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소통은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율과 감각의 교차편집과 같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말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I에게는 인간이 수만 년동안 같이 느끼고, 함께 형성해 온 비언어적 소통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잃어버린
‘소통의 원형‘, 말하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그 상호작용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것입니다. - P11

늙고 상투적인 백인 정치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 친근한 비언어적 표현은 이후 오바마가 주장하는 ‘희망과 변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선출된 후, 오바마는 주먹 인사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었습니다. 백악관의 청소부, 바비큐 레스토랑의 직원, 혹은 길거리의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오바마의 주먹 인사에 지지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아주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행동은 그의 피부색에 대한 미국 사회의 오래된 편견을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 P31

상하가 명확한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팔짱 끼는 행동을 자주 합니다. 권위를 세우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여기기 쉽지만, 심리학자의 눈에는 그저 불안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외롭습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혼자해야 하고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그래서 자꾸 자신을 만지는 겁니다.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다는 뜻입니다. (보편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팔짱을 더 자주 낍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가 더 비겁해집니다.) - P41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의 소통적 눈맞춤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미숙한 개체‘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혼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제 몸을 가눌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개체‘가 되는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성숙한 개체‘로 태어나지만 인간의 아기만 꼼짝 못하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스스로 일어서서 자유롭게 걷기까지 생후 1년은 족히 걸립니다.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위대한 겁니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엄마 품 안에서의 ‘터치‘, ‘눈맞춤‘과 같은
‘상호작용적 경험‘을 통해 인간 문명의 기초를 습득하기 때문입니다. - P62

감정 표현을 해석하는 방식도 동서양이 다릅니다. 서양에서는 ‘흥분‘, ‘열정‘, ‘감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감정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동양에서는 이를 경박하고 자기통제가 부족한 것으로 여깁니다. 문화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입을 다물고 미소 짓는 표정, - P102

즉 낮은 수준의 감정 표현을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동서양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오늘날, 정서 표현과 해석의 양상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 P103

감정노동자에게 감정 표현은 자율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뉴얼에 따라 표준화된 방식으로 아무 의식 없이 반복되는 행위일뿐입니다.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이지요. 반복되는 ‘감정 연기‘로 지쳐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진정성authenticity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본질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정서 표현으로 이뤄지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자체도 불가능해집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결국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으로 점차 타인과 심리적거리감을 갖게 됩니다 - P115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너실제 심리학 연구 결과도 그렇습니다. 폴란드 오폴레대학교 심리학과의 마르친 모론Marcin Moron 교수 등이 2024년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수염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외모를 멋있게 가꾸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평가나 자기방어와 같은 심리적 기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과시욕구가 높거나 경쟁적 환경에 노출된 남성일수록 굵고 두드러진 수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사회적 스트레스나 자기 노출의 두려움이 큰 경우에도 수염을 심리적 방패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남성일수록 경쟁적 동기가 작동하고, 중장년층에서는 자기방어의 동기가 더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 P122

‘의태‘로 번역되는 ‘미미크리‘란 어떤 생물이 자신을 다른 생물이나 환경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생존을 위해 나뭇가지나 잎사귀를 닮은 곤충이나 주변 환경의 색과 형태를 재현하는 문어처럼 생명체가 다른 존재나 환경과 비슷하게 진화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흉내 내는 능력, 즉 미메시스는 이러한 생물학적 현상을 뛰어넘습니다. 외적 현상을 모방하는 미미크리는 생물체를 세상과 연결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미메시스는 세상을 내면화하여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기억, 서술, 소통 능력이 확장됩니다. - P134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중얼거립니다. 가끔은 중얼거리는 내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혹시라도 남이 들었을까봐 부끄러워하며 주위를 살피게 되지요. 주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아니면 힘들거나 화났을 때입니다. 무척이나 창피한 일을 겪어도 중얼거립니다. 그건 바로 내 안의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너 지금 복잡하니까, 힘드니까,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을 거는 겁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사고의 근원이 ‘타인과의 대화‘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P160

‘순서 바꾸기‘는 의사소통 이론 안에서 아직 널리 알려진 개념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호주관성의 심리학적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앞서 살펴본 ‘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이 신체적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초기적 상호주관성의 기제라면, 순서 바꾸기는 상징과 언어를 매개로 한 본격적인 상호주관적 소통의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말과침묵, 응답과 기다림이 교대로 이어지는 이 리듬 속에서 인간은타인의 정서와 의미를 조율하며, 언어적 공감의 장을 만들어냅니다. - P213

민주주의란 공간의 평등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에게 ‘차례‘를 내주는 ‘순서 바꾸기‘의 기술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이 상호작용의 규칙이 무너져 내리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꼼짝없이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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