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를 잡아라 네버랜드 그래픽노블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로알드 달 원작 / 시공주니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녀를 잡아라(시공주니어)/페넬로프 바지외』는 어린 시절 작가가 탐독했던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를 그래픽 노블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로알드 달 애독자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다. 2020년 영화로도 리메이크 된 “마녀를 잡아라”를 이번에는 굵직한 상들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페넬로프 바지외 버전으로 다시 읽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셈이다. 강렬한 푸른색 표지 속 마녀의 눈동자는 세 인물을 흡사 독안에 든 쥐를 향하듯 주시하고 있다. 앞 뒤의 보랏빛 면지는 단순화된 패턴처럼 반복되는 마녀들로 채워져있다. 시작되는 페이지는 헐리우드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려 새로운 이야기에 매력을 더한다.

 

 

퀸틴 블레이크의 멋들어진 삽화가 있었지만 그를 제외하면 로알드 달의 문장만으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는 동화와 달리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맘놓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페넬로프 바지외 버전 “마녀를 잡아라”일 것이다. 일단 캐릭터들이 몹시 귀엽고 색감도 사랑스럽다. 가장 중요한 원작과의 차이라면 부모님에게도 살뜰히 보호받지 못하고, 주인공 소년보다 먼저 쥐로 변했던 식탐 많은 친구 브루노 젠킨즈가 전혀 다른 캐릭터의 여자 아이로 대체된 점이다. 생쥐로 변했을 때조차 예쁜 파란 눈을 가진, 지혜로운 조력자이자 “자, 자, 힘내자.(170p)”, “너의 감정을 외면하지 마. 겁이 나니? 막 화나고 그래? 네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해 봐.(171p)”라고 침착하게 위기를 헤쳐나가려는 친구라 모험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사람들은 순종적이지 않은 나이 든 여자들을 경계하고, 무슨 불길한 힘이 있을 거라고 여겨 버렸어.(38p)” 역사 속 마녀 재판과 관련된 부조리를 짚어주는 지점은 원작에서 추가된 의미있는 장면이다. 마녀 구별법을 도식화해서 보여주거나 시간 지연 효과를 노린 생쥐 만들기 방법인 제조법 86호 요약 페이지, 할머니가 어린시절 친구를 잃었던 회상 장면도 차별화된 표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용감함은 기본, 쿨하고 으레 연상되는 할머니 답지 않은 할머니는 화려한 악세서리와 패션으로도 분위기를 전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탱고 춤을 출 만한곳···? 할머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실 거예요?(근데 거기가 어디죠?)” “언젠가는 가겠지! 할미의 앞날은 창창하니까 말이다. 콜록콜록(61p)” 신문을 스크랩하며 건네는 86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답변이 머뭇거림이라고는 없듯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할머니와 친구, 두 여성의 공조는 직면한 불행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띈다. 주어진 삶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자세에서 작가의 전작인 “걸크러시;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문학동네)”의 연장선으로도 읽힌다. 원작의 주요 서사를 거의 대부분 유지해서 더 마음에 들고, 할머니와 단 둘이 전 세계 마녀 소탕을 위해 출발하던 원작의 마무리보다 밝은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부분 또한 멋지다. 어쩌면 후속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 상상은 계속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레기 괴물 - 재활용 맛있는 그림책 2
에밀리 S. 스미스 지음, 하이디 쿠퍼 스미스 그림, 명혜권 옮김 / 맛있는책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밀리 S. 스미스의 쓰레기 괴물(맛있는책/하이디 쿠퍼 스미스 그림)은 강렬한 표지가 순식간에 시선을 빼앗습니다. 결코 한 번 보고 바로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는 표지에 머무르며 괴물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괴물의 콧수염은 자전거 핸들이야!”라고요. 한계에 도달해 인류를 위협하는 환경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로 쉽게 선택하고 읽어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의 책으로 나오고 있지요. 두 명의 스미스가 글과 그림으로 건네는 쓰레기 괴물은 무엇을 말해줄지 기대하며 넘긴 면지에는 알록 달록 찌그러진 캔부터 비닐 봉지까지 흩어져 민트색 바닷속을 떠다닙니다. 자세히 보면 표지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따로 풀어 헤쳐 놓은 모습이군요!

 

쓰레기 괴물은 바다 불청객’, ‘골칫덩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바다에 버려지거나 흘러들어온 쓰레기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이룰 때 인간에게도 그렇지만 가장 먼저 바다 생물들에게 즉각적인 위협이 됩니다. 나는 황새치보다 날렵하고, 조개보다 단단해.(책 속에서)”를 비롯해 쓰레기 괴물이 어류에 빗대어 특징을 나열하는 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 두렵게 느껴집니다. 의인화된 쓰레기와 바다 생물들이 여는 파티에서도 물고기들이 당하는 고통이 연일 접하는 뉴스 등 미디어 소식과 중첩되며 현실적으로 다가오네요.

 

하지만 암전같은 페이지 전환 이후 분위기는 확 바뀝니다.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 일상에서 실천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이때 쓰레기 괴물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환경오염과 쓰레기의 순환, 노력해야 할 일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쓰레기 괴물은 명료한 글과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의 조화로 깊은 인상을 전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뒷면지를 앞면지처럼 양면으로 활용했다면 비교해서 차이를 볼 때 어린이 친구들과 더 효과적었을 텐데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작가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를 잡아라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5
로알드 달 지음, 지혜연 옮김, 퀜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시공주니어/퀸틴 블레이크 그림/1983)』는 아동문학에 자주 출연하는 마녀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으로 제목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도 작품도 인기가 많아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만든 작가라는 평을 듣는 로알드 달은 독특한 그만의 세계를 구현하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등 책보다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을 비롯해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을 각인시키킨다. “마녀를 잡아라”도 역시 퀸틴 블레이크와의 작업으로 ‘로알드 달’표 동화에 인장 역할을 한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존 테니얼의 삽화를 만났을 때 가장 완벽하듯이 퀸틴 블레이크의 삽화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마녀들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검은색 모자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는 빗자루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다. 이것은 진짜 마녀에 관한 실화이다.(9p)” 진짜 마녀에 대한 정보를 진지하게 전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은 부모님과 할머니의 고향인 노르웨이에서 지내며 본격적으로 ‘마녀’, ‘사실에 기초한 마녀의 역사’를 접한다. 여섯 가지 마녀 구별법을 익히고 각오를 다지지만 우연히 마녀들의 정기총회 자리에 숨어있다 발각되어 돌연 생쥐로 변하고 만다.

 

 

변했으면 돌아오는 것이 동화의 규칙 또는 묵언의 약속이라 생각했지만 혼자만의 착각인 듯 종결되는 마무리, 반전이 없다는 반전에 멍한 순간이 잠시 지속되었다. 그리고는 자꾸 왜 그랬을까, 작가는 왜 그랬을까, 숨은 ‘고귀한’ 의도, 내가 여전히 깨우치지 못한 의도는 무엇일까, 대체 어쩌란 말인가 등의 혼잣말을 중얼댔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돼요, 할머니?”(중략) “생쥐는 얼마나 오래 살까요?”(중략) “아, 그렇지 않아도 네가 언제나 그 이야기를 꺼내나 기다리고 있었단다.(260p)” 두 주인공의 침착하고 의연한 대화를 어른 독자인 내가 전전긍긍 쩔쩔 매며 따라가고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생쥐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씩씩한 주인공은 박수받을 만하다.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가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264p)”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마녀가 데려간 아이들의 이야기는 책 속의 책처럼 몰입된다. 무시무시한 내용을 주저라곤 없이 쿨하게 전하는 할머니는 의아하면서도 유쾌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등 지혜로운 면모가 인상깊다. ‘맛있었니?’, ‘더 먹고 싶으냐?(132p)’하며 마녀가 주인공의 친구 브루노 젠킨즈를 유혹하는 부분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C.S.루이스)”의 겨울 마녀가 터키 잴리로 에드먼드를 유인하던 장면을 오마주한 듯 연상되어 즐거웠다. 브루노가 시시각각으로 작아지던 장면(140p)은 아이에서 작은 쥐까지 책의 양 면을 활용해 우하향 대각선으로 그려내 시각적 효과를 만끽할 수 있었다. 빼어난 묘사와 멈추고 생각하게 되는 문장들을 읽으며 또 한 편의 소중한 로알드 달을 간직한다.

 

 

마지막은 “자, 출발!”이라는 희망적 장으로 마무리된다. 할머니와 손자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구원의 영역을 확대할 때 걸림돌이라고는 없다. 대수롭지 않은 세부사항으로 치부하자 걸림돌은 디딤돌로 변하기 때문이다. 여왕마녀를 소탕함으로 모든 어린이들에게 닥칠 위험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새롭게 시작할 때 독자의 마음도 두근거린다. 재미와 의미를 맘껏 즐길 수 있는 동화를 영화로 또 그래픽 노블로 다시 볼 수 있다니 감사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득(1816/문학동네/원영선 전신화 옮김)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로 1817년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 출간되었으며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이러한 명성은 대문호의 마지막 작품들, 괴테의 파우스트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등 대작가들의 유작과 의미를 생각할 때 제인 오스틴 사상의 정수가 담겼으리라는 기대를 높힌다. “오스틴은 자신의 표현 그대로 ‘2인치의 상아섬세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정교한 필치로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세상사를 그려낸다.(339p)”는 해설처럼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세상사21세기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현재일 수 있는 감정과 삶의 면면, 불변의 진실을 말한다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앤의 애착과 회한은 젊은 시절 누려야 할 모든 즐거움에 기나긴 먹구름을 드리웠고, 그로 인해 일찍 시들어버린 생기와 젊음은 오래도록 회복될 줄 몰랐다. 이 가슴 아픈 작은 사건이 끝난 지도 칠 년이 넘었다.(40p)” 엘리엇 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열아홉 살 때 주변의 설득으로 사랑했던 사람과의 결혼을 이루지 못했고 스물 일곱이 된 지금 과거의 사랑과 재회하게 된다. 영향력 있고 지혜롭다 여겨지는, 거절하기도 어려운 주요 주변인들의 조언과 설득을 받아들였던 그때의 자신그로 인한 결과’, 금의환향하여 다시 모습을 드러낸 웬트워스 대령과 새롭게 설정되는 관계들이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안타까워한들 어찌하랴! 냉정을 찾으려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난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음에 팔 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82p)”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엘리자베스의 본심은 기준점이 되어 상황 전개에 맞춰 그녀의 행동과 마음을 가늠하고 예측케 한다. 제목이기도 한 설득은 상황별로 다채로운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과거를 도가 지나친 설득의 결과였고, 나약함과 소심함의 결과였다(84p)’고 진단한다.

 

엘리자베스와 웬트워스 대령의 애정 행로와 함께 엘리자베스의 성장 서사도 주요 모티프다. 요 몇 년간 앤은 훌륭한 친구인 레이디 러셀이 자신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95p)” 기본적으로 지혜롭고 사려깊은 엘리자베스는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 간의 관계나 숨은 의도를 경험하며 분별과 통찰력을 키워간다. 이해하는 만큼 수용의 폭은 넓어지고 사고의 조율은 민감해진다. 또한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단지 부드러움과 기백이 양립할 수 없다는 흔해빠진 생각에 반대하고 싶었을 뿐, 벤윅 대령의 행동거지가 최고라고 대변하려던 것은 아니었다.(228p)”, “교활함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뭔가 불쾌한 것이 있어요. (275p)”

 

시간이 흐른 후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과거 그때처럼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확실히 쌀쌀하게 대해, 이제까지 조금씩 쌓인 불필요한 친밀감을 가능한 한 말썽 없이 줄이고자 했다.(284p)” 의도를 가지고 포장된 인격은 가면이 벗겨질 때 많은 것을 망가뜨린다. 엘리자베스의 판단과 행동은 내내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용기있는 실천가다. 무슨 일이든 가능했다. 무슨 일이든 알고 맞서는 것이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나았다.(314p)”

 

재빨리 사물을 인지하고 인물됨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경험으로도 얻을 수 없는 타고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331p)” 편견과 의심과 속단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레이디 러셀 뿐 아니라 너무도 쉽게 맞닦뜨리게 되는 모두의 속성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일, 보이는 것 넘어 있는 진실에 닿기 위해 애쓰는 것은 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부부가 사는 여러 방식, 혈연 관계임에도 너무도 개성적인 개인일 수 밖에 없는 자매들, 그러도록 또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얘기좀 해주셨으면 합니다.(61p)”로 통일되는 반복적 의뢰(‘당신이 설득하면, 한마디만 하면 들을거에요. 내 말은 안듣거든요.’의 여러 버전)의 부담-이건 정말 너무하는 것이다-은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았고, 사랑과 우정의 역동 관계, 선택의 문제와 추구해야 할 가치 등 세련된 문장으로 읽는 제인 오스틴은 늦게나마 오스틴 월드에 입성케 한다. 아직 읽어야 할 작품이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책을 덮는다.

 

 

 

 

책 속에서>

-이 모든 소음 속에서 자기 존재를 알리려 작정한 듯 맹렬히 타오르는 크리스마스 장작불이 전체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177p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소음에도 사람마다 나름의 취향이 있게 마련이다. 소리는 크기보다도 종류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도 들리고 아주 거슬리게도 들리니 말이다. 178p

- 벽난로 위의 우아한 작은 시계가 은빛 소리로 11를 알렸고, 멀리서 야경꾼이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90p

- 앤은 나이를 먹으면 현명하고 이성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 슬프게도 아직 현명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소담출판사/이상훈 옮김)1865년 발표한 표제작과 쌈닭두 편을 묶고 있다. 창작 초기 그의 고향 오룔 부근의 여성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열두 편의 시리즈를 쓰려던(278p) 작가의 원래 의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불도장을 찍은 듯 강렬한 작품의 여운을 생각할 때 궁금해지고 아쉬운 마음이다. 톨스토이도 극찬했고 문학사가 미르스키도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293p)’라 칭했던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16년 후 출간되는 왼솝잡이와는 꽤 다른 분위기로 독자를 데려간다.

 

나는 그 어떤 학파에도 속하지 않는데, 이것은 내가 가르침을 얻은 곳이 학교가 아니라, 바로 스콧의 범선이었기 때문이다.(268p)"라고도 했듯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얻은 경험은 작가를 스쳐가는 법이 없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도 그 당시의 젊은 며느리에 의한 엽기적인 시아버지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기에 더욱 놀랍다. 원제는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지만 제목의 상징성 또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권력욕과 야심을 일깨우며 남편을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결국은 함께 파멸하고 만 그녀는 주인공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집중하게 만든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의 제사노래는 처음 부르기가 어려운 법이다.-러시아 속담는 반복하며 점진적으로 도를 높혀갈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악행, 살인을 암시한다. 우리 지방에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생각할 때마다 영혼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인물들이 간혹 나온다.(11p)"라는 첫문장은 비극의 서막을 연다. 젊은 나이에 나이 많은 남편과의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러시아의 권태에 둘러싸여 6년을 보내는 동안 진저리치며 본성을 억눌렀던 그녀는 본래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인 세르게이의 유혹에 이끌려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이후 그녀의 행보는 너무도 쉽게 극단으로 치닫지만 결국은 비열한 세르게이의 정체 앞에 마지막 선택을 한다. 제동을 걸어줄 무언가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싶지만 그녀의 감정도 행동도 가속도를 더해가며 일방향으로 전진한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오페라에서 영화로 까지 잊혀지지 않는 전형으로 드러난다.

 

쌈닭은 레이스 상인이자 중매쟁이로 끝도 없는 사건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또는 일을 만들어서 스스로 처하곤 했던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이야기를 화자인 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그러나 이후 시종일관 이어지는 대화체의 문장은 레스코프 문학의 특징이라는 스카즈 장르’, 즉 살아있는 구어체를 재현하려는 일종의 문체양식(276p)이 어떤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페트루셰프스카야 등 현대 여성 작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 문체는 시간의 밤(문학동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넘치는 자기 확신으로 펼쳐 보이는 이야기들은 시작과 끝이 정연하지 않고 새로운 곁길이 불쑥 돌출하며 이어지곤 한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에 형식은 주고 받는 대화일지언정, 혼자 말할 뿐 상대 목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타인의 감정은 조금도 배려하거나 공감할 줄 모르고 자기딴에는 선한 의도가 상대방을 비참의 수렁으로 천진하게 내몬다. 눈물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눈물은 눈물일 뿐이에요. 당신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눈물로는 돈이 생기지 않아요.(149p)" ”그거야 세상사가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고 느끼면 곧바로 돼지가 되거든.(184p)" 때론 헛웃음이 새나오는 비유로, 정작 본인은 유머와 풍자를 의식할 여유라곤 없이 오로지 진지하게 거침없는 의견을 내뱉는다.

 

왜곡되고 비뚤어진 착각들조차 조금도 의심할 줄 모르는 그녀는 왜 이런 여인, “쌈닭이 되었을까. 책 속에서 직접 묻고 있다. 그럼에도 돔나 플라토노브나,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202p)" 그리고 페테르스부르크의 물정에 대해 알려준다. 페테르스부르크의 물정이라는 것은 돔나 플라토노브나나 그와 비슷한 존재를 생성시키고 발달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턱대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레카니다 같은 사람들을 그녀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203p)“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사연과 마지막 장들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에서 잊기 어려운 두 개성적인 캐릭터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펼쳐볼 책 광대 팜팔론에서는 조금 더 웃음기 있는 세상이 전개될지, 21세기에 만난 19세기 러시아 여성들은 한참 쓴 여운을 남긴다.

 

 

책 속에서>

-그 어떤 혐오스러운 상황에서도 인간은 적응을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보잘것없는 기쁨이라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아무것에도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세르게이를 보았고, 그와 함께라면 유형지로 떠나는 길도 기쁨이었다. (8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