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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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문학동네/정연희옮김)2008년 출간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으로 올리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었다. “단속부터 친구까지 열 세 편의 연작은 메인주 크로스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계속되는 일상을 그려낸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올리브 키터리지484p/문학동네)”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아련함, 내적 응원을 불러일으키던 장면 이후 올리브는 그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 일은 어째서 이런 일이!’싶을, 평범의 얼굴을 해서 더 혹독한 사건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사이로 깨닫고 새삼 알아가는 진실, 짚어낸 의미를 소중하게 가려 담는 과정이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배짱은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거닐며 보내온 잭 케니슨(10p)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에 놀라워하고, 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16p)” 실수와 후회는 사고치는 단짝처럼 붙어다니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투의 환희는 영 만나기 어렵다. 여기에 나이가 얹히면 비장함에 가속도가 붙는다. 삶이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을 차분한 자부심, 의기양양한 성취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잭에게 공감한다. 놀랍고 놀라우니 놀라울 뿐이다.

 

청소에서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을 만난다. 치료제가 없는 외로움의 악취(76p)”는 감돌고 스며든다. 전사한 오빠의 사진과 제비꽃만을 간직했던 미스 미니, 한 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 곁에서 내색없이 고통받고 일탈에 이르렀던 링로즈씨,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엄마 때문에 힘겨웠던 케일리까지.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87p)”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세대간의 오해와 반목, 아쉬움과 서운함, 불쾌하게 입안에 퍼지는 쓴맛처럼 어긋나는 상황과 고착된 한 시기의 상처가 연이은 매듭처럼 꼬여있다. ,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127p)” 올리브는 크리스토프의 존재 하나면 족하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생 이대로 있고 싶었다. 아들이 알파벳을 암송한다 해도 이대로 앉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126p)” 부모에게 아이는 자라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에 멈추어 있다. 그러니 그 아이의 흰머리를 보고 놀랄 수 밖에.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내 앤의 권력관계를 엿본 올리브는 충격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 소리 질렀던’, ‘그러고 싶을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자신이 오버랩되며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했다(150p)“고 깨닫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채울 수 있다면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자문한다.

 

버니, 버니. 제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아시겠죠? 맙소사. 그 사람들! 제가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왔을까요? (중략) 부모님이, , 살인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고요, 버니. 그리고 제 동생은 정말 살인자죠. 오 맙소사.(183p)” 딸 수잰을 통해 라킨 씨 가정은 재조명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베일이 조금씩 걷히며 본질에 다가갈수록 비판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드러난 면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고, 그럼에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수잰 곁의 좋은 어른, 선한 조력자 버니의 존재는 감사하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할 일은······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187p)“ 암송해야 할 문장이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사받아 마땅하다.

 

감동은 햇빛에 이르러 찌릿하게 증폭된다. 노년의 낯선 면면들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긍정적인 마무리로써의 죽음 수용은 생의 발달과업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찾아오는 죽음은 당황스럽다. 올리브는 신디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며 말을 위한 말, 위로를 위한 위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살갑지 않지만 신뢰할 수 있다.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올리브의 말, 단편의 마지막 문장에 숨을 멈추게 된다. 신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잭이 너무나도 진짜 웃음을 웃었듯이 올리브가 건네는 것들은 온전히 참되기에 치료제가 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협소한지(308p)” 편견에 사로잡힌 마거릿과 살고 있는 밥. 그의 슬픔이 전해진다. 꼬리물기 같은 그는 형이-형이!-그리웠고, 형은 메인을 그리워했다.(308p)”로 시작되는 엇갈림을 따라가다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퍼거스씨 딸 로리는 우리 가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병적인 가족일 거예요.(367p)”라고 한탄한다. 퍼거스는 아내한테 우리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379p)” 묻는다. 너무 늦은, 그러나 역시 다행스런 각성의 순간이다. 인생이 나한테만 왜이럴까 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 제목은 친구. 취향이 분명하고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의 감정에 늘 씩씩했던 올리브는 마지막 거처에서도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배우고 깨닫고 돕고 나눈다.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올리브. 그녀는 아들에게 타자기와 장미나무가 필요하다고 전화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 시간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할까, 어떤 것을 곁에 남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고 배운 만큼 부단히 성장하는 그녀의 하루는 그래서 소중하다. 어떤 형태로든 어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이자벨과 달리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456p)’을 느끼나 역시 , 됐다그래.” 올리브답게 쿨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올리브가 나이드는 동안 독자인 나도, 나의 부모님도 나이들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뵙고는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마르고 키도 움츠러 들고, 얼굴은 하얗고 빛이 다 나네요, 했다. 예뻐진 것 같으면서도 무언지 모를 철렁함이 있었다. 돌아오면서 앞으로 엄마가 해달라는건 다 해줄거야, 결심했는데 노년으로 완전히 진입하는 부모님 역시 몸도 마음도 생소한 공기에 낯설어 하시는 듯하다. 상실감은 육체적 쇠약에 머물지 않고 올리브나 잭처럼 자신이 눈 먼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삶 전체가 허비되었다고 불현 듯 느낄 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음을, 내가 곁에 있을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다.

 

다시, 올리브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흔든다.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메크로스비 바닷가 마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마을이고 책 속의 이름들은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나의 이웃들이다. 우리는 베티처럼 말한다.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420p)” 하지만 네 삶, 모든 삶은 중요하다 일깨우는 올리브. “다시, 올리브가 이렇게 황홀할 줄 알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기대했던 질량을 압축하고도 넘치도록 채워 건네주니 나는 활자 읽기 만으로 쉽고 편하게 충만한 시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내 삶에, 불편할지도 모를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만 왜 이래 불평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성구가 생각난다. 태양 아래 모든 순간 배우고 감사할 것! 올리브와 함께 뒤돌아본 발자국도, 미리 걸어본 시간도 해 아래 반짝인다.

 

 

책 속에서>

-이맘때는 저녁 시간이 끝없이 길었고, 그녀는 긴 저녁 시간을 사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56p)

-자기 예찬? 올리브는 자신을 전혀 예찬하지 않았다. 성격장애? 인간의 감정이란 광범위하고 폭넓은 집합체인데 왜 그중 무언가에 성격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건가?(142p)

-머리 위에서 아주 큰 창문이 산산조각나-소방관들이 그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그렇게 부쉈을 것이다-이제 드넓은 세계 전체가 바로 거기, 그녀의 머리 위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189p)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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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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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문학동네/송기정 옮김)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을수록 초대받은 자리에서 경청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콜레트는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콜레트라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 작가였고(181p) 작품 속에서도 그려지듯이 대중 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도 깊이 소통했으며, 대외활동이나 수상 등 생전에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명예를 얻었던 최초의 여성작가(182p)”이기도 했다. 깨어있는 의식의 재능 넘치는 작가로서, 삶이 곧 예술에 근접했던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여명은 어머니 시도의 편지로 시작된다. 딸의 집에 초대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인장 꽃의 개화를 보기 위함을 든다. 이제는 세상에 안계시는 어머니,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에게 여전히 현재인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리며 나아가 스스로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에게 재현한다. 본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은 이곳이 나의 마지막 집일까?(13p)"하는 반복되는 질문이다. 책들로 가득 찬 찬장들, 소파들, 서랍장들은 십오 년 동안 나와 함께 두세 군데의 프랑스 시골 지역들을 돌아다녔다.(19p)" 그 후 정착한 프로방스의 해안가 마을에서 그녀는 친구들의 방문을 받고 마음을 나누고 태양과 달과 별의 움직임을 벗삼는데 안식을 향한 기대가 느껴진다. 어머니 시도의 회상, 동 식물을 비롯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인상적이고 주요 테마는 비알과의 예기치 못했던 사랑이다.

 

거리낌 없고 독립적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던 어머니 시도는 그녀의 인도자이며 거울이고 다다르고 싶은 별이다. 편지로 추억으로 내면의 목소리로 어머니는 내내 출현한다. 어머니가 했음직한 말들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다보면, 항상 나로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볍고도 느리게 나의 속내를 건드리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가도 천천히 다시 솟아오르는 단어들, 특히 주요 논거, 비난, 예상치 못했던 만큼 더욱 매력적인 관대함이 내게는 부족하다.(36p)" 예리한 동반자인 어머니를 향한 연가와도 같은 기록은 마음을 울린다.

 

그녀에게 들르는 친구들 중에서도 특별한 청년 비알을 중심으로 한다. 이미 많은 것을 겪고 누렸기에 웬만한 것들은 그저 넘기려던 시기에 비알은 일종의 때아닌 열매(81p)"였다. 그러나 분명한 열매, 후일에도 계속 생각날 열매다. 자신을 향하는 비알의 감정과 비알을 사랑하는 엘렌, 떠나보낸 비알과 자신의 감정을 조금 늦게 깨닫는 주인공, 그리고 기다림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각별한 세기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삼각관계를 흔치 않게 만들고 품위있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서술자의 통찰력, 예민한 지성에 빚진다. 심리상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충분히 표현해 살뜰히 전달하는 능력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모성애는 또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25p)“

 

여명은 반복해서 읽으려 모은 잠언집과 같이 명문장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노쇠란 무엇인가?(43p)"처럼 노쇠, 나이, 여름(82p), , (99p) 등을 비롯해 단어 또한 새로움을 입는다. 모으다, 준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주제를 안기기도 한다. 나는 종종 부모들에 의해 뼛속까지 피폐해진 자식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중략) 그런 자식들은 하도 많아서 골라잡기만 하면 될 정도이다.(53p)” 글쓰기에 대해서는 늘 종이와 씨름하는 사람들, 글을 읽을 자유는 없고 오로지 쓰는 자유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글을 읽고 가구를 디자인하는 사치를 누린다.(53p)"말하니 독서가 호사임을 깨닫고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자연의 묘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 부분만 들어내어 삽화와 함께 예쁜 소책자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감각적 서술은 복숭아 향기를 맡게도 종소리를 듣게도 춤추는 댄스홀을 보게도 한다. 동식물을 글로써 채집하는 그녀의 산책길에 서둘러 따라 나서게 된다. 진정어린 교감을 하며 키우는 동물들은 물론 산책길의 생명체들까지 살아 숨쉰다. 언젠가 그에게 줄과 목걸이를 매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결국, 내게도!“ 라 말하며 한숨짓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략) 그에게는 완벽한 연인이 갖출 법한 정숙함이 있어, 내가 억지로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질겁하곤 한다.(56p)" 그녀는 함께 했던 세 번째 고양이를 추억한다. 그녀가 교류했던 예술가들을 엿보는 것도 즐거운 여정이다. 어떤 화가는 여명의 표지 삽화를 그렸다.

 

작가는 누구든 가까이 다가서고 싶게 하는, 자의식이 빛나는, 일종의 숨만 쉬어도 멋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 살로메를 비롯한 천재적 그녀들이 빠르게 스친다. 생각과 감정, 행동이 기계적으로 연속되는 생각의 틀을 작동시키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분리시키는 것이 일상화된 깨어있는 의식을 지녔기에 작품도 삶도 가능했을 것이다. 글쓰는 자, 기록하는 자이니 이부자리적 요소(오래전 도스토옙스키 번역본에서 읽었던 표현)에 빠져 침몰하는 일 따위는 없다.

 

시 공간적 배경 뿐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통분모가 없어 적절한 비교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전에 읽은 작품의 짙은 잔상은 다음 독서에 영향을 끼친다.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에서(시간은 밤/문학동네) 몸부림치는 여성들과 콜레트의 여성들은 너무도 다른 곳에 있다.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가림막도 커튼도 잡아뗀 생경한 글로 우리의 오감을 단련시키며 , 같이 한 번 내려가 봅시다, 지옥으로라고 이끄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세계와, 계절의 추이를 가늠하고 오수 이후 하루의 때 조차도 미려하기 그지 없이 포착해 보석으로 테를 두른 일기 같기도 한 콜레트의 나른한 세계는 너무도 멀다. "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은 다 싫어한다.(109p)" 사례를 나열하며 확고하게 반복하는 콜레트와 달리 살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만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보겠다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여자들은 다른 차원의 공기를 마신다.

 

콜레트는 사랑받았던 만큼 빼어난 감수성으로 맘껏 기록하고 창조했던 작가이며,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많은 것을 증명했기에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심 가득한 글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에 시처럼, 노래처럼 아름답다. 점점 더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는 그녀의 어머니 시도는 콜레트에게서 다시 이어진다.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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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 이야기
옌스 한세고드 지음, 안데슈 뉘베리 그림, 이유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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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한세고드의 건축이야기(안데슈 뉘베리 그림/지양어린이)지구에서 가장 놀라운이라는 수식어를 곁들인 제목으로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작가인 옌스 한세고드는 이미 지구에서가장 굉장한 동물, 사라진 보물들, 가장 무서운 생명체 등을 발표하며 눈에 띄는 논픽션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건축이야기의 표지에는 몇 번 쯤 봐왔을 유명한 건축물들이 모여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면지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표지에서 보았던 건축물들 이름과 위치가 적혀있어 한 번 더 눈여겨 보게 됩니다.

 

속표지를 지나 본문이 바로 시작됩니다. “건축이야기는 하나의 건축물을 좌 우 양면을 할애해 그림과 글로 설명해줍니다. 건축물의 이름과 위치는 제목이 되는 셈입니다. 역시 시작은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로 시작되는군요. 피라미드에 얽힌 무수한 정보들 중에서 무엇을 추려 정리했을지 살피는 것 또한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직접 피라미드를 볼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바래봅니다. 콜로세움과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뒤이으며 총 18가지 건축물을 만나보고 마천루들, 국제 우주정거장,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기발한 건축물까지 꼭 알아야 할 특별한 건축물을 탐험하게 됩니다.

 

콜로세움은 거대함 뿐만 아니라 모의 해전을 위해 경기장 안을 물로 채우기도 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노트르담대성당이 철거 위기에 있을 때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분위기를 반전시켜 모금운동과 복원을 가능케 했다는 것은 문학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성바실리대성당의 아름다운 종들을 녹여 없애버린 인간의 비뚤어진 생각은 안타깝고 다행히 하나 남은 종이 여전히 16세기와 똑같은 소리를 낸다는 사실 또한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캘리포니아주 샌호제이의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입니다. 이 집에는 40개의 침실과 2개의 무도회장을 포함해서 160개의 방과 17개의 굴뚝, 3개의 엘리베이터, 10000개의 창문이 있습니다.(28p)"라니, 유령이 길을 잃도록 계획없이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가이드가 없으면 방문객 역시 길을 잃기 쉽다는 이 집은 정말 궁금합니다. 간결하기도 아름답기도 한 만화체의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생각은 꼬리를 뭅니다. 점점 시간을 지나 건축물이 진화하는 모습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입니다. 펼치면 언제든 시작되는 흥미롭고 알찬 책 속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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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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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시간은 밤(문학동네/김혜란옮김)은 스스로를 다큐멘터리 작가라 여기고(334p) 취재와 같은 글쓰기를 지속한 작가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준다. (톨스토이의 손녀 톨스타야, 페트루솁스카야보다 5년 늦게 태어나고 개혁정책, 페레스트로이카시기 데뷔한 울리츠카야와 함께) 러시아 3대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페트루솁스카야는 발전된 사회주의 국가의 아름답고 근사한 실체를 그려내지 않아 오랜 기간 출간 금지 작가로, 발표할 지면을 잃은 채 언더그라운드 연극 등 다른 길을 모색해왔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더욱 적극적인 작품 활동과 함께 폭을 넓혀 예술가로서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은 밤은 열 두 편의 단편과 표제작인 중편 시간의 밤까지 총 열 세 작품을 담고 있다. 자신을 다큐멘터리 작가라 생각했고 보육원과 가정에서 마치 지옥에 갇힌 느낌이었다(335p)”며 어린시절을 회상했듯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의도적 등장인물에서 멈추지 않고 작품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자신의 고통을 증명하는데 작가가 체험한 분위기 또한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매번 술술 읽히는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털고 다음 작품으로 편안히 넘어가는 것을 막고, 기대조차 못하게 한다.

 

밀그롬의 마지막 문장이다. 석양빛으로 가득한 5월의 말라야브로나야 거리를 검은 원피스가 어른거리며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고 밀그롬, 영원한 사람 밀그롬은 노인 냄새가 나는 작은 방의 낡은 옷감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기 인생의 박물관을 지키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26p)” 밀그롬 같은 사람들을 나는 안다. 조용히 그녀 옆에 앉아 안고 울어주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자기만의 통곡의 벽 아래서 행복하게 한숨을 내쉬는(25p) 그녀들에게 누가 잘 못 사셨네요비판할 수 있겠나.

 

어두운 운명은 단 세 쪽 분량으로 폭풍같은 한숨을 쉬게 만든다. 결론을 알면서도 괴로움의 늪을 행복하게 선택하고 자진해서 걸어 들어가는 불가항력의 삶. 어린건지 어리석은 것인지 당신 그러면 안됩니다선을 넘어 제지하고 싶다가도 소심하게 다른 삶을 선택하면 좋을텐데······ 혼잣말로 웅얼거린다. “성모 사건에는 어린 미혼모와 아이가 등장한다. 관계의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앞에 두고 그녀의 말을 옮기면, 하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너무 어렸다. 지금이었다면 결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리라.(45p)“ 하니 백만 번은 들어보고 해본 말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과식과 소화불량의 우스개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은 연극이다의 사샤, 마지막 문단 역시 독자를 붙든다. 관찰하고 연구하고 수집한 기껏 자료 정도의 삶으로 끝까지 쿨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이유들. 어떤 문제들은 어느 곳이나, 인간 세상 만국 공통이구나 새삼 놀랍기도 하다. “파냐의 가난한 마음쯤에서는 쉬어갈 수 있을까, 역시 아니다. 열악하고 폭력적인 현실은 계속되는데 자신도 모르는 채 빼앗기는 보물들, 그것도 영영 빼앗기고 그 사실조차 은폐되니 파냐 아줌마의 잔상이 먹먹하다. 슬프고 가슴아픈 쇼팽과 멘델스존은 두 노인이 견딘 시간을 독자의 눈 앞에 갖다 댄다.

 

불행하고 비참하고 침묵한 채 혼자 문제를 감당하는 여성들은 계속 등장한다. 남성은 전면에 부각되어 주동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세 얼굴은 작정하고 부당하다 외치고 싶어지는 남성이 등장한다. 자연스러운 시간 변조는 그들의 세계에 더 다가가게 만들고 세밀한 심리를 그려낸다.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으면 노이로제가 생긴다.(130p)” “아마도 료바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 아내의 한결같은 태연함을 무너뜨리고, 그 만족감에 상처를 주며, 그녀에게 일종의 행동을,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으리라. 말 또한 일종의 행동이니까.(133p)” 무의미한 비틀림은 자격지심 때문일까, 주도면밀하고 치사하고 악한 그의 행동을 합리화 해보자. 그것은 가족사때문이고 생존에 필요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지적 인간이 무의식 속 욕구불만을 해소하기에 적절한 타자, 약자라 이 목적에 매우 적당하다 예상했으나 예상을 빗나가 누구보다 강자였던 타자와의 심리전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말하고 싶다.

 

할말이 많지만 넘어가자, 넘어가자······ 페트루솁스카야는 독자를 수다장이로 만든다. “아름다운 도시로의 한 줄 요약은 라리사 시기즈문도브나의 슬픈 가족사. 영민한 라리사가 지키고 싶었던 미혼의 어린 딸과 손녀, 아름다운 장면을 기억하는 제자. 결국 실현되지 못한 천국 같던 한 날을 회상한다로 마친다. 가계도를 그리며 읽게 되는 작품은 가족 찬가시간은 밤이다. “가족 찬가는 독특한 이야기 틀을 통한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근사하다. 사건 개요 3을 보면 단 다섯 줄로 참담 인생을 완벽 구현한다. 작가의 분석적이고 유려한 문장은 끝없이 이어진다. 사건 개요 55삶은 그후로도 이어졌으니, 가족이여 영원하라.(173p)” 풍자 가득하고 표현이 생생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비극적 인간의 아등바등을 보면서 왜 자꾸 실소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준비운동이었고 시간의 밤이 열린다. 심리학자와도 같이 예리한 민낯 드러내기, 속마음 파헤쳐 햇빛 아래 차분히 펼쳐 보이기가 정점을 찍는다. 그저 애쓰고 고생하고 혼신을 다한 그녀, 시인이었던 그녀 안나 안드리아노브나,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와 이니셜이 같아 기뻐했던 그녀, ‘나의 수난자,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랑인 아들 안드레이와 나의 수난자, 나의 영원한 고통인 딸 알료나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동시에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 딸의 각각의 자녀들과 자신의 늙어 시설에 맡겨야 했던 엄마 때문에 슬펐던 그녀, 자신의 온전한 시간이라고는 깊은 밤 혼자 글 쓸 수 있었던 순간의 조각들 뿐이었던, 시간이란 자신에게 24시간일 수 없었고 찰나일 뿐이었던 그녀, 현상과 상황을 넘치도록 이해하고 있기에 더 슬프고 내색하지 않기에 더 아픈 상처, 드러난 표면 아래의 진리를 통찰하고 직면하는 그녀, 글쓰기만이 구원이었던 그녀를 깊이 만난다. 혈육이건 남이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 알고 있지 싶도록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일말의 오차없이 전달하는 능력이 놀랍다.

 

책을 읽으며 불편하고 가슴 답답한 이야기들, 너무 현실과 흡사해 민망하기까지 한 이런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무얼까, 왜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감당할 부담에 비현실의 고뇌를 보탬으로써 입체적 균형을 맞추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경고에 민감해지고 익숙함에 경종을 울리고 잿더미 속 불씨를 눈여겨 보기 위함이 아닐까, 그 불티가어쩌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올라 나무내와 온기를 내줄지도 모를 일이니까.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가림막도 커튼도 잡아뗀 생경한 글은 우리의 오감을 단련함으로써 안나 안드리아노브나가 살아내지 못했지만 살기를 원했던 삶의 가능성을, 천국의 시간을 독자에게만은 돌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녀를, 그리고 많은 그녀들을 생각하며 안나 아흐마또바의 시를 읽고 싶어지는 겨울이다.

    

 

책속에서>

어머니, , 이 얼마나 성스러운 단어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아이에게, 아이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버려질 것이다. 아아아.(시간은 밤, 225p)

 

알료나는 내 시를 창피해했다. 하지만 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시간은 밤,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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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문학동네/오진영 옮김)은 그가 리스본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책을 출판하기 원하는 페르나르두 소아르스라는 사람의 일기이자 고백록인 사실 없는 자서전을 말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르난두 페소아는 시와 산문을 포함해 다양한 영역의 저술을 남겼으나 생전 출간작은 영어와 포르투갈어 시집 총 네 권 뿐이며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저술 대부분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채 여전히 분류 작업중이라니(592p) 실로 놀랍다.

 

페소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명’, 즉 가상 인물이다.(594p)” 상상 친구를 소재로 하는 인상깊은 동화작품들을 떠올릴 때 페소아는 특정 시기의 상상 친구로써 무심히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정밀하게 형상화한다. 함부로 현실이라 부르는 대상과 생생한 비현실 속 인물(594p)을 놓고 볼 때 현실과 비현실을 마술을 시연하듯 뒤섞는다. 이렇게 생명을 불어넣고 작가의 이명으로 활약하도록 만든 가상인물은 70개가 넘고, 그 중에서도 페소아에게 가장 근접한 아바타 격 인물이 불안의 책의 서술자 페르나르두 소아르스다. 여성 페르소나 마리아 주제까지 알고 나면 페소아가 구축한 세계, 그의 천재성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불안의 책은 번호가 붙은 481개의 단상으로 한 두줄의 짧은 글부터 페이지가 넘어가는 경우까지 분량은 유동적이다. 드물게 소제목을 갖춘 글도 있고 알아보기 어렵거나, 추측했거나, 빈 칸인 경우까지 발견된 작가의 글을 최대한 근접하게 복원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거듭 변주하는 글, 개념을 정리하고 자신의 말로 정의 내리는 글, 평범한 현상을 비범한 시선과 조건으로 비틀어 보는 글, 자신 안으로 침잠하며 숲을 이야기하다 나뭇잎의 세포까지 돌연 해체시키는 글, 강조와 변화, 비유등 수사법의 온갖 치장을 은근히 장식하는 글, 유쾌한 비약으로 웃음짓게 하는 글, 극한의 상상력을 자랑하는 글, 찬성이요 또는 난 반대요 거수하게 하는 글, 염세주의자로군 싶게 한없이 소진시키는 글, 바로 어느 틈에 나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509p)” 몇 번이고 선언하는 글, 단단하고 가슴벅찬 긍정의 표를 슬쩍 건네는 글······ 페소아의 문장은 독자를 데리고 떠난다. 한 걸음씩 더 깊은 미지의 곳으로.

 

글의 후반에 페소아는 내가 인생에서 맡고 싶은 역할은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때 사회 법칙의 영향은 점점 더 적게 받고 대신 자신의 판단을 더 따를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영혼의 상처를 소독하고 처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저속함에 오염되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되고 싶은 자기 관리 교육자가 껴안을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운명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견에 완전히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운다면-주제의 성격이 그렇듯 당연히 천천히-이는 내 삶의 학문적 정채를 보상하고도 남는 꽃다발일 것이다.(479p)”라고 밝힌다. 그는 결벽의 정신이며 페트리 접시에 담긴 증류수를 연상케 한다. “불안의 책을 읽으며 가장 떠오르는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말테의 부럽고 아름다운 공간이 재현되는 느낌에 행복했다.

 

줄 친 부분은 물론 박스로 묶거나 온갖 기호로 표를 하며 읽었던 부분, 특히 글쓰기, 문학, 독서, 부조리를 다루는, 그리고 다시 읽어야 할 그 많은 부분을 다 옮길 수 없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책,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책, 동시에 끝나버림이 아쉽기 그지없는 책이다. 이제 페소아를 조금이나마 더 기억하기 위해 타부키의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을 읽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수많은 이명 속에서 익명이었던 페소아 자체 같이 슬프고도 사실적이다. 내일이면 나 역시, 그렇다, 느끼고 생각하는 영혼이며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인 나 역시 이 거리를 더 이상 지나지 않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어떻게 됐지?’라고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587p)”

 

책 속에서>

그러면서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모두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인류가 이렇게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의식 수준이 높든 낮든, 정체해 있든 활발히 움직이든,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똑같이 무심하고, 각자의 목적을 똑같이 포기하고, 인생을 똑같이 느끼면서 살아간다.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는 인류를 떠올린다.(4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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