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의 큰 주제를 꼽으라면,

18세기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루소 정도가 되지 않을까.

구매목록에 전공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책들이 몇권 포함돼 있다.

 

 

 

 

 

 

 

 

 

 

 

 

 

 

 

 

 

 

 

 

 

 

 

 

 

 

 

 

 

 

 

우선,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와 <사회계약론 연구:홉스·로크·루소를 중심으로>를 구입했다.

 

프랑스혁명 시기 발간되었던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팜플렛은 그 간명한 메시지만으로 도시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 프랑스 사회는 귀족, 성직자라는 2가지 특권 계급과 나머지 '제3신분'으로 표현되는 평민의 3계급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었는데, 그중 '제3신분' 계급은 귀족들의 봉권적 특권행사에 치이고, 성직자들의 20분의 1세에 치이고, 정부의 가혹한 납세부담에 치이는 3중고를 겪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동네북'이었다.

 

이러한 '제3신분'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자신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부르주아를 위시한 계몽주의 철학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시에예스는 그러한 프랑스 혁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제3신분은 현재까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3신분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엇이라도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그 무엇이라도' 되보겠다는 것!(지금봐도 표현이 참 처절하다) 이것이 당시 혁명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이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분들은 혁명에 대한 정통주의적 해석을 담고 있는, 즉 프랑스 혁명의 '수학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을 추천한다. 우리나라에는 노명식 교수님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를 뛰어넘는 개론서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계약론 연구> 이책은 주말에 빠르게 읽어야 한다..고등학교 사회문화 과목을 선택했다면, 아마 수업시간에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차이를 표를 그려가며 공부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표의 심화-확장팩이다!  '강정인' 이름 하나보고 구매했다. 

 

 

 

 

 

 

 

 

 

 

 

 

 

 

 

언젠가 꼭 다 읽어봐야지 했던 장 자크 루소의 고백시리즈. <고백1>을 오랜 기간 읽고 난 후, <고백2>를 구매했다. 분량이 훨씬 두툼하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을 집어들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에픽하이의 신곡 '개화'를 듣고 그 가사에 심취하던 때였다. 역시 타블로는 영문과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픽하이의 신곡과 루소의 고백록을 거칠게 요약하면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부와 명예 모든 것을 이뤘지만, 결국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는 늙은이의 엄살 혹은 자기변론'

 

기억에 대한 처절한 해부가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을 담고 있는 <고백1>보다 중년과 후반기의 삶을 그린 <고백2>가 아마 농도가 더 짙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책을 다 읽고 언젠가 리뷰를 쓸 생각이다(?).

 

다음은 시와 소설책 한 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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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나를 노출하는 일은 언제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글의 형태가 되었든, 사진이 되었든.

 

 

문제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사는,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글이든, 사진이든.

 

인스타그램은 노출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더 직관적이다. 정사각형의 프레임에 아름다운 것들만 담으면 된다. 프레이밍을 통해 인생의 지옥같은 요소들은 손쉽게 제거된다.

 

글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발화자의 자아를 조금씩 누출시키기 마련이라서 더욱 쓰기가 까다롭다. 사실 글 한편 쓴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 가만히 있으면 남에게 괜히 상처줄 일도 없고 다칠 일도 없다.

 

그런데 난 왜 또 이짓을 또 시작하게 됐을까.

 

시작이 너무 거창했는데, 난 그냥 감정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손에 넣었을 때 그 행복한 감정.

 

사실 그 행복의 경험을 알베르 까뮈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옮겨봤다. 책보다 서문이 더 유명하다는, 장 그르니에의 <섬>에 수록된 알베르 까뮈의 서문의 한 대목.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걸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앞으로는 완결된 글이 아닌 짧은 감상들만이라도 적어보려 한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글쓰기가 퇴화될까봐 두렵다ㅠㅠ

+ 내용은 책을 사게 된 간단한 이유 같은 것, 관련분야의 추천도서, 그리고 나에 대한 자책(stupid!)이 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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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집에 갔다. 통인동 154번지에 있는 이상(김해경)의 집은 이상이 3세부터 23세까지 거주했던 그의 백부 김연필의 집이다.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므로 그는 이 집에서 삶 대부분을 보낸 것이다.

 

  이상의 문학은 난해하다. 난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는 척하기도 쉽다. 오늘 강연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이하 신형)는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겠다며 운을 떼었다. 이상의 여러 작품 중 이상이 ‘37년 봄,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 발표되었던 <봉별기>를 위주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봉별기>는 이상이 1933년 금홍을 처음 만나고 ‘36년 헤어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A4용지 4매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신형은 그의 나머지 소설들(<지주회시>,<날개>,<종생기>,<동해>)에 비해 비교적 쉽고 간결하게 쓰여 있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봉별기>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일 것이라고 했다.

 

  산문에 가까운 글이라 그런지, 이상의 아주 ‘이상한’ 사랑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 듯하다. 1933년, 이상은 처음 결핵을 앓고 요양을 갔던 배천온천에서 금홍을 만난다. 금홍의 직업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으나, 아마 정식 기생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남자들과 술을 마시며 몸을 파는 여자인 듯하다. 이상은 금홍이를 사랑했지만, 그는 마치 포주처럼 그녀를 불란서 유학생 한량에게 ‘권하고’, 옆방에 묵고 있는 C라는 변호사에게도 ‘권한다.’ 그리고 금홍은 그들에게서 받은 십 원 지폐들을 펴 보이며 이상에게 자랑까지 해 보인다.

 

  이 ‘이상한 사랑’의 모습은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들 안에서 이미 진실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신형은 이를 ‘사랑의 기준은 관계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배천 온천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 이상과 금홍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금홍의 바깥출입은 더 빈번해진다. 이상은 ‘남의 아내라는 것은 정조를 지켜야 하느니라’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를 내 나태한 생활에서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우정(일부러) 간음하였다고’ 호의로 해석해본다. 그러나 그는 금홍이 밖에 나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온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에 ‘숨길 것 있나? 숨기지 않아도 좋지. 자랑을 해도 좋지’라며 더 서운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은 아무 이유도 없이 금홍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난다.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금홍은 윗목에 ‘때 묻은 버선’ 하나만을 두고 나가버렸다.

     

  금홍과 헤어진 후 1936년 6월, 이상은 변동림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몇 편의 시와 소설을 쓰다 한국에서 더는 살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경으로 가겠다고 호언을 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이상은 금홍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둘은 다시 예전과 같이 술상에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그들은 결국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그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있는 거라곤 병든 육체뿐인 이상,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배운 거라곤 남자들과 희롱하고 몸 파는 것밖에 없는 금홍.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없음’을 주고받는다. 신형은 자신이 최근 낸 영화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바로 이들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이 ‘없음을 주고받는 사랑’에 대해서 언급한 대목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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