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 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해 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 사회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가 보고 싶다. - P60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 (1971) - P61

그런 출가 정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칼을 가는 일이라고할 수 있다. 칼날이 무뎌지면 칼로서의 기능은 끝난다. 칼이 칼일수 있는 것은 그 날이 퍼렇게 서 있을 때 한해서다. 누구를 상하게하는 칼날이 아니라, 버릇과 타성과 번뇌를 가차 없이 절단하는 반야검, 즉 지혜의 칼날이다.
서슬 푸른 그 칼날을 지니지 않으면, 타인은 그만두고라도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다향산방의 주인은 나보다는 너그러운 편이다. 나같으면 편액을 걸어 두었던 그 못까지도 빼 버리고 그 자국마저종이로 바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언젠가 마음이 변해서다시 그 자리에 편액을 거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마음이 내켰을때는 철저하게 치우고 없애야 한다.
그때 그 심경으로 치우고 없애는 그 일이 바로 그날의 삶이다.
작심삼일, 이런 결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날 그때 - P64

의 그 결단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이런 비장한 결단 없이는 일상적인 타성과 잘못 길들여진 수렁에서 헤어날 날은 영원히 오지않는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 줄 것인가. 오로지 내가 내 인생을 한 층한층 쌓아 갈 뿐이다. - P65

임제 선사의 어록 중에서 좋아하는 한 구절 ‘즉시현금 갱무시절
‘이라고쓴 족자를 걸어 놓으니 낯설기만 하던 방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말.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는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나는 기운이 솟는다.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자기 자신답게 최선을 기울여 살 수 있다면, 그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보내게될 것이다. - P82

뒷등성이로 올라 오리나무 숲을 찾아갔다. 오리나무 숲도 잎들을 어지간히 떨쳐 버리고 옹기종기 모여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훨훨 벗어 버린 나목의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나무들의 체온이 다가선다. 잎을 무성하게달고 있을 때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는데,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에서 도리어 따뜻함을 감촉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한테서는 느끼기 어려운 그 인간미를,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고 사는 사람한테서 훈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경우의 가난은 주어진 빈궁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와 그릇에맞도록 자기 몫의 삶을 이루려는 선택된 청빈일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악덕이고 부끄러움일 수 있지만, 선택된 그 청빈은 결코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 P92

자연의 교사로부터 배우려면 따로 학습이나 예습이 필요 없다.
더구나 과외 공부 같은 것은 도리어 방해가 된다.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빈 마음으로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흙을 - P94

가까이하면서 나무들을 매만지고 쓰다듬으며 가지 끝에 열려 있는 하늘을 이따금 쳐다보아야 한다. 하늘은 툭 트인 무한한 우주공간을 우리에게 안겨 줌으로써, 어느 국지에 매달리거나 안주하려는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들 삶의 현장에 막힌 벽만 있고 툭 트인 공간이 없다면 인간의 의식은 생기를 잃고 이내 시들어 버릴 것이다. 여백은 이래서본질을 새롭게 인식시켜 준다. 의식의 개혁이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변혁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에서 찾아낸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의식의 개혁 없이 새로운 삶은 이루어질 수 없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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