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이란 개념이 화선지 위의 먹물처럼 내게스민 건 그때 내가 움켜쥐고 있던 문제의식과 맥이 닿아 있어서였을것이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는 현장(주로 트라우마 현장)에서 생긴 문제의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심리치유와 관련해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전문가로서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의심리학이 아닌 적정한 심리학이 필요하다! - P13
왜 그럴까. 왜 심리치유 전문가일수록 현장에서 실패하는가. 사람목숨이 경각에 달린 현장에서 전문가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많은 경우 그렇다면 그때의 자격증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있는가내가 관련 자격증을 가졌으니 오해를 무릅쓰고 정신의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정신의학은 신경증, 정신 질환 등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임상적, 학문적 틀 위에 세워진 의학의 한 분야다. 이 틀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고통과 갈등을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통을 유지한다. 그래서 정신의학은 사람을 ‘사람‘보다는 ‘환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들에게는 수련의 때부터 시작된 - P15
거의 무의식적 과정이다. 그런 시선은 나를 비롯한 정신과 의사들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사람 마음의 유익을 위해서 복무해야 하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이 학문 본연의 역할과 다르게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와 서서히 괴리된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 P16
사람의 삶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 등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존재 자체다. 막대한 명예나 부를 일군 사람이든 비극적인 트라우마 피해자든 그들의 외적 조건 이 - P23
전에 그들이 한 명의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그들의 존재 내면에서 그들이 살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나는 돌에새기듯 깨달았다. 두 집단을 양극단으로 해서 그 사이 어느 한 지점에 속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진실이다. 그 깨달음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P24
공황발작은 곧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지만 절대 멎지 않으며, 죽을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지만 물리적으론 절대 죽지 않는 병이다. 공황발작 자체로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자기 소멸의 끝에서 탈진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을 거둬들이는 경우는 꽤 있다. 심장이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워가며 살던 삶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기진맥진해져서 생 전체에서 마침내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 P41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 P48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 P59
이런 관계들 속에서 다 가진 자는 금은 넘쳐나는데 쌀은 한줌도없는 이상한 기근을 겪는다. 금이 없어도 쌀이 있으면 살 수 있지만금이 산더미같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존재에 대한 주목이 삶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질주하다 보면 현실에선 아무 쓸모도 없는데 사이버 세상에선 떼부자인 다 가진 자처럼 되기 십상이다. 다 가진 것 같지만 금괴 더미 안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블랙코미디 같지만 마음의 영역에선 이런 일들이 차고 넘친다. - P67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있으면 사람은 산다. - P109
심리적 CPR은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감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 P111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 P121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얻게 되는 무엇이다. - P125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보상받았다는 느낌을 받 - P142
는다.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람은 그런 외형에 덜 휘둘리며 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감의 힘은 그렇게 입체적이다. - P143
치유란 특정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던져주는 전문적인 코멘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뒤엉킨 자동차들처럼 상처 입은 자기 마음결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보고 만지고 확인하고 느끼며 분리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뒤엉켜 있던 마음결을 안개가 걷힌 후의 풍경 보듯 하나씩 또렷이 보는 일이다. "아, 그때 내 마음이 그랬었구나. 그래서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이 나왔던 거구나. 내가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던 거구나‘ - P152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이 그의 마음과는 별개라는 사실만 알아도마음껏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의 걸림돌이 사라진다. 마음껏 공감해주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진 흉포한 마음조차 움직인다. 반대로 평소제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도 그가 한 행동 뒤의 마음을 제대로 공감받지 못하면 그다운 합리성과 논리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 논리성은 오히려 삐뚤어진 마음을 옹호하는 궤변을 펼치는 데 동원돼 본질과는 더욱 멀어진다. 평소 스마트한 사고와 태도로 인정받던 사람이 이해 불가할 정도로 억지와 비상식을 주장하는 경우, 공감받지 못해 그럴 가능성이 높다. - P163
친구를 때린 아이와 엄마의 관계처럼 부모와 미성년자식 간에 생기는 대부분의 정서적 갈등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부모만 잘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부모가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과하고 제대로 공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허무할 만큼 어렵지 않게 갈등이 풀린다.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공감자는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큰오빠를 보지않겠다고 한 동생의 마음도 옳다. - P171
문이 ‘존재 자체‘라면 문고리는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이다.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확하게 눈을 포개고 공감할 때사람의 속마음은 결정적으로 열린다. 공감은 그 문고리를 돌리는 힘이다. - P173
공감을 주고 받는 일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하는 건지 알아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 - P179
관계에서의 상처는 경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얘는 딱 자기 아빠야, 얘는 딱 어릴 적 나야, 얘는 나랑 정반대야‘와 같은 말들은 내 아이를 부모와의 연결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 ‘내가 아닌 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다. 자식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게으른 시각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다. 결국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 P198
경계란 개념은 이상향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너와 나를 갑과 을로 나눌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 모든 사람은 갑 대 갑이다. 갑과 을 같은 사회적 관계로 너와 나의 관계 전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인지할 수 있어도 갑을관계를 갑갑의 관계로 바꿀 수 있다. - P205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자전거의 왼쪽 페달이라면 자기를 살펴보는 일은 동시에 돌아가는 오른쪽 페달이다. 한쪽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즉시 자전거는 멈추고 넘어진다. 자기에 대한 성찰이멈추는 순간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바로 멈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기 성찰의 부재는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된다. - P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