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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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은 연주회에서 들었던 바흐의 푸가가 주요 집필 동기로 작용해 1947년 초판 발행 후 음악, 연극,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하게 변신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152p) 대중 뿐 아니라 명사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며 전무후무한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로 저자와 제목이 단순하게 표지를 채우는데 반해 띠지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1928년에 찍은 레몽 크노의 연속사진이라는 설명을 본 후, 그보다는 뒤쪽의 사람은 글을 쓸수록 달필가가 된다.”는 인용문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격려로 다가오면서 용감하게 책장을 넘긴다.

 

문체 연습은 본문과 해제가 거의 동일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해제가 탄탄하게 실려있다. 늘 차례를 주의 깊게 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첫 번째 글 약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세 네 편이 넘어가니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주가 없음에 불안해하며 사전을 찾아 빈 공간에 용어설명을 적어 넣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읽던 도중에 해제를 발견했다. 이제 치밀한 해제가 있으니 안심하고 읽어나가도 된다.

 

기시감은 스토리텔링 연습(매트 매든/클라우드 나인)”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읽고 이렇게 매력적인 책이 있다니 감탄하면서 중학생 친구들 논술에 활용했었다. 친구들아, 마법같지 않니? 제목을 줄테니 내용을 각자 만들어보자. 여덟 컷 만화 형식이라 그림이 많잖아? 하며 함께 탁월한 발상과 표현을 신기해 했었다. 다시 펴보니 이 책은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에서 영감을 받았다.(스토리텔링 연습, 4p)”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아, 레몽 크노라는 훌륭한 분이 계셨었구나 하고는 지나간 것이 기억난다.

 

스토리텔링 연습에서는 조작되지 않은 기준점이 되는 버전을 템플릿이라 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기준글을 찾아야 한다 생각했고 당연히 첫 글 약기라 여겼다. 해제를 보니 반은 맞았다. “약기와 더불어 객관적 이야기가 토대이야기이자 저본이라 밝히고 있다.(183p) 토대 글을 가지고 주어진 각 제목에 최대한 근접하게 써보고 작가의 글과 비교하는 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고 시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속출했다. 일단 주어진 글을 이해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할 수는 있겠다.

 

뒤가 사라졌다’, ‘고유명사’, ‘고문투로’, ‘집합론’, ‘수학적으로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웃음을 참으며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낭독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번역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자의 주관적 해석이 많은 부분 스며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내내 들었는데 해제에서 궁금증은 대부분 풀린다. 원제와 원제의 의미, 번역어 선택 이유 뿐 아니라 번역의 의도와 착안, 진행방식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특별한 주제는 특별한 전문가의 검증도 있었기에 신뢰를 더한다. 어쩔 수 없이 원어로 읽을 독자가 마냥 부러웠다. 그래도 가장 즐겁게 읽은 곳은 역자 후기격인 번역가와 편집자였다. “문체 연습의 어투를 살려 , , 눈물, 으쓱함가득한 번역의 시간’, 몰입의 지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책을 한 번 본 후 과연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계속되는 질문, 해야 할 연습에 내내 적응해 나가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한 번을 살펴보고 나니 띠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음악으로 접한 변주의 힌트를 그는 글은 물론이고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떨지 말고 이렇게 해봐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크노가 펼쳐 낸 저 소박하고 수공업적이며 재미난아흔아홉 개의 놀이가 문체 연습에 바글거린다.(159p)” 유일한 정답은 없고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아마도 뜻밖에 만난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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