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어른의 씨앗은 누구에게나 심겨 있는 게 분명하다. 조금 더 살았다고, 조금 더 경험해봤다고 경솔해지는 순간 그 씨앗은 빠르게 자라나는 것일 테다. 미리지나온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해 경청하고 겸손해지려는 노력을 기본값으로 착장해야 그나마 품위 없는 어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늙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 P17

사진도 몇 장 남지 않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때 며칠 동안이나 입고 다녔던 얇은 흰 블라우스의 감촉이라든가 무료 개방일을 기다려 들어간 앤디 워홀 전시에서 본 "미래엔 누구나 5분은 유명해진다" 같은 명언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거리 공연장에서 들었던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의 노랫말과 가수의 황홀한 표정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반짝이던 젊은 몸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젊음‘이라는 그림으로박혀 있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 P25

‘킨츠기‘라는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다. 깨진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원래 자리에 붙인 뒤 금가루나 은가루로 금이 간 부분을 따라 장식, 보수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수리된 도자기는 때로 깨지기 전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받기도 한다. 금이 가고 깨졌다는 사실이 그 도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이자 시간을 품은 서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킨츠기를 보며 나의 지난 실수를 떠올렸다. 내 잘못은 나를 쓸모없는 깨진 도자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기에 단단하게 반짝이는 서사를 만들었다고. 금이 간 흔적은 부족하고 부끄러운 점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려 했던 나의 흔적이라고. 흉터가 남았다는 건내가 그만큼 치열하게 상처를 회복하며 살아왔다는 증거니까. - P30

나의 삶도 이제는 조금 줄일 때가 되었다. 일도, 관계도, 그리고 ‘나‘라는 사람 자체도 더 깊고 선명하게 다져가고 싶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인한 불안 때문에 도망치고 싶을 때, 그 도망칠 구석을 ‘관심사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며 굳건하게 나를 세워가고 싶다. - P37

효율만 추구하며 살다 보니 요즘 가장 아쉬운 건 어떤 것에 푹 빠져드는 감각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일정 안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 - P51

하고 살아남는 데는 익숙하지만, 무언가를 그저 즐기려면 별도로 노력을 들여야 할 지경이 되었다. 순수한 즐거움은 점점 더 먼 세계의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제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 기꺼이 진심을 쏟고 싶다. 그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다시 조율하는 것이 될 테니까. 누군가는 그걸 허송세월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는 오히려 인생을 만끽하는 법에 가장 가깝다. - P52

깊이 있게 산다는 건 결국 결과보다 과정을 더 오래붙잡는 태도일 것이다. 드러나는 결과에만 치중하거나 눈앞의 효율을 따지기 전에, 지금 이 행위가 내 안에 어떤 울림을 남기는지를 묻는 일. 천천히 밥을 짓는 일처럼 사람을 오래 곁에 두는 일처럼 결과를 서두르지 않고 과정을 감내하는 일처럼 말이다.
지금의 나는 얕게 반짝이고 있는가, 아니면 깊게 머 - P56

물며 단단해지고 있는가. 그 질문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깊이 있는 삶의 시작일지 모른다. - P57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존재로 보여주는 사람.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보다 조용히 나 자신을 주인공처럼 다루는 삶. 무엇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기보다 지금 이걸 쓰고 있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아는 것. - P66

선우용여 배우님이 80이 넘은 나이에 유튜브를 시작해서 "누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시는 걸 보며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해본다.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가 나에게 스며들면 나도 잘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나는 더 이상 가라앉은 나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멈추는 감각이 느껴질 때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다시 나를 살피는 마음가짐만으로 이미 회복을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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