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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유강은 옮김/21세기북스)』는 인간 사회의 진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에 깊이 천착해 얻은 최대치의 수확을 꼼꼼하게 펼쳐 보이는 묵직한 저서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위어드(원제: WEIRDest People in the World)”를 위한 연구 중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을 먼저 출간하고 10여 년을 지속해온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제목인 “위어드”는 인간 심리의 주요측면을 대상으로 한 비교문화 연구 전체를 검토해 도달한 결론에서 만들어진다. 즉, 인간 심리에 관해 아는 거의 모든 내용이 “여러 가지 중요한 심리적, 행동적 차원에서 다소 이례적으로 보이는 인구 집단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에 “위어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인구 집단은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 출신이기 때문이다.”(p.18)
책은 네 개 파트, 열 네 개 챕터로 “우리의 심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왜 변화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지”(p.57) 거인의 보폭만큼 넓게, 동시에 촘촘하고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본론의 첫 질문은 “당신은 누구인가?”(p.45)로 어쩌면 위어드일지 모른다고 추정한다. 위어드와 대다수의 비위어드를 나눌 때 위어드가 현대인이 지닌 보편적 특징을 더 잘 함축한다. 수치심이 삶을 지배하는 비위어드와 대비해 위어드들은 헬스장에 가는 대신 낮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낀다는 항목에서, 이어 계속되는 지점에서 공감을 부른다.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에 좌우되는 죄책감과 “사회적 기준과 일반적 판단에 좌우”되는 수치심은 심리가 발달하게 된 근저까지 찾아들어갈 때 문화-제도-심리 간 역동, 친족과 가족의 결속, 그리고 종교의 역할을 재정립하도록 이끈다. 책은 인간이 문화적 종이고 여러 세대를 거쳐 발전해온 “누적적인 문화적 진리”(p.100)를 기꺼이 수용하는 지혜를 지녔음을 보여주고 인간 종의 성공 핵심에 신뢰 본능이 자리함을 말한다. 이에 더해 인간의 사회성을 살피기 위해 친족과 결혼에 기반한 제도를 분석한다.
전근대 국가로부터 근대의 위어드 사회로 이행하는 직선 경로는 없으며 위어드 사회는 전혀 다른 제도적 토대 위에서, 밑바닥부터 재건된다. 친족에 기반한 조직을 포기하고 문화적 진화를 이루어낸 토대를 이제 종교에서 발견한다. 가설을 검증하고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는 기존의 심리 실험을 끌어오거나 새로 설계한다. 책은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등장한 보편 종교들의 세 가지 특징을 추리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계 분석해서 경제 속도와의 연관성,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보여준다. 종교적 배경은 위어드 심리가 등장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책은 질문과 답, 가정과 추적을 반복하며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만족스러운 증명 이후 등장하는 필연적 의문에 또다시 답하는 방식을 되풀이한다. 빼곡한 실험과 축적된 연구 소개는 결론의 증거가 되고 이때 한계와 미진한 점을 밝힘으로 거대한 여정은 독자의 호기심과 지적 추진력을 지속적으로 끌어낸다.
인간의 심리가 집단 간 경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기 위해 전쟁의 영향을 확인하는데 전쟁 경험 참가자들 인터뷰와 전투 및 포위전 분포도 등을 활용한다. 전쟁은 도시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창출했음이 드러난다. 또한 길들여진 형태의 집단 간 경쟁이 위어드 체제에서 경제, 정치, 사회 영역에 길드로부터 합자회사의 출발점으로, 정당 결성으로, 스포츠 연맹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집단적 경쟁이 “종종 이기심과 제로섬적 사고, 공모, 족벌주의를 선호하는 집단 내부의 문화적 진화의 힘을 밀어낸다.”(p.458)며 위어드한 제도적 틀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로 꼽는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것”의 등장과 확산을 다룬 장이다. “그것”은 “최초의 기계식 시계”, “시계”(p.460)다. 저자는 공중 시계의 확산을 WEIRD시간 심리의 등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시간 절약에 대한 강박”(P.461)이 위어드 시간 심리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며 저자 역시 항상 ‘시간을 아끼거나’, ‘시간을 내거나’, ‘시간을 찾으려고’ 애쓴다고 적는다. 이 강박은 흔들리는 예민한 추를 장착하고 잠들지 않는 눈으로 지켜보다 즉결심판하거나 심판을 지연시킴으로 더 옥죄는 효과를 낳기에 시간 측정의 근거이자 도구의 발전사는 매력적이다. 시간에 대한 심리적 인식 변화도 그 기원을 추적하고 통합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총, 균, 쇠>와 비교해 이 책은 "전 지구적 불평등"(P.596)과 관련하여 다이아몬드가 설명하지 않는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서 제도와 심리의 공진화에 집중했으며 이 불평등의 양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교회가 가족 제도를 재편하면서 시작된 사회적, 심리적 변화를 검토할 때만”(P.597)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최재천 교수는 추천사를 “놀라운 책이다.”로 시작한다. 수 많은 찬사들 중 “담대한 시각으로 밀어붙인 기념비적 저서는 근대의 기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필독서가 될 만하다.”(발터 샤이델)는 평가처럼 저자는 종횡무진 인류의 시공간을 누비며 흩어진 금맥을 정연하게 추려낸다. 독자는 책 속에서 이제는 익숙하고도 평균적으로 감지되는 위어드의 마인드부터 섬의 외딴 지역 씨족사회의 흔적을 간직한 소수의 공동체까지 만나며 실로 축지법과 타임머신 여행에 동참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물론이고 흥미진진하다. “위어드”는 책장을 넘기는 동시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와, 정말? 대단해···오오! 등의 추임새가 이어지는 이유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 분량과 이론을 정립해갈 때의 밀도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만들어내는 균형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위어드”는 독자를 끝까지 여행에 동참시키려는 친절한 책이기도 하다. 이토록 수많은 심리 실험, 이토록 현란한 통계 분석, 투명한 한계 명시 및 제언을 따라갈때 중심 주제를 놓쳤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요점을 정리해보면” 등의 청유형 정리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또한 저자가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음장으로!” 라는 깃발을 들고 전진할 때 발췌독은 불가능하다. 그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낱말과 숫자, 그림과 각종 그래프, 지도의 영역과 경계선을 ‘알고 싶다, 알아야 한다’며 간절해진 눈으로 응시케 된다. “위어드”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도달케 한 인류의 흔적과 그 안에 숨은 의미를 거시적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하는 책이다. 헌신하는 거인들 어깨 위에서 인류를 조망하게 하는 지적 안내서를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