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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평점 :
1942년 여름, 2차세계대전 중인 그 때에 미국의 뉴잉글랜드의 명문 사립학교 데번에서 열 여섯 살의 학생들의 이야기다.
-마치 최면과도 같았다. 피니어스라면 무슨 일을 저질러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약간은 질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단짝 친구라 해도 살짝 질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나가자, 친구” 피니가 부르면, 내 본성 전체가 반발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반항할 생각을 못하고 따라 나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뛰어났고 만나는 모든 이를 매혹했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이 기뻤다. 그는 내 룸메이트이고 단짝 친구니까.
피니어스와 진은 단짝친구다. 피니어스는 스포츠와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뛰어나고 매혹적이기까지하다.
영민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쉽고도 자연스럽게 언제나 힘의 중심에 존재한다.
진은 그런 피니어스에 대하여, 나는 노력해도 가지기 힘든 것들을 선천적으로 획득하고 있는 피니어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고 동경하지만 미움과 질투, 적개심이 그 자리를 계속 침범해간다.
피니도 자신의 수석졸업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진은 피니에 대한 미움을 합리화할 근거를 마련하고.
-헤아릴 수 없는 희열, 앞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기대가 나를 덮쳐와서, 혹은 그저 아침이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워서 크게 소리쳐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기엔 내 안에 너무도 큰 증오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이 뛰어내렸다는 교내의 큰 나무줄기에서 아래 강물로 뛰어내리는 클럽을 만들어서
그 여름 내내 나무에 오르곤 했다.
피니와 진은 그날도 나무에 오른다. 그리고 진은 피니가 서있는 나무줄기를 흔든다.
피니는 그 사고로 다시는 이전처럼 아름답게 걷거나 뛸 수 없었다.
-“이것 봐, 친구. 내가 운동을 할 수 없으니 네가 나를 위해 해줘야지.” 순간 나는 자신의 일부를 그에게 넘겨주는 기분이 들었고, 샘솟는 해방감 속에서 애초에 그것이 내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피니어스의 일부가 되는 것이.“
사고 후에 피니와 진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전쟁이 특별히 제외되어있던 데본학교 안으로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친구들은 또다른 선택을 하고,
그것은 각자의 인생을 전혀 새롭게 만들어간다.
어렴풋이 자신의 사고에 대해 진을 의심했던 순간에도 피니는 곧바로 사과한다.
결국 사고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피니는 진을 용서한다. “난 널 믿어“
수술실로 가기 직전에 친구를 용서한다. 그리고 수술 도중에 심장이 그냥 멈춰버린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하게..골수가 혈류를 타고 심장까지 흘러가 막아버렸다고...
-하지만 스탠플 선생이 내게 그 얘기를 한 이후로 매일의 모든 순간 그는 내 곁에 있었다. 피니는 그처럼 순식간에 소멸시킬 수 없을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피니어스가 죽었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의 죽음을 허락했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원천 같았던, 생명의 아름다움의 구체적 표상같았던 피니어스.
그리고 역시 뛰어나지만 그 빛에 늘 가리워지고 결코 같은 부류일 수는 없는 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통과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이글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 또다시 새록새록 그 아픔을 경험한다.
또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천재를 죽이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진의 모습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까...
비슷한 코드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데미안이다. 에밀 싱클레어와 데미안
내가 청춘일 때 수백번 더 되뇌었던 이름들이다.
그리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나의 학창시절도 하나의 인물, 근본적 줄기로 요약된다.
내 딸의 학창시절은 자신을 깊이 신뢰하고 초연한 상태로 친구와 교재하며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리한 바람일까 싶지만 기도한다.
사건의 전개와 묘사가 마음을 옥죄어온다.
작가의 필력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때의 나무, 그때의 태양, 그때의 쌓인 눈
마음의 고통에 반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데본 학교의 모습
그리고 잊지 못할 이름들이다.
문예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