

 

공작의 주변에는 불안요소가 끊임없이 출현한다. 전투적 행동력에 있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드미트리를 연상시키는 로고진은 집요한 열정, 강한 소유욕으로 대변되며 일면 ‘그루셴카-드미트리’구도를 ‘나스따시야-로고진’에게서 찾아보지만 그러기에 드미트리의 순수함과 밝음을 로고진에게서 발견하기 힘들다. 여인들에게서도 물론 간극이 크다. 로고진은 질투와 적개심에 사로잡혀 숨어 헤치려는 자다. 그에 머물지 않고 급기야 몸을 드러내 헤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의 절세미모는 자신에게 독이 된다. 처음 사진을 본 미쉬낀 공작의 ‘기가 막힌 미모군요! 이 여자의 운명이 평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81p)’라는 말이 복선처럼 깔린다. 장군 부인이 이런 얼굴을 좋아하느냐 공작에게 물었을 때 그는 좋아한다 답하며 ‘이 얼굴에는······많은 고뇌가 담겨 있어요······(129p)’ 라는 이유를 댄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드미트리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생각하며 땅에 머리를 대고 절을 했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권력 있는 양육자 또쯔끼에게 키워지고 상처받음으로 그를 비롯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원하는 자들에게 복수하는 것, 나아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 것, 구원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그녀의 동력인 것 같다.

 

뻬쩨르부르크 도착 첫 날 저녁, 나스따시야는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생일파티에서 가브릴라와의 결혼 여부를 발표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양심에 반하는 자기만의 비밀을 돌아가며 털어놓는 프티죄 게임을 하는데 각각의 일화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냄으로 악한 행위까지도 놀래키는 동시에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프티죄 게임의 마지막 당사자로 나스따시야는 자신의 결혼여부를 발표한다. 나스따시야의 최선을 다한 총정리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오랜 고통을 드러내고 주변인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한다. 10만 루블을 불구덩이에 던지며 가브릴라를 시험하는 장면도 놀랍다. 그녀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으로 안식을 얻지 못한다.

 

도스또예프스끼답게 등장하는 인물이 소모적으로 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남녀 주인공 이외에도 가브릴라, 바르바라, 니콜라이 삼남매, 니콜라이의 친구인 이뽈리트, 레베제프 등의 전형을 직접 분석한다. 특히 4부 1장의 “유형적인 면에서나 성격적인 면에서 한마디로 어떤 인물이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707p)’로 시작하는 부분 부터는 심리분석과 인간 전형을 설명하며 소설 속 캐릭터의 작법과 기능까지 강의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인상 깊었던 양파 한 뿌리나 천 조 킬로미터 에피소드처럼 독자를 집중시키는 삽화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총살형 직전 사면령 번복에 ‘정말이지, 인간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42p)’라는 말로 작가의 경험을 작품 속에 각인하는데 이런 폭력이 그 순간 이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이라는 형벌일 수 있음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마리 이야기부터 레베제프가 대기근 시기에 식인을 했던 수도사와 양심의 문제, 이뽈리트의 ‘해명’과 왜곡된 감정, 종교적 논점들, ‘고도의 예술적 모조’임을 아직 모르고 매혹을 느꼈던 공작의 사교계 데뷔 장면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공작은 말한다. ”나는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아, 내가 모든 걸 표현해 낼 능력이 없음을 한탄할 따름입니다······(중략) 어린아이를 바라보세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세요.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며 사랑하고 있는 눈을 바라보세요······.(851p)“

 

 나스따시야만큼 아름답지만 상처는 없는 아글라야, 그녀는 미쉬낀 공작과 미래를 함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전개가 시작된다. 아글라야와 나스따시야의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공작의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만 한 마디를 남긴다.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나스따시야는 반드시 죽었을 겁니다.(896p)” 이정도면 여기서부터는 순조로운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오랜 시간 두려워 했던 문학 속 장면은 "죄와 벌"의 노파 살해 장면이다. 라스꼴리니코프의 회상 속에서는 더 소름끼치게 재현되었다. 그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무더운 백야의 뻬쩨르부르크, 밀실처럼 작은 방에서의 만져질 것 같은 현실적인 공포가 심장을 옥죄었다. 하지만 단순히 ‘두려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일 수는 없고 각 인물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가며 허무함과 깊은 슬픔이 함께 차오른다.

 

“공작은 갑자기 깨달았다. 이 순간과 더불어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 왔고,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으며, 반갑게 받아 쥔 이 카드가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937p)” 더 늦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해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는 문장이다. 나스따시야에게 했듯이 로고진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어 주는 미쉬낀 공작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극적 결말 앞에서 ‘왜 인간은 고통받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맹목적 자학이라거나 원래 성격이 거칠었어 라거나 그만 좀 하지, 멈출 수 있었을텐데, 너만 힘든게 아니잖아 등의 대답을 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말은 고통을 보탤 뿐이다.

 

어린시절의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어떻게든 결과를 감당하게 한다. 내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받은 상처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비극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의 첫 단추, 그 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만나게 되는 아픔을 떨치고 새로운 시간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절실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공작이라 명했던 미쉬낀 공작을 작가는 정성껏 그려낸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그리스도를 닮은 세 인물 알료샤와 소냐, 미쉬낀 공작을 불러내 보고 싶다. 알료샤와 소냐에게 엿보이는 내적 충만, 미래에 대한 기대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한다. 이에 반해 미쉬낀 공작은 가장 약한 자, 비난받는 자의 고통을 끌어안고 자신을 희생시킨다. 부활을 내포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희생 그 자체로 사랑을 실현한다. “인간이 서로에게 가하는 상처를 억제하는데 그리스도가 실패를 했듯이, 공작 역시도 실패작이다. 그러나 그는 그 상처를 자기에게 끌어들이려 하고 자신의 믿음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이미지를 안겨 주고 있다.(968p)” 책을 읽는 동안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고통받는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에게, 약함이 악함의 겉모습을 취했을 때도 감추어진 본성에 초점을 맞췄던 미쉬낀 공작의 시선을 살필 수 있었고, 그가 관계 맺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법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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