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윤곽이 선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일일이 스토리로 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윤곽을 그대로 곧장 언어화하는 게 훨씬 더 빠르고, 또한일반인이 받아들이기도 훨씬 쉽겠지요. 소설이라는 형태로 전환하자면 반년씩이나 걸리는 메시지나 개념도 그걸 그대로 직접 표현하면 단 사흘 만에 언어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마이크를 향해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린다면 단 10분이면 끝날지도 모릅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합니다. 듣는 사람도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그런 게 바로 머리가 좋다는 것이니까. - P21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 라는•것입니다. 어쩐지 강변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대체로 그렇게 믿고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도당연합니다. 그건 각자 염두에 둔 시간의 스팬span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P24
자,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은 모양이에요. 게다가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혹은 오히려 쓰지 않는 편이)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라는 사람이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또한 지속적으로 소설을 씁니다. 그런 사람을 나는 물론 한 사람의 작가로서 당연히 마음을 활짝 열고 환영합니다. 링에, 어서 오십시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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