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노자의 원음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노자의 원음이 ‘지금‘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실은 이런 질문에 대한 설명이 이 서문에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노자의 원음을 굳이 들어야 하는 이유는 때때로 고전에 가해지는 임의적 해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그 보편적 성격 때문에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 앞에서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해석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만, 그 해석을 또 임의대로현재적 삶에 적용하려 하는 경우에 접하고서야 신경을 곤두세우지않을 수 없게 된다. - P15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고 정의할 때,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정의가 인간의 한 측면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진면목 혹은 전체적인 면모는 아닌 것이다. 도를 정의 내리면 혹은 도라고 부르면, 그것이도의 어떤 한 측면은 되겠지만 도의 진면목이나 전체적인 면모는 아•니라는 뜻이다. 상도를 세계의 근원이나 출발점 혹은 실체라는의미에서 ‘영원 불변한 도‘라고 해석하는 것은 노자 철학을 왜곡하는것이 될 것이다. - P24
그러나 보자. 시작이라는 사태를 통해야만 가위를 잡기만 한 채가만히 있는 단계와, 힘을 가해 직접 자르는 동작이 연결되어 천을 자르는 하나의 작업을 형성하게 된다. 또 스스로는 존재성을 갖지 않지만 출발이라는 사태를 통해 ‘준비‘와 ‘발을 내 딛는 행위‘가 연결되어달리기가 이루어진다. 이런 묘한 경계나 영역을 나타내기 위하여 노자는 무라는 범주를 채택하고 있다. ‘무‘라는 범주의 발견만으로도노자는 중국 철학사에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 P28
여기서는 ‘유‘와 ‘무‘가 같은 차원에서 공존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노자가 보기에, 반대되는 유와 무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면서 또는 상대방을 살려주면서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주 현묘하다는 것이다. 현묘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현호 자는 까만 색깔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어슴푸레하고 어둑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과 저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이다. 유와 무로 대표되는 대립항들이 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 근거를나누어 가지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방에게 두면서 꼬여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용어 선택이다. 후에 장자나 당초의성현영 그리고 많은 도가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명자 도비슷한 의미로서, 현과 명은 가깝게 붙어 다니면서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니 공존하거나 일체가 되는 경우를 나타낸다. - P32
둘째 장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아름다운 것으로 알면이는 추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좋은 것으로 알면이는 좋지 않다.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 주고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 자연의 이런 원칙을 본받아성인은 무위하는 일을 하며, 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그것을 자신이 시작하도록 했다고 하지 않고, 잘 살게 해 주고도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되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오로지 그 공 위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 - P35
어떤 가치 체계를 상정하고, 그것을 추종하고 부단히 학습해야 성숙한 인간 내지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공자에대해서, 노자는 만일 그렇게 하면 바람직한 것으로 합의된 가치를 정점으로 인간군이 차별화 되고, 그 차별화 안에서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야기되며, 그 가치가 결국은 권력으로 작용하여 사회는 혼란해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해치게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곳은 가치의 집중과 통일을 반대하고 있는 대목이다. - P38
셋째 장
똑똑한 사람을 높이 치지 않아야백성들이 경쟁에 휘말리거나 다투지 않게 된다. 얻기 어려운 재회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는다. 욕심 낼 만한 것들을 보이지 않아야백성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하는 정치는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그 배를 채워 주며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 주고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 무욕하게 하고,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실천하면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 P51
노자에 따르면, 하나의 체계나 기준 안으로 인간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모든 체계를 넓은 광야에 풀어헤쳐 놓고 열린 광장에서 인간을뛰어 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삶과 질서 잡힌 사회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에게는 중앙 집권보다는 지방 분권, 대국다민서보다는 소국과민小는 개방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다양성, 폐쇄성보다단일성보다는 "노자의 무지는, 인간이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할 수있는 여유, 그리고 불필요한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순결함, 그리고 인격의 소박함, 그리고 생활의 단순함이다. 순결, 소박, 단순! 이런 것들을 노자는 ‘무지 무욕‘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김용옥, 『노자와 21세기 통나무, 159쪽)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무지 무욕을 "정보의 적은 소유" 정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류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지 무욕은 "정보의 적은 소유를 통해 고결한 인성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구분되고 한정된 지식, 구분되고 한정된어떤 체계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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