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이제 우리의 유대를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라, 불평등과 부정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긍정 에너지를 발휘하며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자기 경영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질병이 되고 말았다. 공감과 경청도 에너지나 정신적 건강을 소모하는 행위, 일종의 전염성 질병에 노출되는 행위로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그 맥락이 무엇이건 부정적 기운을 퍼뜨리는 사람은 이제 감정 쓰레기통 같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통을 질병과 동일시하는 현대문화에서는 고통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홀로 참는 것, 알아서 혼자 해결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관계와 헌신의 표지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 P63

감정은 현재의 맥락에 따라 변화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양가적이기에 심리적 건강에 좋다 혹은 나쁘다를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해 단호한 판단을 내리라는 조언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심적 건강이라는 기준은 얼핏 보기에는 명확하고 절대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시간과 상황에 적용 가능한 절대적 판단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P90

감정의 복잡성과 변화 가능성에 열린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특히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자신에게 치우친 태도를 보이는 자기 고양적 편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가 넘치는 시대지만 굳이 그런 조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좋게 생각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인간은 자신이타인보다 우월할 뿐 아니라 더 선량하다고도 생각한다. 타인의 잘못은 쉽게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며 자기 정당화를 일삼고,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추상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편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편향을 범하리라고는 생각지못한다." - P91

공동체 바깥에서 비非동기화되고 비非체화된 형태로 일어나는인터넷 미디어의 의사소통 형식은 관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과 의무마저 저버린 채 돌연히 관계를 단절하는 행동을 쉽게 생각하도록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자신이 속한 맥락에 대해, 자신의 친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가들과 익명 조언자들이 건네는 조언 그리고 그 조언들이 일반화하는 감수성에 따라 그지없이 일방적인 ‘선택‘을 내린다. 우리의 눈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조언을 받는 일이 흔해진 만큼, 상대의 눈을 보지 않고 관계 맺기와맺지 않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만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에게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
즉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도 도피하기를 택한다. - P105

의식적 선택이 유대감의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위해 크고 작은 고통을 함께 인내하는 경험 자체가 유대감의 바탕이 되고, 이렇게 형성된 유대감은 서로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한 바탕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고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우정이 종교와 마찬가지로 의례를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는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대화에 참여하며,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우정의 필수 요소라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공통의 목표와 의례를 제공하는 환경에 속하는 것이 우정에 중요한 맥락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쩌면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가 오래간다는 일상적인 말 또한 이와 비슷한 통찰에 기반하는지도 모른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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