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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지평>을 통해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그가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워낙 읽어야할 책들이 많았기에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을 미뤄두고 었었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됐다.
모디아노는 자신이 그동안 써온 소설들이 결국 하나의 소설이었다고 했다. 20편이 넘는 소설들을 썼지만 이 모든 소설들이 '기억'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라는 것이다. 물론 이 <지평>도 그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10년에 나온 이 소설은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조금은 희망찬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인 장 보스망스는 40년 전 사귀었던 마르가레트 르 코즈의 기억을 회상한다. 장 보스망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작가를 닮았다. 보스망스는 190이 넘는 장신에 이상한 부모때문에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보스망스는 안개속을 부유하는 희뿌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며, 연인 마르가레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보스망스는 이런 퍼즐 맞추기를 통해 그의 '나쁜 부모들, 본연의 무질서, 젊은 날의 실수들'(p.180)을 지우고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꿈을 꾼다.
1. '기억의 예술'
<지평>은 영화기법으로 치면 '플래시팩'이라고 할 수 있는 40년 전 과거회상장면이 현재의 장면 사이사이를 틈입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글을 읽으면서 흐름을 놓치기 쉽다. 일부 독자들은 이런 잦은 회상장면을 불평하며 읽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구조는 실제 우리 삶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이어서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우선 단순하게 액자식 구성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삶에 있어서 '기억'이라는 것은 짜임새 있는 구조속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감각의 촉발'로 느닷없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거대한 '기억'의 서사가 마들렌 조각을 커피에 찍어먹는 그 순간의 후각적, 시각적 감각에 의해서 촉발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아바타>는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잘 표현한 영화라면, 영화<인셉션>은 누구나가 다 생각하는 것을 잘 표현한 영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이나 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모두 '기억과 회상'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사실은 매우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은 그것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기억'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탁월하고 서정적으로 잘 표현하는 그는 타고난 '기억의 예술가'다.
2. '시간의 통로'
작가는 "지평이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포개져 혼재하는 시공간"이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바로 이 '시간의 혼재'에 대한 개념이었다. 사실 나도 이런 '시간의 혼재'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소설을 읽다 이 대목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나는 중학교 시절 연신내를 걷다가 반 친구 A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길에서 마주친 그 친구 A는 나와 같은 또래가 아니라 다 큰 어른이었다. 즉, 나는 그때 10년 후 어른이 된 친구 A를 만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사람을 보고 단순히 '친구 A를 닮은 사람이네' 혹은 '친구 A의 삼촌이나 먼 친척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당시 나는 그 사람이 친구 A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무척 소름이 돋았었다. 웬지 거울 속에도 10년 후 나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아 무서웠었다.
이런 엉뚱한 인지부조화(?) 현상을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런 주제를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다듬어 온 것 같다. 소설 속 보스망스는 파리 강변을 걷다 우연히 보게 된 젊은 여성을 과거의 마르가레트라고 확신한다. 비록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는 지금 같은 거리를 걷고있지만, 다른 '시간의 통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보스망스는 언젠가 그와 그녀가 같은 '시간의 통로'를 걷게되기를 희망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 속이 꽉 차오르는 듯한 아득한 감정을 느꼈다. 이 장면엔 마치 '희뿌연 안개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을 볼 때 느껴지는 처연함이 있다. '회상'은 시각적 한계를 뛰어넘어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우리의 머릿속에서 재생하지만, '회상'은 근본적으로 과거나 현재에 어떠한 영향도 줄수가 없다. 이런 회상의 근본속성인 '호환불가능성'에서 비롯한 비극의 어떤 지점을 파트릭 모디아노는 끊임없이 변주해왔다.
3. 글을 맺으며
나는 이런 두 지점에서 <지평>을 흥미롭게 봤다. 하지만, 당분간은-아마 꽤 오랫동안- 또 다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지 않을 것 같다. 그건 <지평>이 재미없었단 뜻이 아니라, 나는 이미 <지평>같은 소설을 읽지 않아도 '기억'이란 화두를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전 늘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습관이 늘 '불면과 악몽'이라는 안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지만, 딱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젯밤 나는 꿈속에서 어떤 도시의 푸른 거리에서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기억들과 씨름하며 괴로워 하고 있는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인간은 누구였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