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집에 갔다. 통인동 154번지에 있는 이상(김해경)의 집은 이상이 3세부터 23세까지 거주했던 그의 백부 김연필의 집이다.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므로 그는 이 집에서 삶 대부분을 보낸 것이다.
이상의 문학은 난해하다. 난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는 척하기도 쉽다. 오늘 강연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이하 신형)는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겠다며 운을 떼었다. 이상의 여러 작품 중 이상이 ‘37년 봄,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 발표되었던 <봉별기>를 위주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봉별기>는 이상이 1933년 금홍을 처음 만나고 ‘36년 헤어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A4용지 4매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신형은 그의 나머지 소설들(<지주회시>,<날개>,<종생기>,<동해>)에 비해 비교적 쉽고 간결하게 쓰여 있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봉별기>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일 것이라고 했다.
산문에 가까운 글이라 그런지, 이상의 아주 ‘이상한’ 사랑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 듯하다. 1933년, 이상은 처음 결핵을 앓고 요양을 갔던 배천온천에서 금홍을 만난다. 금홍의 직업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으나, 아마 정식 기생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남자들과 술을 마시며 몸을 파는 여자인 듯하다. 이상은 금홍이를 사랑했지만, 그는 마치 포주처럼 그녀를 불란서 유학생 한량에게 ‘권하고’, 옆방에 묵고 있는 C라는 변호사에게도 ‘권한다.’ 그리고 금홍은 그들에게서 받은 십 원 지폐들을 펴 보이며 이상에게 자랑까지 해 보인다.
이 ‘이상한 사랑’의 모습은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들 안에서 이미 진실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신형은 이를 ‘사랑의 기준은 관계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배천 온천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 이상과 금홍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금홍의 바깥출입은 더 빈번해진다. 이상은 ‘남의 아내라는 것은 정조를 지켜야 하느니라’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를 내 나태한 생활에서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우정(일부러) 간음하였다고’ 호의로 해석해본다. 그러나 그는 금홍이 밖에 나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온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에 ‘숨길 것 있나? 숨기지 않아도 좋지. 자랑을 해도 좋지’라며 더 서운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은 아무 이유도 없이 금홍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난다.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금홍은 윗목에 ‘때 묻은 버선’ 하나만을 두고 나가버렸다.
금홍과 헤어진 후 1936년 6월, 이상은 변동림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몇 편의 시와 소설을 쓰다 한국에서 더는 살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경으로 가겠다고 호언을 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이상은 금홍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둘은 다시 예전과 같이 술상에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그들은 결국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그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있는 거라곤 병든 육체뿐인 이상,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배운 거라곤 남자들과 희롱하고 몸 파는 것밖에 없는 금홍.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없음’을 주고받는다. 신형은 자신이 최근 낸 영화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바로 이들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이 ‘없음을 주고받는 사랑’에 대해서 언급한 대목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