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길 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7번 국도를 다녀온뒤에도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여름은 지나갔다. 되돌아볼 때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 P37

인생의 모든 순간은 딱 한 번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영영멀어진다. 말하려다 그만두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그저 "아름다운 계절 중양절 또 돌아왔군요"라고 노래하는 이유는 지나간 순간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을이니까 그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또 나를 일깨우기도 한다.
나뭇잎이 또 저렇게 졌다가 봄이 되어 다시 돋는 동안, 사람들은 한 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자명한 사실 앞에 지금 단 하나의 가을이 놓여 있다. 그러니 이 가을 앞에서나 역시 말하려다 그만두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아, 서늘해서 좋은 가을이어라"라고 노래할 수밖에. - P62

내게는 바로 그런 게 겨울다운 겨울이다. 지난 한 해 나는정말 힘든 시기를 거쳐 왔다. 내가 힘들었다면,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겨울까지 우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려운 일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았다. 그 사실은 이 겨울이, 얼얼할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증명한다. 바람이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겨울다운 겨울에 우리는 우리다운 우리가 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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