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관계란 게임이다. 그렇지만 게임은 맞붙는 상대가 강해야만 재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밤 상대는 너무 재미가 없다. 나는 즐거워하는 마키의 표정을 보면서 역시 다른여자를 불러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원을불러냈다면 일단 갑작스러운 데이트 신청에 경계했을 테니그 경계심을 푸느라 이런저런 수법과 다양한 기술을 구사해야 했을 것이다. 식사 중에 나눌 화제를 고르기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차피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라면 약간은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상대가 낫다. - P66
말하자면 내가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수준 높은 게임인 것이다. 섹스는 그 게임의 승리에 뒤따르는 전리품에 불과하다. 연애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랬다. 게임으로여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서 기쁨을 느껴왔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의 우열이란 게임의 승패에 불과하다. 대학 입시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거기서 포인트를 많이 쌓아두면 인생이라는 최대의 게임에서도 승리를거머쥘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입시를 준비했고, 그 결과 희망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취업을 할 때도 짜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바라던 회사에 들어갔다. 모두가 계획을 잘 짰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P67
"스톡홀름 증후군." 내가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 듯이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주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어린 소녀의 표정이었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이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그들 사이에 연대감 같은 게 싹트게 된대. 어느 쪽이든 사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은 같으니까. 그런 심리를 그렇게 부르는것 같아. 007 영화에서 그러더군." "난 인질이 아니고, 당신도 테러리스트가 아닌걸" - P172
"누구나 그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 그 가면을벗기려고 해서는 안 돼. 누군가의 행위에 일희일비한다는 건무의미한 일이지. 어차피 가면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나도 가면을 쓰기로 했어." "어떤 가면?" "한마디로 말하면, 그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가면. 어렸을때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가면이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우등생을 연기한 건 아니야. 어렸을 때는 개구쟁이 가면을쓰고, 조금 지나서는 반항기의 가면을 썼어. 그 뒤에는 사춘기의 가면, 장래를 고민하는 청년의 가면. 어쨌든 어른들이익숙해지기 쉬워야 한다는 게 포인트야."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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