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부터 나일까? 언제부터 나일까? - 생명과학과 자아 탐색 발견의 첫걸음 4
이고은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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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를 보내며 누구든 해볼 만한 고민을 2부로 나누어 생명과학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책.

1부는 ‘나’를 중심으로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을 담고 있고, 2부는 ‘우리’를 중심으로 각자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존중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혐오와 멸시로 가득한 세상에서 특히 2부는 필수적으로 읽고 짚어가야 하는 부분.

이 책은 나는 누구인지, 언제부터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내 몸을 기존의 몸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면 어디까지 내 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생물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유전에 의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단정 지을 수 있는지 등등 철학적이고 청소년이 생각해 보면 좋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성인이 읽어도 나쁘지 않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와 함께 읽으면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듯.

생명과학이라는 분야를 쉽고 철학적이며 알차게 읽어낼 수 있도록 융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아예 이쪽 분야를 모른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크게 두껍지 않은 책이라 한두 시간 투자하면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원자는 새롭게 창조되거나 파괴되는 것 없이 재활용된다는 사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과거에는 식물이었거나, 공룡의 근육을 이루는 성분이었을 거라는 것. - P.64
인간은, 생물은, 나아가 세상은 다른 존재가 쓰다 버린 조각을 짜 맞추어 재구성된다. 나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도 언젠가는 갈가리 흩어져 세상을 방황하다, 새로운 생물이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에너지로써 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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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코코 샤넬 전기의 결정판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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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샤넬이 아닌 ‘인간 샤넬’에 대한 면밀한 이야기를 다룬 책. 저자 앙리 지델은 샤넬이라는 럭셔리 브랜드를 만든 가브리엘 샤넬의 삶을 철저한 조사와 연구,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방랑 기질이 다분한 샤넬가에서 태어난 가브리엘이 열두 살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수도원에서 자란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성공, 쇠락, 재기, 사망까지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았다. 소설인듯 수기인듯 물흐르듯 잘 읽히는 게 이 책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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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바느질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손가락만 연거푸 찔리기 일쑤였던 어린 소녀가 세계를 주름 잡을 의상 디자이너가 되리라고는 가브리엘 자신으로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브리엘 가문의 사람들은 방랑의 운명을 지고 태어나는 것일가? 가브리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가브리엘마저도, 인생 자체가 방랑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독립하여 성인기에는 낮에는 보조 재봉사로, 밤에는 카바레에서 가수로 일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샤넬. 코코라는 별명은 가수로 일하며 가브리엘이 부른 노래에서 따서 지어진 것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이 창부 같아 싫었다고 한다.

거기에 가정환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다분했던 가브리엘은 이를 계기로 더욱 성공을 다짐한다. 직업도 직업이지만,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사랑을 했던 것이 가브리엘의 방랑적인 인생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었으며, 이후에도 만난 여러 인연들과도 결국 정착의 결실이라고 여겨지는 결혼까지는 도달할 수 없었다.

새로운 소재의 독창적 패션, 아름다운 액세서리, 마릴린 먼로가 자기 전에 입었다는 향수 샤넬 N°5까지. 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삶이었지만, 인간의 인생으로서는 어쩐지 외로운 삶의 마침표를 찍은 듯했던 가브리엘. 그가 나치 스파이였다는 부분은 호의적일 수 없지만, 이를 제외하고 본다면 연민이 가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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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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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실험적인……. 이건 뭐지? 제목부터 당혹스러운데? 당최 무슨 말이지? 읽어 내려갈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 마디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의문을 품게 되었던 참으로도 이상하고 독특한 소설이었다.

아니,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내가 그간 읽었던 소설의 ‘형식’을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등장인물 간의 명확한 스토리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갈등도 마땅히 없고 그저 자유롭게 흩뿌려진 형형색색의 물감 파편들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누군가의 무의식을 활자로 옮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읽다보면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는 마치 논문에나 쓸 법한 참고문헌을 각 이야기의 끝에 수록해 놓았다. 이것 참 난해하고, 산만하고, 전문적이고… 신기하다. 활자로 현대미술을 보는 듯하다.

오기가 샘솟아 정지돈 작가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이전 인터뷰도 찾아봤다. 뭐랄까, 정지돈 작가는 마치 ‘탐구’하듯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글에 담는 것 같았다.

나는 정지돈 작가의 글이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작가를 따라 탐구하며 하나씩 이야기를 맞춰가는….

이야기에 연결성이 막연하여 얼핏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독자로부터 사유의 계기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지.

‘모빌리티’를 주제로 한 네 개의 픽션들. 이제껏 우리가 소설이라고 생각한 범주의 틀을 깨고, 마치 고속으로 움직이는 탈 것을 타고 마구잡이로 달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문장들의 모음.

일관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가 다각도로 달려갈 수 있게끔 문학적 시야를 틔워주는 신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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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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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 등 경이로운 감각의 세계를 인류의 역사,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인류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엮어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평소엔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의 세계를 저자의 뛰어난 관찰력과 유려한 문장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권태로움에 휩싸인 채, 무언가 가슴을 뛰게 하는 예술적 영감이 퇴색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본 책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풍부한 감수성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감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 후각에 대한 생각.

언어로 서술한 감각의 세계는 참 다채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특히 후각 파트가 가장 처음으로 자리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냄새 맡는 걸 참 좋아해서….)

새 책 냄새, 달콤한 핸드크림 냄새, 갓 짜낸 샴푸의 냄새, 포근한 체취, 계절마다 다른 공기의 냄새. 냄새에는 여러 가지 기억이 담겨있다. 어릴 적 먹었던 꼬치 분식, 나른했던 주말 오후, 깊이 사랑했던 사람까지.

P.19 -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냄새는 선행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언어만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더욱 애틋하고 매력적이다. 가령, ‘오렌지 냄새’는 오렌지의 냄새를 직접 맡아본 사람이어야 그 향을 떠올림과 동시에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살았던 그 공간이나,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들, 오롯이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냄새들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

- 촉각에 대한 생각.

본 책에서 말하길, 인간이든 동물이든 주기적인 신체 접촉이 이루어져야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신체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 빛을 처음 맞게 될 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을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아닌 ‘타자’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한 평생 누군가의 따뜻한 품을 갈망하는 것은, 이렇듯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서가 아닐까.

P.213 - 다른 사람을 만져주는 것은 남의 손길을 받는 것과 똑같이 치료의 힘이 있다. 신체 접촉을 제공하는 치료자 자신도 함께 치료받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닿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직접 닿는 것 또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라 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다른 감각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촉각을 잃게 되면 얼마나 공허할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텅빈 우주를 영원히 유영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몸, 보드라운 이불, 나를 위협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거니까.

*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각’. 맡고, 닿고, 맛보고, 듣고, 보고,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나의 몸과 감각에 유독 감사를 표하고 싶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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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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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선홍빛 일러스트,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벨벳처럼 부드럽게 쓸리는 매끄러운 표지. 처음 우유, 피, 열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책의 외형은 참 매력적이었다.

그렇다면 내용도 과연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매력적일까?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다양한 매체에서의 강력한 추천사를 살핀 뒤 기대를 갖고 읽어봤다.

총 열한 개의 이야기가 포함된 단편집으로, 신기하게도 모든 이야기가 뼈 마디마디가 이어진 것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 특유의 ‘불안’하고 ‘끈적’하고 ‘파괴’적인 문체가 모든 이야기 곳곳에 잘 버무려져 있다고 느꼈다.

이 단편집의 장르는… 기존의 명사나 형용사 등으로는 정리하기 어렵다. 이 난해하고도 마음에 혼란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나의 단어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고민하다가 저자의 이름인 ‘모니즈’로 장르를 정의해본다. 때로는 누군가의 이름 자체가 장르가 되는 것처럼.

단편집에는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불안정한 사춘기를 겪는 두 소녀, 유산 이후 환상을 보는 여자, 교회를 불태우고 싶어 하는 소녀, 항암 치료를 거부하는 여자 등등.

나는 그중에서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하고, 첫 번째 이야기인 ‘우유, 피, 열’이 가장 마음에 닿았다.

칼로 서로의 손바닥을 그어 새하얀 우유에 피를 떨군 뒤, 연홍빛으로 변한 그 액체를 마치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삼키는 두 소녀의 모습으로 막을 여는 혼란스러운 이야기였다.

단편집의 전체적인 분위기의 담판을 짓는 데 좋은 시작이자 큰 영향이 된 작품이라고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혼란스러웠던 본인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특히 인상 깊었다.

우유, 피, 열의 두 소녀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간다.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 기분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기엔 충분하다. 사춘기 시절에 더욱 영향력을 주는 그 존재는 바로 ‘친구’일 테다.

자아에 대한 혼란, 변화하는 몸에 대한 위화감, 무얼 해도 지울 수 없는 고리타분함. 세상을 향한 지긋지긋하고 권태로운 감정들.

우유, 피, 열은 남들 눈엔 월경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애들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런 감정과 고뇌를 느낄 수 있다고 쏘아붙이는 듯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본인도 그러했고. 비록 함께 피를 나눠마실 자매 같은 친구는 없었지만 말이다.

*

유산 이후 환상을 보는 여자의 이야기인 두 번째 단편 ‘향연’도 기억에 남는다.

대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상실을 다룬 내용이라 공감이 됐다. 그것이 화자에게는 아기였고, 본인에게는 아기는 아니지만 다른 소중한 존재를 떠올리게 했으니 비슷한 결에서 연민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잊히지 않을 것만 같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에 대한 상실감과 분열, 절망을 잘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다수였지만, 이따금 이런 추상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 참 좋다. 전반적으로는 억압과 상실을 노래하는 단편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관적으로 이러한 감성을 잘 이끌어간 묶음집이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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