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어 있지 않아 지나치거나 모자람없이 꼭 알맞은 상태를 말합니다. 용은 그런 바른 상태가 변하지 않고꾸준히 지속되는 것을 말하고요. 즉, 중용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상황에서 중간의 도를 택하는 현명한 자세를 뜻합니다. 이때 중간은 수량적인 중간치가 아니라 가치를 질적으로 비교해 최선의 위치에 서는것을 의미하지요. 공자의 손자인 자사는 저서 <중용> (<대학>, <논어>, <맹자>와 함께 유가의 기본 경전인 사서에 포함)에서 인간 행위의 이상적인 기준으로 중용의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중용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개념입니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치는지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미달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을 찾는 것을 참다운 덕으로 파악했지요. - P135
부화뇌동
우레 소리에 맞춰 천지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비유한 말입니다. 유가의 다섯 가지 경서 중 하나인 <예> <곡례>편,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예절을 설명하는 부분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죠. "남의 의견을 자기 의견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남의 의견에 동조하지마십시오. 옛 성현들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이렇게 대비했지요. 군자는 의를 숭상하고 남을 자 - P144
신처럼 생각하므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부화뇌동하지 않지요. 반면 소인은 이익을 따라다니므로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끼리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거죠. 부화뇌동은 이렇게 자신의 주체적인 의견과 객관적인 기준을 도외시한채 물질적인 이해관계 또는 남의 주장이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정하는모습을 경계하는 고사성어입니다. - P145
세상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답다 여기니 추함이 생겨납니다. 세상 모두가 선하게 보이는 것을 선하다 여기니 선하지 않은 것이 생겨납니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의 관계에서 생겨났고, 어려움과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됩니다. 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형성되고,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음악과 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도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행합니다. 모든 일을 이루어지게 하고도 말하지 않고, 생겨나게 하고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해놓고도 뽐내지 않고, 공로를 쌓고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장하지 않기에공로를 잃지 않습니다.
<도덕경>, <도경 2장> - P153
"숨겨진 쓸모를 알아보는 내적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대기만성
큰 사람이 되거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나타내는 말입니다. 세상만사는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지요. 본래 노자가 옛글을 인용해 도를 설명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루어지기 어려울 만큼 큰 도를 표현했던 말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로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됐지요. 위나라 최염은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장수였습니다. 그의 사촌 최림은말재주도 없고 생김새도 볼품없어 친척들에게 무시를 당했지요. 하지만 최염은 보는 눈이 남달라 그를 어리숙하게 여기지 않았답니다. "큰 종이나 큰 솥은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도 그와 같아 큰 재주를 지닌 이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너는 대기만성형이니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후일 최림은 황제를 보필하며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 P165
"나에게도 남에게도 억지로 하는 일이 없으면 탈 나지 않습니다."
무위
무위는 세상 만물의 근원이 되는 도의 존재 방식입니다. 이러한 도와 멀어진 사람은 편협한 지식, 한계가 있는 기교, 사사롭고 주관적인 의지에얽매여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거스를 때가 많습니다. 이를 유 인위라 하지요. 노자는 이런 인위적인 행위의 오류를 깨닫고 집착에서벗어나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정화해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고 사물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할 때 도에가까워질 수 있다고 여겼던 거죠. 즉,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억지스러움을 부정하고 자연의 이치에 그대로 따르는 진정한 행함을 실현하는 것이었죠. 따라서 정확히는 ‘함이 없는 함무위지위), 인위적으로 행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함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무사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근심스럽게 만드는, 억지스러운 일들을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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