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어는 점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다. 가슴어가 사라져가는 이유는 서로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의 마음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어란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중요한 언어다. 가슴어는 일상어와 같은 어휘를 써도 의미가 완전히다르고 반어법에도 능숙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이는 ‘내가 늘 좋아하는 그것‘
이라는 의미다. 그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괜찮아‘ 하고 말하면, 그것은 ‘괜찮지 않아, 나 좀 봐줘‘라는 뜻이다. - P86

가슴에 못 박히고, 가슴이 미어지고, 가슴이 아려오는 일들이 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 때문에 생긴다. 가슴과 가슴이가까운 듯싶지만 뜨거운 듯싶지만 철벽 같고 얼음덩어리같을 때가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가슴어를 가슴으로 듣지 않으려 할 때, - P87

묵언은 어떻게 말할까를 배우는 과목이다. 성내지 않고들뜨지 않고 참답게 말하는 궁극의 언어다. 마음의 말에 닿으려고 수행 푯말을 내건 사람들이 저 안에 있다. 돌아서 나오면 절 마당 어귀의 후박나무도 배롱나무도 묵언 수행 중임을 눈치채게 된다. 법당 처마에 달린 풍경도 공양간을 드나드는 방문객도 구름처럼 고요를 연습하고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을 거듭해야 할 정도니까. 내가 고요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말할 때 잠잠함을 유지하는 법이다. 말을 전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 고요의 가르침이다. 절집에 가면 마당이 환하고 연못의 연꽃이 환하고 스님의 깎은 머리가 환하다. 그것들이 다 유리창이다. 말없이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고요에게 한 수 배우고 돌아오면 - P92

나는 한동안 말수가 준다. 그때는 더 많은 소리가 들리고 더많은 마음이 보인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 고요의 원리를더 알려주지 못하겠다. 알아서들 고요와 사귀시기를. - P93

관행이란 해오던 대로 관례에 따라서 하면 되는 편리함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하고 싶지 않음‘을 실토하는말이다. 원칙이란 것도 그렇다.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고 행동을 제약한다. 처음 생겨날 때 원칙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하나의 원이었을 것이다. 모두를 위해서 모두가 따를수 있는 공평과 정당함을 전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관행과 원칙은 어느새 날개를 묶는 족쇄가 된다. 다른 발상과 새로운 시도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습관대로만 살려는 생각하기싫어하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빼앗긴 자신의 영혼이다. - P95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의 전쟁터다. 고도로 계산되고 정치()하게 위장한 말들이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생각없이 곧이곧대로 그 은유의 말들을 받아들이면 당장은 편하고 당장은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말들은 결국 정신을갉아먹는다. 세상에 갑인 인간도 을인 인간도 없다. 말의 표 - P96

편에 속으면 진다. 말의 분명한 주인은 사람이고, 말을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말의 진의를 파악하고 이겨내고 다스려야 한다. - P97

간지럼이 그렇듯이 낯간지러운 말도 참으면 안 된다. 그어색한 부끄러움이 사랑을 윤활하게 만든다. 대낮에 해도되고 일평생 해도 되고 꽃다발 없이 해도 되고 밥을 먹으면서 해도 되고 술 먹지 않고 해도 되고 귓불에 대고 해도 된다. 어설프고 무뚝뚝하게 해도 문제없다. 하고 나면 잠깐 화끈거리고 뜨거워질 뿐 생명에 지장이 없다.

사랑은 수시로 확인되어야 한다.
봄이 벚나무에 간지럼을 태워 꽃사태를 일으키듯이낯간지럽고 화끈거리는 말들이 사랑의 온도를 올린다.
가장 정확한 마음은 당신이 하는 고백으로 확인된다. - P107

가슴보다 말의 속도가 더 빠를 때 말에게 경고해야 한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너의 영혼이 뒤처질 수 있으니"
나는 이 잠언에 덧붙여 나의 말에게 타이른다.
"너무 빨리 말하지 마라. 뒤늦게 도착한 너의 영혼이 진짜할 말을 잊게 될 수 있으니."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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