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 사실을 서술하는 작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이 단 하나의 길과 문을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길과 문을 지나 좁은 길 하나를 더하고자 한다. 진실로 향하는 하나의 길. 물론 내가 만든 길이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향하고 있을뿐.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 P14
누군가 엄마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소설책, 별거 아닌 시집, 별거 아닌 에세이. 엄마는 그런 것을 읽었다. 언젠가 집에 놀러 온 친척들 앞에서 별거 아니라며 책을 감추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왜 맨날 별거 아니래?" 엄마는 말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별거 아니야. 사는 게 별 - P24
것이 아닌데, 당연하지. 그래도 나는 별거 아닌 것이 별것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이야기가 좋더라. 별거 아닌 걸 말할 줄 아는 용기도." 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을 향한 몸부림.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을 말할 줄 아는 용기도. 엄마의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 P25
갈망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안의 가장 깊은 곳을, 가장 먼 곳을 향해 달린다. 한때 나도 무언가를 간절히 갈망 - P47
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게 없는 마음이란 것을 안다. 대신 가질 수 없는 그 마음을 타인에게서 읽고, 읽은 것을글로 옮기려 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조금 옅은 갈망이 아닐까. 그 밤에 담배를 손에 쥔 엄마는 내게 전혜린만큼 낯선존재였고, 그 생경한 감각이 처음으로 엄마를 타자로 인식하게 했다. 나의 무엇이 아닌, 나와 다른 욕망을 품은,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존재로.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있고, 그게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 고마웠다.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이 미안함을 이겼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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