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1831)/문학동네』은 골짜기의 백합이나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등의 작품에 비해 낯선 제목이었다. 국내 초역이다 보니 우연히라도 여러 모양으로 스쳐지날 기회도 없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책의 제목은 독특한 이미지를 품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인간과 세계 이해라는 뚜렷한 목표하에 큰 틀을 기획, 설계함으로 독자적인 유기체로 기능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소설 작품 전체에 「인간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450p)

 

 

「인간극」은 인간사의 여러 특수한 면모를 탐구, 결과의 원인 규명, 원인 분석, 보편적 원칙 정립하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귀납적 프로그램임을 밝히는데(450p), 그래서인지 의도된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조사 연구 보고서, 일종의 논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 개의 하위 연구와 하위 장면들이 포진한다는 점에 이르면 “나귀 가죽”의 중요도나 기여를 작가 의도에 최대한 근접시켜 전체 작품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과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발자크는 그만큼 치열했던 것 같다.

 

 

초판 서문에서는 발자크의 문학론과 작가론을 눈여겨 볼 수 있다. 관찰과 표현, 관찰의 재능과 형태 부여의 재능, 이 두 가지 결이 다른 재능에서 더 나아가 천재를 “손쉽게 정신을 통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람(18p)”이라고 정의내릴 때 이는 작가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 중 하나였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1830년 7월 혁명 직후의 파리가 작품의 중요한 시공간적 배경이다. “16세기가 웃으면서 파괴를 준비했다면, 우리의 세기는 폐허 한가운데서 웃고 있다(95p)”며 깊은 심연의 종잡을 수 없는 현재를 불안과 불신의 눈으로 통과하고 있다. 소설의 구조는 단순 명확하다. ‘부적-무정한 여인-죽음의 고뇌’로 연결되는 총 3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는데 그래서 이 안에 담긴 의미는 더 두드러지고 강조된다.

 

 

모든 것을 잃고 죽기를 각오한 청년 라파엘에게 나귀 가죽은 거절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와 취약한 상대를 부지불식중에 장악한다. “자네가 내게 애원하도록 강요하지 않고도~(66p)”로 시작하는 노인의 제안을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명심할 단서가 붙는다. “원하라, 그러면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소망은 그대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70p)” 이로써 비극의 서막은 올랐다.

 

 

나귀 가죽을 권하는 자그마한 노인, 환영 같고 유령 같은 노인, 키가 크고 깡마른 노인은 늙은 정령으로까지 호칭이 변화한다. 그가 구사하는 현란한 만연체의 문장은 중독성 있고 날카로운 논리를 전개한다. 생명을 소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바람과 행함으로 규정하고 이는 심장이나 감각이 담당하지만 두뇌, 보는 것, 안다는 것, 생각은 ‘모든 보물 상자의 열쇠’, ‘근심 걱정 일절 없는 수전노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73p)’이상적인 대척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후자의 안전을 자랑하며 라파엘에게는 위험한 마법을 권한다.

 

 

이미 작동을 시작한 나귀 가죽은 그를 자연스럽게 연회 모임으로 데려가고 죽음의 목전에서 마법의 약속을 얻은 라파엘은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의 관계, 가난을 벗삼아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공부, 생캉텡의 하숙집에서 만난, 살아있는 양심 자체였던 소녀 폴린-그녀가 라파엘의 종말을 예견하는 아이러니(256p)-, 백작부인 페도라-너무도 많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어서 오히려 설명 불가능한 그런 존재인 페도라(249p)-를 향한 집착과 상실로 자포자기식 방황에 빠져 죽기를 각오한 순간까지 회상한다.

 

 

나귀 가죽은 무엇이었을까? 약속의 광휘가 기쁨이었던 순간은 거의 찰나에 가깝다. “세상은 그의 것이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여행자처럼 그에게는 갈증을 풀어줄 물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목숨은 몇 모금의 물이 남아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욕망이 이루어질 때마다 앞으로 살날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귀 가죽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291p)”

 

 

재산은 무례해도 된다는 면허증, 황금의 권능, 백만장자들에게는 단두대도 사형집행인도 없다(202p)는 말들은 이미 공허할 뿐이다. 라파엘은 드 발랑탱 후작 나으리가 되었지만 죽음은 속도를 낸다. 3부는 본격적인 죽음과의 사투다. 소원 들어주는 보물인 나귀 가죽은 가차없이 대가를 취한다. 바로 라파엘의 생명으로. 가죽이 줄어들어 테두리선 안쪽으로 보이는 빈 공간은 심장을 얼어붙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삶의 유일한 목표는 나귀가죽을 보존하는 일이 된다. 마음의 소원 때문에 생명이 사그라지고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만 소원의 결과물인 부가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너무도 비이성적인 현실 앞에서 요즘 같은 시대에 이 무슨 일인가 라파엘은 한탄하면서 살아있음에도 온전히 살아있지 못한 시간을 보낸다. 인간 최고의 지성, 최고의 방편을 찾아 헤맨다. 라파엘의 여정과 그 안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인간의 속성, 사회의 구조는 비수처럼 그를 찌른다. “돈이나 권력이 없다면 육체나 정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의 불가촉천민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사막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니. 만일 그 경계를 넘어서면 그는 도처에서 혹독한 겨울을, 냉랭한 시선과 태도를, 냉랭한 말과 심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392p)” 그리고 그곳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열망의 대상이었던 페도라를 발견한다. 공감도 동정도 모르던 상류사회의 비정한 도덕 자체였던 그녀의 정체를.

 

 

작가의 신랄한 현실 묘사는 무서울 정도이지만 과장되어 있지 않다. 살아 남기 위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자신 사이에 무시라는 장막을 치는 라파엘과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무감각, 자연 깊은 곳으로의 피신까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비단 라파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는 문득 힘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그 힘이 막대하다 하더라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홀은 어린아이에게는 한갓 장난감일 뿐이지만 리슐리외에게는 도끼요, 나폴레옹에게는 세상을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인 것이다. 힘은 꼭 우리만큼의 크기를 가지며 그래서 큰 사람만을 더 키우는 법이다. 라파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409p)

 

 

“나는 욕망한다. 고로 나는 죽어간다”, 이 거래를 중단시키겠다는 의지, 원상 복귀 또는 약속의 파기를 위한 안간힘, 두려움 앞의 비참한 인간 조건 등이 파멸해가는 라파엘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었던 라파엘(308p)이, 그래서 식물이 되고 자동인형이 되어 삶을 포기한 채라도 살고 싶었던 라파엘의 심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머릿 속에 백과사전을 품고 미세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생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고 남긴 것이 평생 작가를 옥죄었던 고통의 기록이기도 했다는 점이 소설의 허구적 장치마저 현실 그 자체로 여겨지게 만든다.

 

 

소원 들어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요술 지팡이나 램프, 별가루 날리는 영롱한 그 무엇보다는 외형도 감촉도 자유자재로 바꾸며 위협하는 나귀 가죽에 가까울 것같다. 페도라와 폴린의 상징을 비롯해 당신은 어떤가, 무엇을 원하고 선택하고 지불하는가 질문하는 작품이고 여전히 질문이 남는 작품이다. 한시적 인간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나귀 가죽을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까지 시간이라 불러왔지만 실은 모든 영역에 두루 적용되기에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한대에서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 이 찰나 같은 인생은 우리를 가련하게 만든다. 하여 우리는 폐허로 변한 그 숱한 지난 세계 밑에 깔려 자문하나니, 우리의 영광, 우리의 증오, 우리의 사랑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훗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한 개 점이 될 뿐인데 삶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현재에서 존재 근거를 잃은 우리는 하인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백작 부인께서 나리를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고 전할 때까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5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