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목은 <종이 칼>이다. 종이 자체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종이에 쓰인 글은 금강보검과 같아 백팔번뇌를 다 베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종이 칼>이라는 제목에는 한 장 한 장 곱게 펼쳐 잘 읽어 보면서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길 바라는 필자의 뜻이 숨어 있다. 글 속에서 금강과도 같은 보석을 찾아내는 독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 P8
중국 남북조시대 숭조법사가 이런 말씀을 했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
삼라만상이 다 부모형제이니 서로 돕고 살아가야지 누굴 미워하고 누굴 좋아하겠는가. - P21
디딤돌은 잠깐 밟고 지나가는 돌에 불과하다. 그러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디딤돌이 놓여 있지 않으면 물을 쉽게 건널 수 없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단단한 땅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돌아다보니 고맙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감사할 일뿐이다. - P22
숲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연리지理枝나무가 보인다. 연리지란 두나무가 서로 맞닿아 결이 서로 붙은 것을 말한다. 살 때도 같이 살고 죽을 때도 같이 죽는 나무여서 화목한 부부나 사이좋은 남녀사이를 일컫기도 한다. 연리지처럼 평생 서로 사랑하다가 한날한시에 같이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세상의 부부가 다 연리지 같이만 살아간다면 이별이니 이혼이니 하는 말은 발을 붙이지못할 것 같다.
갈등葛藤이라는 두 글자가 쓰인 팻말이 바위 위에 가로로 누워 있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덩굴을 뻗은 곳이다. 갈등이란 서로 다른 성 - P30
질을 가진 칡과 둥나무가 얽히는 것처럼 상반하는 것끼리 양보하지않고 대립하는 걸 말한다. 연리지는 두 나무가 상생相生하는 데 반해 갈등은 두 나무가 상반하는 양상을 보이는 걸 보고 인간이살아가는 삶의 양면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칡넝쿨과 등나무쿨은 서로 감고 올라가며 반목하다가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갈등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P31
사람은 앉을 자리 설 자리를 알아야 철이 든다고 말한다. 앉고 설자리를 잃은 다듬잇돌은 어떤 마음일까. 본래 앉았던 자리에 앉기는 아예 글러 버렸기에 스스로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안쓰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듬잇돌은 울지 않는다. 지구가 돌고 돌 듯 유행도 돌고 돌아 언젠가 제자리를 찾을 날이 오리라는 걸 믿고 앉은자리에서 오직 기다리는 것 같다.
다듬잇돌 위의 깨진 질그릇 화분이 기우뚱 기울어져 있다. 다듬잇돌 가운데가 약간 부른 탓이다. 납작하고 작은 돌멩이를 몇 개 주워와 밑을 고여 주었다. 아까보다 자세가 반듯해져 편안해 보인다.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섰다. 앉은 자리가 제자리인 것처럼 보인다. 공연히 걱정을 한 건 아닌가 싶다. 위를 올려다 보니 하늘은 여전히 높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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