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동시에 조율되는 과정입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의 의도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감정과 생각을 준비합니다. 순서 바꾸기는 단순히 물리적인 차례의 교환이 아니라 ‘공동 사고Co-thinking‘와 ‘공동 감정co-feeling‘을 전제로 한 상호 조율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예측과 공감이 맞물리며 작동할 때, 대화는 진정한 의미의 상호주관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순서 바꾸기야말로 사회적 지능의 바탕이며, 관계를 유지시키는 가장 미묘한 형태의 기술입니다. - P233

토마셀로는 ‘진술적 가리키기‘와 더불어 또 다른 인간만의
‘가리키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보 제공적 가리키기 informativepointing‘입니다. 엄마가 떨어뜨린 펜을 찾으려 할 때, 아이가 손가락을 뻗어 펜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이것은 아이가 펜을 갖고 싶은 것도(명령), 단순히 같이 보자고 하는 것도(진술)도 아닙니다.
엄마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이타적 행동입니다.  바로 타인을 돕기 위한 이타적 행동, 즉 ‘협력적 의사소통‘이야말로 인간 언어를 유인원의 신호와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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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걷고 있을 때다.
걸음을 멈추면 사고가 멈추게 되므로
다리가 움직일 때만 뇌가 작동한다."

-장자크루소 - P14

걷기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고, 내면을 자신과 차단시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역시 운전을 하고, 항상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그러나 걷 - P19

기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이동수단이다. 걷기로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다. 걷기는 정신을 맑게 해 꼼꼼히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몸과 뇌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자전거, 기차, 버스와 같은 이동 수단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주변 환경과 단절시킨다. 기계적으로 전진하고, 때로는 유리 가림막 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며,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 잡히고 새로운 노래를 찾아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거기엔 매우 특이한 수동성이 있다. 바로 앉아 있는데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걷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걷기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발이 다른 발보다 앞서 나가고 자신의 동력을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고 우리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P20

달리기와 걷기 또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특별히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며 단거리에서 호랑이와 가젤과 같은 다른 종들에게 뒤쳐진다. 반면에 걷기에서는 그 어떤 종에 비해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구위에 아주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비밀 열쇠다. 인간은 모든 동물들 중 가장 넓게 확산된 종으로, 지구의 북극과 남극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살고 있다. 걷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탐구하고 경계를 더욱 확장할 수 있게 했다. 간혹 배를 타고 위험한 여정을 통해 인근에 있는 섬으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이후엔 역시 걷기를 통해 탐험을 계 - P58

속 이어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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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이 책의 논의는 오직 진실의 가치와 중요성만을 다루며,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또는 진실을 발견하는 우리의 경험의 가치나 중요성은 다루지 않는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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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보헤미안들이 영적인 관심을 삶의 전면에 내세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실제적인 문제를 태만히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생존할 만한 일을 찾는 데 안간힘을 써야 했으며, 이렇게 되자영을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고 몸 생각을 해야 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심지어 물질주의적이라고 욕하던 바쁜 판사나 약사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 P380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 P384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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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 P298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그럴 때 단단한 벽 뒤에 고립된 채 혼자 의기양양하게 - P333

살아가고 싶은 욕구는 약화될 것이며, 이것은 심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이것이 공동체의 윤리에 적용할 수 있는 기독교적 통찰이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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