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려는 건 채소에도 유쾌하거나 우울하거나 슬픈 기분이 있으니 살펴가면서 요리를 하는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채소에게도 있는기분이 왜 사람에게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내 기분을 당신이 좀 알아주면 안 되겠느냐는 하소연을 채소에 빗대어 하는 것이다. 착하게 군다고 아무렇게나 내 기분을 무시하지말라고, 내색하지 않는다고 감정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통통 튀거나 시무룩한 채소처럼 나에게도 그때그때의 기분이 있다. 나도 식물처럼 오늘의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오늘 기분이 어때요?" 이렇게 물어봐 주는 사람이 나는 좋다. ‘당신의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이 담긴 말로 들린다. 당신이 내기분을 물어봐 준다면 나도 당신의 기분을 살피고 당신과충분히 교감할 준비가 돼 있다. - P144
오늘 내 기분은 가을가을해요. 당신은요? 당신의 기분도설탕단풍나무 같기를 바라요. 오후 세시의 숲에 메이플 시럽이 가득 고이고 있어요. 늦가을 해가 당신 곁에 길게 머물기를 바라요. 저 설탕 같은 햇살이 당신의 바스락대는 기분에 듬뿍 발라졌으면 해요. - P145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말한 ‘힘에의 의지‘가 떠오른다. 누군가 철학적인 말투로 번역해놔서 얼른 와닿지 않지만, 이 말을 풀어보면 ‘힘을 갖고싶은 욕망‘ 혹은 ‘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정도가 아닐까싶다(물론 힘을 권력이나 자유나 자아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겠다). 생명체는 활동하는 동안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삶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생명체의 이런 마음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면 ‘힘‘이다. 힘은 운동에너지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제어하고 지배함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해낼수 있는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 P150
이성도 힘이고 감성도 힘이다. 대개 이 힘을 동물의 특성이라고 여긴다. 동물은 지능이 있고 식물은 지능이 없으니동물이 고등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관념이다. 지능이 생각하고 감각하는 능력이라면, 식물에게도 훌륭한 지능이있음을 이미 많은 과학자가 밝혀냈다. 식물도 동물처럼 군락을 짓고 집단 생태계를 형성해 생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나무는 몸통의 두 배가 넘는 너비까지 뿌리를 뻗을 수있다. 그 뿌리로 이웃 나무와 정보를 교환하고, 또 향기 물질을 발산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나무들은 이 화학 언어로적의 침입을 알리고 유익한 곤충을 불러들인다. 구름을 만들어내고 내륙 깊숙이 구름을 이동시킨다. 식물의 힘은 그들이 지구의 주인이고 수호자임을 알게 한다. - P151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은 출판사였는데, 그 회사는 꽃과 곤충과 새와 나무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갈매나무가 좋았던 나는 그 출판사의 출간 목록에 시나브로 끌렸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여러 식물학자와 곤충학자를저자로 만났다. 그들을 쫓아다니며 부러워했다. 무언가 한가지에 꽂혀서 남들이 모르는 어떤 비밀을 캐내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무엇 하나에 빠져서 내가살아가는 세상의 원리나 존재의 작은 비밀이라도 알아낼 - P156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나는 그것이 시의 세계. 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출판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틈틈이 시를 썼고 운 좋게 시인이 되었다. 내가 책을 만드는사람이 된 것, 책으로 밥을 먹게 된 것, 시를 쓰게 된 것이 모두 갈매나무 덕분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작가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초가 우리말 하나를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그 말 하나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 그 드물다는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자신처럼 갈맷빛으로 살아가라고 나를 이끌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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