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김정한)

오늘 하루 당신의 마네킹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벗으라면 벗고 갈아입으라면 입고
당신 뜻대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당신을 위해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지만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첼로 연주에 취하고
당신이 따라주는 핏빛 와인에 취하고,
떨리는 당신의 눈빛에 취해버렸습니다
굳은 내 몸이 말랑한 고무 인형처럼 움직였습니다
전신을 휘감는 캘빈클라인 향에
후각, 미각, 촉각, 시각, 그리고 잃었던 감각까지 되찾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내 눈, 내 귀, 내 몸 오장육부마저 기뻐서 웃는 듯했습니다
오늘 난 당신이 이끌어가는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한 하루,
신은 나를 움직이지 않는 마네킹에서
당신에게 길들어지는 착한 여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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