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 권리라면 존재는 책임이다. 소유는 가볍고 존재는 무겁다. 소유는 교환과 폐기가 자유롭지만, 존재는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운명의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나는 이 아이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고 양육할 존재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엄중한 사실을 분만실에서가 아니라,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른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인식의 대전환은 순식간이었다. - P147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타자의 언어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빠‘라는 부름이 저를 비로소 아버지로 만들었듯이, 우리는 누군가가 부르는 그 이름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존재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 P150

바람에 날리는 빵봉지처럼 가볍게, 그러면서 단순하고 명료하게그저 살아가는 것. 각박한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첨예한 논리가 아닌, 이런 소소한 만남과 따뜻한 교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긴 여정을 이루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그 길을 조금 더 걸어보고 싶다.

오늘 나는 햇살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마음에는 벌써 봄이 온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참 운수 좋은 날이다. - P157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에‘라는 말 속에는 지금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이 있고, ‘사랑해‘라는 말 속에는 지금에 완전히 빠져들려는 마음이 있다. 하나는 관계를 미루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생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다음‘이 없는 것들이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존재하는 것들, 미뤄질 수 없는 것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만 빛나는 것들 말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을 선물한다. 유예할 수 없는 지금, 미룰 수 없는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음‘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것이다. - P160

어쩌면 지금도 내 삶의 많은 순간이 이런 식으로 엇갈리며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건네는 미소, 말, 행동 속에 담긴진심이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러니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거절당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진심을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가 아닐까. 결과보다는 과정에 성공보다는 시도에 의미를 두며 아무것도 되지 못할지언정, 적어도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두 팔을 뻗어보는 무모하지만 아름다운사람이 되어 봐야 하지 않을까. - P164

인생을 하루에 비유한다면, 지금 저는 정오의 태양 아래를 막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던 대낮의 강렬한 빛이 서서히 기울고, 이제는 조금 부드러운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기울어짐이 꼭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해 질 무렵, 노을을머금은 능선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물듭니다.
그것은 아침의 가능성도, 정오의 절정도 아닌, 오직 저녁만이 지닐 수 있는 깊이와 따뜻함입니다. 나이 듦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요. 덜어내고, 내려놓으면서도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상태겠지요.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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