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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ㅣ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카뮈와 프랑스 무신론적 실존주의 작품에 흠뻑 빠져 지내던, 나 역시도 막 시작하던 청춘이었던 때를 두 번째 보는 ‘이방인’이 불러내준다. 읽던 중 한 권의 책이 기억났는데 흑백 점 얼룩으로 카뮈의 얼굴을 표지 가득 채워 넣었던 카뮈 잠언록, 내지는 명언집으로 그의 주요 작품에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추려 모았고, 꽤 오래 이 책을 애지중지 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어쨓든 한동안 ‘프랑스 문학은 김화영 번역으로’를 대형 출판사를 비롯해서 꽤나 많이 선보이는 작품의 어려운 선택기준으로 삼았고 그만큼 신뢰해왔다. 그러다 몇 년 전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쇼킹한 문장으로 이정서 번역판이 세상에 나왔을 때, 역자의 용기도 신선했지만 ‘그럼 안돼지...’라는 생각도 컸던게 사실이고, 그 당시의 술렁임이 궁금했지만 지나치고 말았는데 이번에 2020개정판으로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내 기억의 오류인지, 독해 수준의 문제였는지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방인은 ‘너무 눈이 부셔서 쐈고, 마침 한 사람이 맞았고, 내 행동에 설명이나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 성실하게’정도였고 ‘내 감정과 일상의 한 순간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충실할 수 있는 것이 실존 아닐까, 두려움 없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것 같다. 보통은 할 수 없는 일일텐데... 인상깊은 장면만 선명해지고 그 밖의 앞 뒤 이야기는 흐릿해져 버린채로 이방인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살해 위협에 대한 정당방위’로 시작해서 구석구석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과 인상, 접점과 어긋남, 상황의 강제와 분노를 억제한 관조 등 생생한 드라마를 마치 처음 보는 듯 긴장하며 읽어나갔다.
뫼르소가 땀과 햇볕을 떨쳐버렸다던 첫 번째 총성과 연이어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짧은 노크와도 같은 네 발의 탄환(87쪽) 이후 태양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갑갑한 분위기의 2부가 시작된다. 죄를 다투는 법정 장면에서 뫼르소는 충분히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없었고 그렇다고 초연하게 사형판결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형의 집행을 알릴 새벽의 인기척을 두려워하며 항소로 발생가능한 가설에 몰두하는 장면은 삶의 자연스러움을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 이후 부속 사제를 돌려보낸 채 그는 결국 그것을 완성하고자 한다.
개정판은 역자노트에서 다른 번역과 꼼꼼히 비교, 소개함으로 원작을 읽지 못하는 독자를 배려한다. ‘깊이읽기’에서도 이어져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려는 역자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1955년 카뮈가 쓴 미국판 서문 중에서 ‘답은 단순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거짓말, 그것은 단지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무엇보다 있는 것을 더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그것을 더 말하는 것입니다. 뫼르소는 겉모습과 반대로, 삶을 단순화하지 않습니다.(304쪽)’에서는 매너리즘과 관습에 저항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항상 역설적으로, 저는 무엇보다 내 캐릭터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고독한 예수로 묘사하려 애썼다는 점을 말해왔습니다.(305쪽)’라는 문장 역시 여운을 남기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이반의 서사시 ‘대심문관’이 중첩되어 보인다.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을 읽고 나면 카뮈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작품의 문장과 밀도에 새롭게 감탄하게 될 것이고, 다른 번역본도 다시 한 번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