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않습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선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쓰는데 더욱더 갖게되고, 남에게 주었는데 더욱더 많아집니다. 하늘의 도는 이로울 뿐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행하되다투지 않습니다. <도덕경>, <덕경 81장>
누구나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요. 때로는 새로운 상황을 겪으며 기존에 가졌던 관점을 바꾸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공감해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각자 살아온 나날들, 맞닥뜨린 현실이 다르니 경험도 지혜도, 감정도 모두 ‘다르게‘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 P178
아무리 좋은 글을 읽고 훌륭한 곳에서 배우고 큰 뜻을 품으며 스스로를 갈고닦았어도 실생활에서 주변과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이반복된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좋은 말, 훌륭한 공부, 세련된 행동보다 소박한 본바탕을 강조했던 겁니다. 머리로 따지기 전에 그저 당연한 듯 남에게 양보하는 상태. 남과 겨루거나 이겨보겠다는 감정적인 동요가없는 상태. 이런 소박함이 회복되면 자기가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변명하고 논쟁하고 싸우는 일들이 사라질 겁니다. 자기를 내세우며 다투지 않으니 원망 살 일이 없고, 양보하며 조화를 이루니환영과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싸우지 않아도 이기고, - P180
쌓아두지 않아도 점점 더 많아지는 역설의 진리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남과 다투지 않는 사람은 하늘의 단짝이 됩니다."
덕
도가에서 말하는 덕은 만물의 근원인 도로부터 만물에 부여된 본성을 말합니다. 만물이 지닌 생명력, 내재한 자연성, 타고난 능력을 뜻하지요. 덕은 도의 작용이고, 도의 결과이며, 도가 드러난 것입니다. 도가 뛰어난 추상성과 초월성을 지녔다면, 도의 작용인 덕은 구체성과 실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를 따라 살면 내가 얻게 되는 것(득得)이 덕이지요. 사사로운 욕심과 경쟁심을 버리고 무위자연의 삶을 터득하면 세상의 깊고 오묘한 도리 또는 깊이 간직하여 드러나지 않는 덕인 현덕을이루게 됩니다. 무위, 무욕한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덕을 얻는 길이며 동시에 도를 따르는 삶인 거죠. 이처럼 도와 덕은 하나로 결합되므로 어느 것이 도의 영역이고 어느 것이 덕의 영역인지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노자가 남긴 글을 ‘도덕경‘이라 불렀고, 도와 덕을 논하는 사람들을 ‘도덕가‘라 부르다가 줄여서 ‘도가‘로 칭했던 거죠. - P181
자기를 낮추고남보다 뒤에 서면 평안해집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습니다(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은 만물을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머물니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습니다. 낮은 곳에 머물고, 마음을 깊고 고요하게 하고, 사람을 어질게 대하고, 말을 믿음 있게 하고, 바르게 다스리고, 일할때 능력을 발휘하고, 행동은 때에 알맞아야 좋습니다. 다투는 일이 없으니 허물도 없습니다.
<도덕경>, <도경 8장> - P186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잘 낮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수 있습니다. 백성의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스스로를낮추어 말하고,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그들의 뒤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즐거이 받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으니세상에 아무도 그와 다툴 수 없습니다. <도덕경>, <덕경 66장>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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